Isaak Lee

( Azusa Pacific Univ. Calvin Theologcal Sem.)


2006년 개봉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The Devil Wears Prada) ” 는 저널리스트의 꿈을 안고 뉴욕에 온 앤드리아 삭스( Andrea Sachs- Anne Hathaway 1982 - )가 세계 패션계를 주름잡는 뉴욕의 패션 잡지사의 편집장인 미란다 프리슬리( Miranda Priestly - Meryl Streep 1949-)의 비서가 되면서 겪게 되는 숨가쁜 일상 그리고 내면에 충돌하는 삶의 가치관에 대한 갈등을 그린 영화다.

악마와 프라다, 악마는 부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 마치 냉혈인 처럼 그 치부를 카리스마로 위장한 채 달려가는 한 인간, 프라다는 그들의 비뚤어진 자긍심을 합리화 시키며 오히려 선망의 대상이 되게 하는 고급지고 차별화된 부의 상징이다.

이 모순된 현상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 정신 차리고 시간을 본다면 시간은 모든 생명과 사물을 녹슬게 하고 늙고 병들게 하며 결국 죽음으로 몰고가는 악마의 상징이 아닌가? 인간들은 그렇게 소멸되어 가는 시간의 절대적 노예로 살아가면서 그것을 누리는 것으로 착각하며 산다. 왜냐하면 그 시간 속에는 먹고 마시며 울고 웃고 떠들며 즐기는 행복의 프라다, 그리고 각자 더 낳은 미래를 열망하는 꿈의 프라다가 있기 때문이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경점(更點)에 설 때 마다 새삼 도대체 시간이란 무엇인가, 문득, 쌓이면 결국 무너져 내릴 세월의 산앞에 황망하게 서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다.

사뭇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것 같지만 이 냉엄한 시간의 원초적 개념에서 부터 출발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이 노예적 시간의 사슬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시간에 대한 인식이야 말로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확연한 특징 중 하나이며 나아가 시간의 사슬에서 자유하고자 하는 욕구야말로 영원을 사유할 수 있는 영성을 가진 사람들의 독특한 감각일 것이다.

먼저 일반적인 시간의 표시에 대해 말하면 오늘날 전 세계의 시계는 초, , 시를 기준으로 한다. 인간이 존재한 이래 인간은 자연을 관찰하여 시간을 측정해 왔다 . 계절의 변화, 천체의 변화. 태양이 이동함에 따라 바뀌는 그림자의 방향을 측정하는 해시계,물의 양으로 물시계, 모래시계 등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여 시간을 측정해 왔다.

이런 구식 장치를 기계식 시계가 대체하여 정확한 시간측정을 시작하게 된 것은 1275 년경이 되고. 1656년에 크리스챤 하이젠스 ( Christian Huygens )가 자연적인 진동 주기를 가진 메커니즘 조절정치인 최초의 진자 시계를 만들게 되었다 . 그후 1884년 런던을 기점으로 그리니치 표준시Greenwich Mean Time, GMT)를 국제 시간 표준으로 채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렇다면 시간의 기원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우주는 예전부터 그 상태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정상우주론( Steady State theory )의 오랜 관념을 깨고 벨기에 물리학자이며 사제인 르메트르 Georges Henri Joseph Édouard Lemaître (18941966)1927년 최초로 팽창하는 우주는 "원시 원자"라는 지점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빅뱅이론을 언급했다. 그 이후 이를 물리적으로 구체화한 가모프(George Gamow, 1904 ~ 1968) 또한 은하의 적색편이 분석을 통해 은하들이 실제로 멀어지고 있음을 확인하므로 팽창우주의 증거를 제시한 허블(Edwin Hubble)등을 통해 빅뱅이론은 오늘날 정설이 되었다.

흔히 빅뱅이론이 성경적인 관점과 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당시 이 이론이 나왔을 때 가장 이 이론에 반기를 든 사람들은 무신론과학자들과 진화론자들이었다. 이는 어느 한 순간에 백뱅으로 이루어진 우주의 기원은 창세기 1:3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 (Let there be light )는 창조론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철학이 신학의 보정자료가 된것 처럼 과학 역시 신학의 증거자료가 된 것이다.

이제 도출되어야 하는 것은 시간의 실체이다. 아인슈타인 ( Albert Einstein, 1879~1955 )의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 시간은 상대적이라고 규명했다. ,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기준 프레임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질량과 중력에 따라 공간은 물론 시간도 같이 휘어지므로 결국 시간도 변한다는 논리를 전개한 것이다. 뿐만아니라 모든 사물에 핵이 있고 양자가 있는 것처럼 우주가 시작하는 블랙홀( Black Hole )이 있고 시간이 존재하는 웜홀( Worm Hole )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시간을 객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놀라운 기회를 제공하기에 이른다.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크기를 절대적으로 생각하는 고전적 상식에 갇혀있던 인류에게 이 이론은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 ~ 1642)의 지동설 만큼이나 엄청난 충격이 되었으며 이는 추후 여러 가지 실험,특히 우주선에 실렸던 중력측정장치 자이로스코프( Gyroscope )에 의해 사실임이 판명되었다.

고대 인도와 그리스 철학은 시간의 질적개념에 의문을 제기한 최초의 철학 중 하나였다. 논쟁의 주요 포인트는 시간이 순환하는지, 무한 또는 유한한지였고 초기 그리스 철학자들은 우주가 무한하다고 믿었다. 플라톤 ( Plato BC 428-348)은 연속시간을 믿었다. 몇 세기 후 어거스틴은(St. Augustine, 4~5세기) 시간은 과거를 기억으로, 미래를 기대로 동시에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현재마음의 "확장"이라고 정의했다.


근세들어 가장 통찰력있는 정의는 친나치주의자였지만 존재와 시간의 현상학자이자 실존주의철학자인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1889-1976)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우리가 시간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실제적인 방식으로 우리는 시간이며 시간의 전체 개념은 인간의 경험과 분리될 수 없다 고 결론지었다.

시간은 곧 나다 라는 가장 인간적인 시간의 개념을 설정한 것이다.


최초, 시간의 주권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빛이 있으라하는 그 순간부터 시간은 존재했고 에덴동산에서도 시간은 존재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는 죽음이 없었기 때문에 인간은 시간은 누리되 시간에 속박되지 않은 자유로운 상태였다. 그러나 죄를 범하므로 네가 정녕 죽으리니하는 순간부터 인류는 영원에서 내려와 시간과 공간속에 갇혀져 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은 원천적으로 죄의 멍에이며 사슬이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5;16세월을 아끼라 에서 아끼라는 의미의 헬라어 엑사고로조메노이 (έ́ξηγορασεν ) 는 시간을 속량하라, 악마에 빠진 시간을 다시 사서 구속하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어떻게 인간이 시간을 구속할 수 있을까? 그것은 의외로 단순하다. 내가 구원받은 존재가 되어 영원속에 들어간다면 시간은 자연히 구속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 받은 자가 누리는 시간은 이미 속량받은 시간이다. 길든 짧든 비천하든 화려하든, 의미있는 시간이며 가치있는 시간이며 자유한 시간이다. 언제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숨만 내신다 해도 복된 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무엇인가 하는 것( Doing )에 시간의 가치를 부여하려 한다. 그리고 그 하는 것으로 ( Doing )으로 신앙을 판단하려는 우를 범한다. 이는 코끼리가 사슬을 충분히 끊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매인 습관 때문에 사슬을 떠나지 못하는 코끼리사슬증후군(The Chained Elephant Syndrome) 처럼 ,시간의 사슬에 아직 매어 있다는 증거다.

정말 중요한 것은 구원 받은 나의 존재 ( Being )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끊임없이 견지해야한다. 이 위에 진정한 Doing이 쌓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구원받지 못한 시간은 아무리 많은 일을 하고 아무리 길고 젊고 화려할지라도 가치없는 시간, 의미없는 시간,악마의 시간일 뿐이다.

돌이켜 보면 유년기는 시간 자체에 대한 의식없이 지낸다. 젊었을 때는 젊음의 가치를 모른채 덧없는 세월을 보낸다. 장년,중년,아직 건강하고 젊지만 언제나 더 젊었으면 더 젊었으면 하고 과거를 바라보며 젊음믈 동경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겨우 시간과 세월의 진정한 의미를 알 때 쯤이면 더 시간을 향유할 수 없는 노쇠한 때이다.

사도바울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이 자유로운 시간을 사유하며 향유했다. "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朽敗)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 고후4:16 ) 라는 말은 절대 자기 세뇌나 자기 위로 또는 허세가 아니다. 구원받은 자로서, 시간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은 당당한 선언이며 포효이다. 인간에게 젊음과 늙음은 인격이나 소유가 아니다. 똑같이 주어지는 경험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사슬에서 벗어난 삶을 누리느냐 아니면 매어사느냐 이며 더불어 영원성을 가지고 사느냐 아니냐 의 문제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클라이맥스는 미란다 프리슬리의 노예가 되어 그녀를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한 앤드리아 삭스( Andrea Sachs )가 서슬퍼런 보스를 뒤로한채 시도 때도없이 걸려오던 사슬과 같은 핸드폰을 분수대에 집어 던져 넣는 장면이다. 그 어려운 결단의 순간으로 부터 그녀는 비로소 자유를 찿고 자신의 본질을 찿게 되는 그 모습은 정말 의미심장하고 가슴 벅차다.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다시한번 그 명장면을 떠올리며 마음속에 혼자만의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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