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지금 옳으면 옳다,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입을 다물고 있는가?

Isaak Lee

yeesaak7@gmail.com

Azusa Pacific Univ. Calvin Theological Sem.


구 소련의 스탈린 ( Joseph Vissarionovich Stalin 1878-1953 )은 강력한 전체주의 정권을 휘두르며 당과 정부를 통제하기 위해 인민을 억압하고 인종청소와 대규모 추방으로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투옥시키고 수백만명을 처형하는 대숙청으로 악명 높았던 인물로 195335일 자신의 침대에서 사망했다.

당시 이 사실을 알렸던 뉴욕타임즈는 (Book of the Dead,2016 The New York Times ) 전 세계 인구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인물이 뇌출혈로 순환기와 심장기능의 심각한 손상을 입고 73세의 나이로 타계했다고 보도했다.

동시에 눈길을 끈 것은 그의 레코드 플레이어에서 회전을 반복하는 L.P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모짜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3( Piano Concerto No.23 in A major,K.488 Mozart,Wolfgang Amadeus )이었다.

반혁명적이며 반소비에트적이라는 이유로 스탈린의 폭정아래 불이익과 억압을 경험했던 러시아의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인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 19061975)는 그의 회고록에서 스탈린의 임종시에 돌아가던 이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의 음반에 대한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1944년 어느 날 저녁, 스탈린은 래디오를 통해 Yudina (Maria Veniaminovna Yudina 18991970)가 연주하는 모짜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3번을 들었었고 그 연주에 매료되어 방송국에 그 곡의 음반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그 음악은 생방송이었다. 독재자의 명을 거역할 수 없는 방송국은 한밤중에 연주자들을 다시 불러모아 천신만고 끝에 스탈린을 위한 한 장의 음반을 급조하여 상납하게 된다.

당시 피아니스트는 마리아 유디나, 그녀는 페트로그라드 ( Petrograd )음악원 에서 공부했으며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는 당시 그녀의 급우였다. 그녀는 음악뿐 아니라 역사철학 연구에 심취하여 계속 공부했었고 1919년에는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후 신학수업까지 마친 신앙과 자의식이 뚜렷한 피아니스트였다. 쇼스타코비치가 그의 회고록에서 그녀의 연주는 언제나 마치 설교하는 것 처럼 진지하고 성스웠다고 표현하고 있다. Yudina의 연주는 매우 독특한 스타일과 음색, 그리고 뛰어난 기교와 함께 깊은 내면의 영성,그리고 지적인 매력이 어우러진 연주로 유명하다. .

당시 급조된 그 한장의 음반이 스탈린에게 전달된 얼마 후, 피아니스트 유디나는 스탈린으로부터 20,000루블이 들어있는 편지를 받게 되는데 유디나는 그 답신으로 "당신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밤낮으로 기도하고 백성과 나라 앞에서 당신이 지은 큰 죄를 용서해 달라고 주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자비로우시며 당신을 용서하실 것입니다. 나는 내가 다니는 교회에 당신께 받은 돈을 모두 헌금했습니다. " 라고 써 보냈다.

감히 독재자의 뜻을 거부하고 반체제성 의사를 분명히 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과 달리 그녀에게 특별히 가혹한 조치는 내려지지 않았다. 저항의식을 가진 많은 동료 예술가들이 아예 사라지거나 KGB에 의해 숙청되는 동안, 그녀는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녀가 연주한 그 유일한 음반은 스탈린의 임종 순간에도 그에게 들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스탈린에게 있어 그녀가 연주한 모짜르트는 어쩌면 그가 지울 수 없었던 한가닥 양심의 소리였을까? 그도 그럴것이 스탈린은 신학교에서 그의 본격적인 학업을 시작한 사람이다. 티플리스 ( Tiflis )의 정교회신학교 ( Orthodox Spiritual Seminary )에 입학한 그는 600여명의 사제들 중에도 뛰어난 성적은 물론 시,문학등 창작할동도 활발히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그가 신학연구에 흥미를 잃고 반항적인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칼 마르크스( Karl Heinrich Marx FRSA 18181883)의 자본론( Capital , A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을 읽으면서 마르크스의 사회정치적 이론에 심취했을 때부터로 추정된다. 신학교 학적부에는 그가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선언하고 기도를 하지 않고 수도사들에게 모자 벗는 것을 거부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결국 18994월 입학한지 5년 만에 신학교를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20세기 공산당의 공식 이데올로기였으며 레닌 사후에 발전했다. 그것의 세 가지 원칙은 변증법적 유물론( Dialectical Materialism), 민주적 중앙집권을 통한 공산당의 주도 , 산업화와 농업 집산화를 통한 계획경제였으며 스탈린은 이를 계승한 것이다.

나치의 항복 이후 1948년까지 소련은 붉은 군대에 의해 해방된 동유럽 국가에 좌익 정부를 세우는 한편 아시아에서는 스탈린과 마오쩌뚱 그리고 김일성의 공조하에 아시아 전지역을 공산화하려는 시도가 곧 6.25 한국전쟁이었고, 그 절대절명의 시기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런 일련의 움직임을 침략이라고 규정하고, 유엔군을 창설, 유엔의 21개국이 참전하므로 가까스로 대한민국은 공산화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의 번영한 자유대한민국,민주공화국은 자유민주 수호를 위해 온 세계 민족이 뿌린 고귀한 선혈의 핏값인 셈이다.

이 금쪽같은 대한민국 하늘 아래, 감히 그 누가 무신론의 뿌리가 되는 유물론의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 누가 변형된 공산주의, 삼부자 사교(邪敎)집단의 주체사상을 거론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 누가 우리 자녀들에게 이런 패악한 사상의 씨를 뿌릴 수 있다는 말인가? 오호통제(嗚呼痛哉)..

20세기에 출판된 책 중 가장 영향력이 있는 명작중 하나로 1949년에 출간된 조지 오웰 (George Orwell, Eric Arthur Blair 19031950)SF소설 1984( Nineteen Eighty-Four ) ”은 전체주의 독재, 구체적으로 스탈린 치하의 소련을 직접적인 모델로 쓰여졌다. 국민 개개인에 대한 국가의 감시, 사상 통제와 탄압체제를 고발한 그는 미래의 세대를 예언하며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전멸시킬 수 있는 무기를 소유한 두 세개의 괴물 같은 초강대국들이 핵 교착상태로 대치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오늘날 세계질서를 보면 형태만 바뀌었을 뿐, 냉전시대의 긴장이 그대로 고조되어 신 냉전시대로 진입, 여기 저기 스탈린의 망령이 분출되고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피아니스트 Yudina, 그녀는 단지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함으로 1930년 페트로그라드 음악원에서 해고 되었고, 1951년 모스크바 챠이코프스키 음악원에서 교수직이 박탈되었으며, 스탈린 사후,1960년에도 젠신음악대학교에서 조차 자리를 잃어 버렸다. 뿐만아니라 그녀의 생애 마지막 10년동안은 공식 콘서트 금지령까지 받아 정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힘겨운 고난의 삶을 살고 간 갸날픈 여인이다. 20세기 한 순교자의 표상처럼...


그 당시 어설프게 녹음된 1944년판 모짜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3번을 듣고 있노라면,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그녀의 깊고 단호한 숨결이 음표 하나 하나에 배어 온몸을 전율케 한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말씀하시면서 마 5:37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고 하셨다한국교회, 지금 옳으면 옳다,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입을 다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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