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욥5:17-18).
고난은 우리 삶의 모든 과정 중 일부
오늘의 시대를 말하기를 고난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전염병으로 인해 언제 죽음의 마수(魔手)가 나에게도 침범해 들어와 폐를 코로나 바이러스로 감염시켜 죽음에 이르게 할지 모르며, 알 수 없는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다. 신앙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의 강권적 인도하심을 믿기에 오늘도 두려움 없이 주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전에 갖던 고난과 다르게 느끼고 있다. 이 고난은 평범하던 일상 속에 살아가는 삶보다는 커서 그 고난의 무게가 가중(加重)되어 우리를 힘들게 한다. 이런 때에 욥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대답하며 고난에 대한 삶의 지혜를 준다.
욥은 까닭 없는 고난이 연속될 때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고 그 고난을 감내해 낸다. 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연단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꿋꿋이 서서 이유 없는 고난을 달게 맞는다. 우리의 인생이 주님의 손에 있기에 이 전염병의 고난은 우리의 삶의 모든 과정 중에 일부라는 생각을 하여야 한다. 곧 욥처럼 ‘정금같이 순전하게 나오는 것’이라고 고백 할 수 있어야 한다. 욥기에서 연단(鍊鍛, test, refine)은 제라프(제련)이 아니라 바한(검사하다, 조사하다)이라는 말이다. 그러기에 주님이 우리 인생을 달아보시며 조사하시고 계시다. 우리의 인생을 주가 아시고 달아보시며 고난을 통해 정금 같은 인생을 빚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당하는 우리의 고난의 삶은 이후에 주께서 사용하시기에 우리를 연단하시며 준비시키는 과정이라고 이해할 때 장차 올 영광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욥기 초반부에는 욥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고난을 당하게 된다. 재산을 다 잃고 자녀들이 갑자기 죽어버리는 상황이 펼쳐지게 된다. 건강을 잃어버려 끝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래도 욥은 신앙을 저버리지 않는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2).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고난 앞에서도 욥은 신앙을 지키며 고난의 의미를 감당하는 것 같다. 이는 바로 예수가 인류의 구속을 위해 십자가 길을 걸어가는 것을 이해하게 한다.
고난의 역사에 동참한 유진벨 가문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이러한 욥과 같은 고난을 당하며 천국의 비밀을 소유하며 그 고난을 겪게 된다. 우리나라 선교 초기에 배유지 선교사(유진벨, 1868-1925)는 1895년 4월 8일 한국에 파송되어 한국 사람과 같이 고난을 받으며 광주와 목포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여 20여 개의 교회를 개척한다. 또 광주에 수피아 여학교와 숭일학교를 비롯하여 목포에 정명학교와 영흥학교를 세우고, 광주기독병원도 설립하였다.
유진벨의 사위 윌리암 린튼 선교사, 셋째 아들 휴 린튼과 베티 린튼 부부는 순천에 살면서 결핵퇴치 운동을 하였고, 이 부부의 막내아들 인요한은 현재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이다. 그리고 지난 달 광주 YMCA는 창립100주년을 맞이하여 창립자 오방 최흥종 목사의 정신을 기리면서, 유진벨재단에 2020년도 오방상을 수여했다. 광주 양림동 유진벨 기념관과 오방 최흥종 기념관은 나란히 붙어 있어 요즘 역사탐험 관광객들의 명소가 되었다. 유진벨이 세운 광주 최초의 교회에서 오방 최흥종 목사는 최초의 교인이자, 집사였고, 장로를 거쳐 최초의 목사가 되었다. 두 분의 인연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유진 벨은 5대째 한국 선교를 계속하며 한국의 고난의 역사에 동참하며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하는 욥의 선교를 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고난의 십자가 뒤에 부활의 영광을 아는 인생이었기에 전남 영광 야월교회 일대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한국의 갈릴리 복음을 전한 예수의 후예로서 발자취를 남기며 오늘도 한국인의 가슴에 사랑의 불씨가 남아서 그 사랑으로 세계로 복음을 전하러 가는 발길이 이어지게 하고 있다.
“다만 이 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