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강해(4강)-당신청원(1)-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히 여겨라

  • 입력 2021.04.19 11:15
  • 수정 2021.05.1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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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마음이 담긴 소중한 기도 원리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대신학박사, 변화산기도원협력원장(춘천)

 

당신청원(2) “(당신의)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우리들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달라는 기도보다 먼저 해야 할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일용할 양식에 대한 기도보다, 죄사함을 받는 것보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먼저 기도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그분의 명예와 영광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의 필요보다 더 먼저 기도하고 우선해야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라고 주님은 가르쳐주셨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들의 의미를 되새겨보세요.

여호와(Jehovah, YAWH): 야훼 하나님

첫째, 하나님이 영원자이심을 말합니다. 우리가 여호와란 이름을 부르는 순간 우리는 시간에서 영원으로 들어가며 그리고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그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둘째, 여호와란 말 속에는 하나님이 자존하시는 하나님이심을 포함합니다. 모세에게 나타난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기를 나는 스스로 있는 자”(3:14)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셋째, 야훼라는 단어는 사람과 더불어 약속하시며, 계약을 맺으시고 약속하신대로 이루시며, 생활속에서 관여하시고, 역사하시는 구속자이신 하나님을 말하여줍니다.

 

엘로힘(Elohim, 1:1):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

엘로힘의 하나님을 아는 순간 우리 삶에 엄청난 변화가 찾아오게 됩니다. 더 이상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전폭적으로 맡기는 삶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 외에도 성경에는 다양한 하나님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이레(22:14): 모든 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

엘 엘리온(14:18-20):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 라파(15:26): 우리의 질병을 치료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닛시(17:15): 우리의 깃발이며 승리의 깃발이신 하나님

여호와 삼마(48:35): 상황과 환경속에 계시는 하나님

여호와 샬롬(6:24): 여호와께서 평강을 주심

여호와 치두케누(23:6): 우리의 의로움이신 하나님

여호와 라하(23:1):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양떼를 인도하는 목자이신 하나님

 

질문) 다양한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과 그분의 활동을 살펴보았습니다. 지금 당신에게는 어떤 하나님이 찾아오시기를 기도하며 사모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합니다.

십계명 중에 3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늘날 우리의 입술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얼마나 가볍고 경솔하게 불려지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함부로 야훼란 단어를 입술에 올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단어를 발음하기 위해서 먼저 목욕을 했으며, 그리고 오랜 세월을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단지 대제사장만이 대속죄일에 일 년에 한 번 거룩한 옷을 입고, 양의 피를 칠하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야훼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경을 읽다가 야훼라는 단어가 나오면 이 단어는 그대로 발음하지 않고 묵음으로 넘어갔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야훼라는 말을 부르는 것이 너무 황송해서 부를 수 없기 때문에 아도나이라는 말로 대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도나이란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주인이신 하나님, 내 삶의 주인이시며, 역사의 주인이시며, 내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나의 주인 되신 하나님입니다.

거룩의 원래 개념은 하나님께 속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달라는 기도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속하겠다는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세상에 속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나의 생각과 시간과 일터와 비전을 구별하십시오. 이것이 주님께 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합니다.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의 이름은 반드시 다른 모든 피조물과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다른 피조물과 비교하려는 어리석은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별된 거룩한 백성이기에 삶을 통해서 그분의 이름이 구별되어지고 존귀하게 여겨지며, 영광을 받으시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어떻게 해야 그분의 이름이 존귀해지는가?

첫째,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해집니다.

우리 마음이 그를 즐거워함이여 우리가 그의 성호를 의지하였기 때문이로다”(33:21).

당신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위대한 사상가 파스칼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대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대접한다는 것은 그분을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가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옴으로 그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하셨느니라”(10:3)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와 주님과 교제하며 또 주님을 소중히 여기는 흔적들이 내 생활 가운데 나타날 때 하나님의 이름은 영광을 나타낸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 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소중하게 여겨지십니까?

셋째, 주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가장 귀한 것, 최선의 것을 드리십시요.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들고 그의 궁정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예배할찌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96:8-9).

여러분의 귀한 것, 최선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요. 최선의 것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 되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 영광을 내가 취하지 말고 주님 앞에 다 드릴 때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3:30)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이름만 존귀하게 여깁시다.

다섯째, 우리의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해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하게 살지 않음을 경고합니다.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2:24)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이름이 그리스도인들로 인해 사회에 부담을 주고 걱정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존귀하신 이름이 욕을 먹고 있는 실정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5:16)고 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제 휘하에 알렉산더라는 졸병이 있었습니다. 형편없는 그의 생활로 말미암아 알렉산더라는 이름이 마구 더렵혀지고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알렉산더 대왕은 어느날 예고 없이 졸병의 막사를 방문했습니다. 겁에 질려 경례를 하고 있는 졸병 알렉산더에게 네가 알렉산더라지”, “”, “내가 두 가지를 명령한다. 네 이름을 바꾸어라 바꾸기 싫거든 네 삶을 바꾸어라! 그래서 그 이름의 오욕을 씻어라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으로 안디옥에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향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에는 그리스도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안디옥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이름을 같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일에 앞장서는 귀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질문)당신의 교회와 당신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욕을 먹고 있습니까? 아니면 존귀한 분으로 영광과 명예를 얻고 있습니까?                                                                      

 

사람에 대한 존중은 하나님을 경외하는데서 나오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도시 그날에 갔을 때, 그 곳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생명에 대한 두려움을 느낍니다. 결국 아비멜렉이 자기를 죽일까봐 아내를 누이로 속이고 왕에게 아내 사라를 주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느끼는 것은 무엇입니까?(20:12).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는 곳에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에 대한 경외심은 궁극적으로 어디에서 나옵니까?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외경심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는 곳에 바로 생명에 대한 존중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115-21절에도 마찬가지 예가 등장합니다. 애굽의 바로왕은 히브리 아들들이 태어나면 다 죽이라는 명령을 했습니다. 그런데 산파 십브라와 부아가 왜, 애굽의 바로왕의 명령을 거역합니까? 왕의 명령을 거역한다는 것은 결국에는 자신의 생명을 맞바꾸는 행동입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생명을 죽일 수 없어 갓 태어난 히브리 남자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사회의 비극이 어디서 찾아옵니까?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지 않는데서 문제가 출발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이는 생명에 대한 존중이 없습니다. 생명에 대한 존중이 없기에 서로 함부로 대하여서 결국 인간의 삶이 황폐해지고 살벌해지는 것입니다.

동양에는 유교 철학이 있고, 불교 철학이 있지만, 인권의식은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인권 의식은 매우 발달했습니다. , 이런 차이가 났습니까? 미국 사람들이 원래부터 잘났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의 유산이며, 기독교 문화의 유산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생명존중 사상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있을 때, 인간에 대한 바른 경외심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황무지와 같은 곳에서 일어나는 인권운동의 시작인 것입니다.

 

질문)인권존중 사상은 기독교의 신앙유산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 없이 약자의 권리나 존중이나 생명에 대한 경외심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시는지요?

                                                                              

 

바울은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떨어질 때 어떻게 된다고 말하는지요?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하느니라”(1:21-32).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를 거부한다

스스로 우상숭배의 어리석음에 빠진다.

오늘 우리 시대의 혼란과 죄악이 관영하고 인권이 무시당하고 생명이 경시당하는 문제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는 인간의 삶은 쉽게 무너집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것이 경외심이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친근감만 생각하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다면 인간은 방자하게 행동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걸 맞는 거룩함이 회복되어지기를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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