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0년 한국 인구 절반이하 감소-노인빈곤율 1위, 저출산1위"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의 달하면 떠오르는 것이 미래에 대한 기쁨보다는 어둠을 더 많이 생각나게 한다. 출생자는 급격히 줄고 노인 인구는 증가하고, 그 결과 사회적 침체는 당연한 결과로 다가온다. 2060년 한국의 인구는 현재의 절반인 2,500만 명 이하로 감소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풀어야할 심각한 뇌관이다.
특히 2020년 한국의 인구는 51,829,023명으로 2019년보다 20,838명이 감소했다. 1962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한 것이다. 인구 감소는 저출산 현상 때문이고, 한국은 2020년 출생자 30만명대 이하로 떨어졌고, 275,815명이 출생했고, 전년 대비 10.7%가 감소한 수치이며, 반면에 307,764명의 사망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전년대비 3.1% 증가한 수치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편이다. 더 큰 위기는 노인빈곤율은 이미 OECD 1위이며, 매년 4.4% 증가하고 있다. 4.4%는 매년 29만 명의 노인빈곤자가 늘어나는 셈이다.
2018년 노인빈곤율 43.4%이다. OECD 평균 노인빈곤율은 14.8%이다. 독일10.2%, 프랑스 4.1%이다. 한국은 2041년이 되면 셋 중 한명이 노인으로 구성된 나라가 된다. 가장 빨리 늙어가는 나라이며, 노인빈곤율 1위이며, 저출산 1위 나라이다.
저출산과 노인사망자 증가로 인한 인구감소는 교회 성장 둔화로 이어진다는 것은 필연적인 사실로 다가온다. 교회는 고령층으로 전락하면서 동시에 누적된 노인성도 사망자가 늘어난다. 외부로부터 새가족이 유입되지 않는다면 교회는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걷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된다.
과거에는 교회가 지역사회에서 사회적인 관계망의 중심에 있었다. 교회에 다녀야지만 선거에도 유리하고, 사업에도 도움이 되고, 사회적 약자들도 기댈 언덕이 되었기에 교회는 지역사회 네트워크의 중심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모든 정보를 손안에 든 핸드폰으로 연결하고, 가상세계에서의 다양한 관계망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고, 주변에 다양한 작은 커뮤니티가 많아졌다. 또한 가상세계에서는 자신의 아바타가 사회생활을 하고 있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서 살아가면서도 전혀 심심하거나 무료해하지 않는다. 현실과 가상세계를 동시에 살아가기에 전혀 외롭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는다. 이렇게 볼 때, 교회의 미래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또한 사회와 교회간의 온도 차이가 많이 난다. 교회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분위기가 서늘해지면 교회 부흥이 어렵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온도는 과거에 머물러 있고, 우리 사회는 다양한 공동체들이 계발되면서 틈새를 메꾸어 가고 있다. 그런데 교회는 여전히 교회 중심의 틀 안에 갇혀 있다. 세상에 익숙한 분들이 교회에 비집고 들어올 틈이 너무 비좁게 느껴진다. 전통적인 생각에 갇혀 있는 교회는 말한다. 우리는 그대로 있다. 너희들의 생각과 행동이 바꿔야 신앙생활이 가능하다는 논리가 아직도 먹혀들고 있다.
교회 공동체가 체질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역사의 퇴물로 전락할 가능성을 배제(排除)할 수 없다. 20세기 유럽 및 영국 교회의 현실을 우리는 눈으로 보았다. 그것이 먼 옛날의 동화속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는데,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쳐야 한다. 교회는 대안을 만들어서 지역 공동체안으로 비집고 들어가지 않으면 미래는 꿈꿀 수가 없다.
대안1 공교회 회복: 선교협동조합
교회회복을 위한 대안을 고려해본다면, 첫째로 공교회로서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공 교회"란 "한 몸"이라는 것이다. '혼자'라는 개념을 버리고 '함께' 라는 공동체로 문제를 바라보면 답은 있다. 선교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고리가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융합의 시대이며, 공유의 시대이다. ‘함께’라는 공동체적 개념이 우리 사회에 익숙한 언어와 논리와 가치가 되었다. 전도자가 말하기를,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다.” “혼자보다 둘이 낫다.” 격언에 보면 “백지장도 맛 들면 가볍다.” 두레의 개념도 협력이다. 협력의 정신은 성경의 원리이다. 선교협동조합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다.
“함께 있으면 넘어져도 도와준다.”,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다.”고 전도자는 지혜로운 삶의 방식을 전해주고 있다. 사람의 정상온도는 36.5이다. 노인은 36도로 체온이 식어진다. 아이들은 37도이고, 암세포는 35도에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생육광선 파동이 나와서 체온이 1도 올라간다. 체온이 1도 올라가면 면역력은 5배 증가한다. 함께라는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본다면 해결의 지점은 분명히 있다.
전도자는 말하기를 “세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라고 했다. 결국 공동체가 답이다. 연합이 답이다. 붕괴되어가는 지역사회와 교회 공동체를 회복하는 길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 답이다. 여기서부터 연결고리를 찾아간다면 해답이 나올 것이다.
노인빈곤율 1위인 한국, 고령화 되어가는 한국교회, 노인들에게 가장 좋은 복지는 무엇인가? 행복한 노년, 영적인 건강회복, 일자리 창출통한 소득증대 등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예를들어 선교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작은 것부터 해보면 좋겠다. 교회 공간을 다목적 용도로 사용하면 된다. 차를 마시고, 반찬가게를 운영한다든지 교회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분명히 변화는 찾아올 것이다.
대안2 교회의 존재 목적 회복: 관계의 전도망 구축
두 번째 대안으로 교회의 존재목적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교회 관계망을 뛰어넘어 지역사회에 네트워크를 넓혀가는 선교를 통한 영혼구원은 교회의 방향이다. 전도는 관계망이다. 관계의 선로를 따라 복음은 흘러간다. 교회 전도지를 나누어 준다고 해서 누가 감동받고 교회로 올 것인가? 낡은 전도 방식이다. 필요하지만 시대에 걸 맞는 고리가 필요하다. 너도 나도 공감할 수 있는 단어와 문화적 코드를 발견해야 한다. 전도지는 교회에 들어온 분들에게 필요한 시대가 되고 말았다.
한국사회의 화두는 일자리 창출이다. 일자리 창출은 정부와 기업만이 하는 유일한 것이 아니다. 교회도 선교전도 차원에서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고령화 사회, 노인빈곤층 증대, 사회적 관계망 약화로 인한 고립자 급증, 우울증 환자, 대면기피증, 불안과 공포에서 사는 분, 암환자, 장애인, 황혼이혼급증, 노인 및 청소년 자살 급증, 경제적 파산 등 고통속에 갇혀 있는 분들이 너무도 많다. 이것이 우리 교회 앞에 놓인 현실이다. 교회가 낡은 가죽부대를 가지고는 새포도주를 담을 수 없다. 일자리 창출은 자연스럽게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고리가 된다. 나이가 들어가면 폭넓은 사회적인 관계망이 점점 끊어지고, 결국 지역사회 중심으로 움직인다. 지역에서 조합회원으로 활동하며 일자리 및 봉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신앙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다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
초대교회 공동체는 복음적 생활형공동체였다.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는 어쩌면 초대교회의 삶의 자리와 비슷한 형편이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각 교회는 삶의 자리를 분석하고 연구하며 기도해야 한다. 남 따라 가다보면 경쟁력은 없다. 남이 하지 않은 길을 개척해야 한다. 작은 틈새를 찾아내서 복음이 흘러갈 수 있도록 현실에 맞는 대안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복음은 변하지 않았다. 복음은 원석이다. 원석을 자신의 교회에 맞게 만들어가는 것은 그 교회 구성원들이 해야 할 몫이다.
1%의 가능성에 사활을 걸라
교회를 이끌어가는 영적지도자들은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복음을 전할것인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연구하고 1%의 가능성을 놓고 역량을 동원해야 한다. 이것이 기독교의 정신이다. 1%의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움직임이 결국에는 역사의 흐름을 바뀌게 한다. 생각에만 머물러 있으면 인생은 변화가 없다. 1%의 복음적 대안을 가지고 뚫고 나갈 때 우리가 사도바울이 되고, 모세가 되고, 다윗이 되고, 느헤미야가 되고, 에스더가 되는 것이다. 우리 공동체는 '여기가 좋사오니' 머물러서 작은 열매만 하나하나 까먹다가 사라지는 그런 교회가 되어서는 안된다. 교회는 어머니의 자궁부터 천국까지 성도들의 일생을 보살펴주는 것이 목회이다. 70이면 마감하던 시대가 아니다. 최소한 100년 이상은 더 산다. 우리에게 주어진 영혼들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미리 한계를 정하고 포기하지 말라. 생각이, 비전이, 복음이 늙지 않는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