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미래가 존재한다. 단순미래? 의지미래?

화석인류(화석으로만 존재하는 인류):오스트랄루피테쿠스 인류의 발상지 아프리카 최초의 유인원
화석인류(화석으로만 존재하는 인류):오스트랄루피테쿠스 인류의 발상지 아프리카 최초의 유인원

코로나 팬데믹은 인류 역사의 새로운 분기점을 만들었다. 인류를 구분할 때 화석류와 사피엔스로 구분한다. 화석류는 화석으로만 존재하는 인류이다. 사피엔스는 '현생 인류', 즉 생각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사피엔스는 호머 사피엔스(생물학에서 쓰는 용어)와 호머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구분한다. 호머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진화된 현대인을 지칭한다.

코로나는 이 기준점을 바뀌어 놓았다. 코로나 이전 인류를 호머 사피엔스 사피엔스라 칭하고 코로나 이후 인류를 코로나 사피엔스로 구분한다. 어떤 학자는 코로나 사피엔스를 신인류라고 부른다.

이뿐이겠는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산업혁명에 새 시대가 도래했다. 코로나 이후를 4차 산업혁명의 분기점으로 정하고 있다. 영국에서 시작된 1차 산업혁명(1784)은 증기기관과 기계 혁명이고, 2차 산업혁명(1870)은 전기를 이용한 대량생산으로부터 시작되었고, 3차 산업혁명(1969)은 인터넷이 이끈 컴퓨터 정보화 및 자동화 생산 시스템이 주도하였고,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은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으로 이뤄지는 차세대 산업혁명으로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으로 대표된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기술, 드론, 자율주행차, 가상현실(VR) 등이 주도하는 차세대 산업혁명이다.

이 용어는 20166월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Dvos Forum)에서 포럼 의장이었던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이 처음으로 사용하면서 세계적인 이슈화가 되었다.

4차 산업혁명의 권위자 최재붕 교수는 코로나 19 이후에 4차 산업혁명은 가속화된다고 한다. 인류문명이 디지털 플랫폼 위주로 재편되고 있으며, 코로나 19로 인해 비대면 세상이 현실이 되었고, 앞으로 생존을 위해서 비대면 사회에 적응하고 디지털 플랫폼에 익숙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칼폴라니 사회정치연구소 소장 홍기빈 교수는 이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코로나가 던지는 메시지를 읽으라고 경고한다. 코로나 19로 인해 40년 동안 지탱해온 근본적인 지구촌 산업경제 구조가 무너지고 있다.

홍 교수는 말하기를 두 가지 미래가 있다. 하나는 단순히 예측해야 하는 미래가 있고, 또 하나는 우리가 마음을 굳게 먹고 만들어나가야 하는 미래가 있다. 앞으로 단순 미래는 불가능하다.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측이 안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미래를 대하는 방식은 결단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새로운 사회 시스템이 이미 깊숙이 들어왔고, 새로운 시스템을 강요받고 있다. 싫든 좋든 과거로는 돌아가지 않는다. 인류역사는 늘 분기점에서 앞으로 나아갔다. 도태 되느냐? 살아 남느냐? 교회든, 비즈니스 현장이든, 개인의 삶이든 이제는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덴마크 역사에서 분기점이 있다. 1865년 이전과 이후로 구분한다. 1865년 덴마크가 독일과 싸움을 해서 패전했을 때, 그들은 쉴리스비히, 홀스타인 등의 알짜배기 옥토를 빼앗겨 국토의 노른자위 1/3을 잃어버렸다. 결국 남은 영토는 척박한 황무지뿐이고, 게다가 국토는 전쟁으로 황폐하게 되었으며, 아이들은 학교가 폐교되어서 길거리에 나앉았고, 심지어 양말 신은 사람도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에 낙심한 젊은이들은 아침부터 술에 취해 뒹굴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룬트비(Nikolai Grundtvig, 1783-1872)
그룬트비(Nikolai Grundtvig, 1783-1872)

이때 그룬트비(Nikolai Grundtvig, 1783-1872) 목사와 신앙심이 깊은 엔리코 달가스 (Enrico Mylius Dalgas, 1828-1894)라는 예비역 공병 소령에 의해 전 국민 대각성운동이 일어났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밖에서 잃어버린 것을 안에서 찾자는 내용으로,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 나라를 사랑하고, 셋째 사람을 사랑하자는 것이었다.

나라를 빼앗긴 쓰라린 고통이 있었지만, 마침내 덴마크는 2019년 국민소득 60,170달러(2019)201946,467를 기록한 독일을 크게 앞서는 나라가 되었다. 패전국이 승전국을 크게 앞서는 상황이 된 것이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신 대표,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변화산기도원협력원장(춘천), 등

창세기 12장을 보면,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온다. 아브라함에게 영광의 하나님이 나타나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12:2). “I will you... and you will be a blessing"고 했다.

떠나면, ‘너는 복이 될지라’(개혁개정). 다른 번역을 보면, ‘복의 근원’(새번역), ‘복을 끼치는 자’(현대인의성경), '남에게 복을 끼쳐 주는 이름‘(공동번역)’, ‘a blessing’(NIV)으로 번역했다.

‘a blessing’을 그냥 복덩어리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은 해석이다. ‘a blessing'은 하나의 영향 덩어리를 의미한다. 하나의 인간이 하나의 영향이 되는 것이다. 복 덩어리는 유익한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다. 네 이름이, 네 인생이. 네 후손이 복덩어리 자체가 될 것이다. 이 선언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 그리고 말씀을 따라 미지의 땅으로 출발했다. 그 결과 '믿음의 조상'이란 거룩한 칭호를 받았고, 그의 허리에서 열왕들과 민족이 나왔고,  인류역사를 이끌어가는  영광스러운  구원자의 가문이 되었다. 아브라함은 성경에서 과소평가할 수 없는 이름이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 집사님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설교할때 아브라함부터 출발했다. 아브라함 이름 그 자체가 복 덩어리이다.

예수님은 누구인가? 신년을 출발하면서 우리는 다시 원점에서 생각을 가다듬는다. 예수님은 복 덩어리 그 자체이다. 예수님의 이름은 복 덩어리의 출발이다. 복덩어리를 마음에 품으면 그 자신이 복덩어리가 된다.

코로나 이후는 단순미래가 아니다. 늘 불확실함과 불안이 지배하는 카오스(chaos)의 세상이 되어버렸다. 코로나 이후는 우리가 만들어나가야 할 의지의 미래이다. 의지 미래는 믿음의 결단이 요구된다. 복 덩어리 그 자체이신 말씀되신 예수님을 모시고 산다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다.

지금은 위기이다. 가정이든, 교회이든, 비즈니스 현장이든, 국가이든, 복덩어리가 될 사람을 찾는다. 2022년 나에게 복 덩어리가 되어줄 사람을 찾지 말고, 스스로 복 덩어리가 되어 어두운 곳을 환하게 비춰주는 시대를 주도하는 인재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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