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청원(2) “나라가 임하시오며”
①주기도문의 중요한 청원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입니다. 유대인들과 예수님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유대인: 로마제국의 압제로부터 해방과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본국 귀환, 정치적 독립, 다윗왕조의 회복
예수님: 죄로 인해 분리된 인간이 하나님께로 회복하는 것, 즉 하나님 자녀로의 회복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해달라는 기도는 민족적 해방을 의미합니다. 유대 민족이 로마 제국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고, 이방에 흩어져 사는 유대민족을 회복시켜달라는 기도입니다. 유대민족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하나님의 통치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해달라는 기도는 유대인들의 기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우리 인간이 다시 창조주 하나님께로 회복하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났던 인간들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정치적 독립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민족적 해방을 말씀하신 것도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본국으로 귀환하는 것을 말한 것도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돌아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 속에 날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달라고 강력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대지로부터 뿌리 뽑힌 한 그루 나무’가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생명의 근원인 대지로부터 뿌리 뽑힌 나무는 죽은 것입니까? 아니면 산 것입니까? 살았다고 할 수도 있고, 죽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한동안은 나무 자체에 영양분이 있어 잎이 푸르지만 곧 시들어 말라죽어갈 것입니다. 나무가 대지에서 뽑힌 순간 그 나무는 죽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는 살았다고는 하나 영적으로 서서히 말라 죽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달라는 기도는 영적으로 말라죽어가는 인생이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②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결핍의 삶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궁극적인 결핍은 어디서 채워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에서만 결핍이 해결됩니다.
시편 23편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구원의 상태를 보여주는 시입니다. 이 시에는 결핍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직 풍요로움과 배부름과 기쁨과 만족과 행복이 가득차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사탄의 나라는 결핍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항상 욕구 불만이 있고, 기쁨 대신 아픔과 슬픔이 있고, 사랑 대신에 아귀다툼이 있습니다. 제한된 자원을 서로 많이 차지하려고 서로 늑대가 되어 다툼과 착취를 합니다. 이것이 사탄의 나라입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주의 자녀들이여. 그래도 돈이 먼저입니까? 건강이 먼저입니까? 명예가 먼저입니까? 자신의 소망이 먼저입니까? 이것도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이것보다 더 우선해야할 것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에는 자유함과 기쁨과 평안과 복음의 역사가 넘쳐나게 됩니다.
질문)시편23편 말씀을 천천히 묵상하면서 읽으세요. 그리고 느낀 점들을 서로 나누며 하나님 나라의 구원의 기쁨과 충만과 회복과 평안을 경험하세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③하나님의 통치는 관계의 회복으로 나타납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삭개오는 암몬 우상 숭배에 빠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삭개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했을 때, 삭개오는 회개하고 암몬의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라”(눅 19:9).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이 임했다고 선언했습니다. 삭개오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회복되고 곧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삭개오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이웃에게 착취한 재산을 돌려줍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8절).
하나님의 통치가 일어나면 놀라운 관계 회복이 일어납니다. 삭개오는 상호 갈등과 두려움과 공포와 멸시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샬롬이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웃과 샬롬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치유이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구체적이고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할렐루야.
질문) 하나님의 통치를 통해서 관계의 회복을 경험했고 누렸던 간증이 있다면 말씀을 나누어 보세요.
▶중풍병에 걸린 친구가 들것에 실려 주님께 왔습니다. 중풍병자에게 ‘네가 나았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작은 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막 2:5)고 선언하셨습니다. 너의 죄가 용서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중풍병자에게 다시 하나님 노릇해주심으로 육체적 질병으로부터 놓임 받게 되었습니다. 중풍병자에게 있어서 문제는 중풍병이라는 육체의 질병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는 죄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 용서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의 근본적인 문제인 죄를 해결하시고 육신의 질병을 고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지배하는 곳에는 이렇게 회복과 치유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떠난 곳에는 늘 결핍과 피곤함과 부족함과 곤고함과 병들이 존재하며 어둠에 지배를 받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나라가 임하는 곳에는 늘 회복이 충만하게 일어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