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한국교회 내의 목회 환경이 변화되면서 이제는 교회 재정에 사례비를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다른 일을 하면서 목회를 하는 목회자들이 많이 생겨났다. 하지만 단순히 생계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목회적 사명을 갖고 일하는 목회자들이 많다. 우리는 그분들을 ‘일하는 목회자들(일목)’이라고 부른다. 현재 페이스북 <일하는 목회자들> 그룹에는 약 8천 명의 멤버가 가입되었다.
오늘은 열세 번째 시간으로 양평 강상면에서 <공명교회>와 <책보고가게>를 공동으로 섬기는 황인성 목사(예장통합)와 백흥영 목사(예장통합)를 소개한다. 영국 웨일즈에서 유학 경험을 통해 유럽 선교를 준비 중이던 황인성 목사와 중국 선교를 준비 중이던 백흥영 목사가 양평에 머물며 지역목회와 가정목회를 공동으로 이뤄가는 이야기를 소개해본다.
Q1. 목회를 해야겠다는 소명은 언제 갖게 됐나?
A. 황인성 : 대학생 때였던 1998년도 영국의 선교단체에 우연히 참여하면서 선교사의 삶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을 했다. 이후 평신도 선교사로서 영국 선교단체 안에서 7~8년 정도 교육을 담당하는 리더로 활동을 하다가 본격적으로 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신학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2011년에 장신대에서 신학을 하게 됐다.
A. 백흥영 : 나는 중국어를 전공했다. 대학교 때 CCC에서 1년간 선교를 다녀온 후 평신도 선교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 담임목사님께 “선교사로 나가고 싶다”라고 말하자, “신학을 하고 나가라. 신학을 하지 않고 나가면 힘들다” 는 조언을 받아들여 선교 나가기 전에 하나의 코스로 신학을 하고 목회를 시작했다.
Q2. 그렇다면 영국 유학과 중국 선교를 하는 과정을 통해 겪은 에피소드는 무엇인가?
A. 황인성 : 영국 웨일스에서 공부했다. 영국은 기독교 국가로 보이지만 유럽은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가보니 교회들은 이미 많이 죽어 있었고, 영국교회가 살기 위해 여러 가지 몸부림치는 것을 많이 봤다. 카페나 펍(pub), International Evening(다양한 민족이 만날 수 있는 중립지대)를 고민하는 모습을 봤다. 웨일스 대부흥 있던 곳이지만 100년이 지나니까 거의 그 열정이나 기억이 사라진 것을 봤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선교는 개교회가 아니라 다양한 사역자들이 힘을 합쳐서 하는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A. 백흥영 : 중국에서 대학생들 위주로 선교를 했었다. 목회자 두 가정에 8명 정도의 학생들로 사역을 이뤘다. 그때 서로 다른 가치와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한 팀을 이룬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서로 다른 달란트와 색깔이 하나로 모일 때 시너지 효과가 있음을 봤다.
Q3. 현재 두 분의 목회자가 공동으로 사역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양평이라는 곳이 어떻게 공동으로 개척할 생각을 하게 됐나?
A. 황인성 : 백흥영 목사와 나는 이미 청년 때부터 수원성교회 출신으로 알고 있었다. 아내들도 마찬가지로 서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목회자 둘의 사역이 아니라 아내들도 함께 네 명이 같이 공동 목회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처음에는 공동 목회에 대한 계획이 없이 M.Div 과정을 마치고 목사 안수를 받으면 2016년쯤 다시 유럽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에든버러에 있는 대학과 교회와 협의하여 유학을 진행하다가 그것이 틀어졌다.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이 있을 때까지는 외국으로 나가려는 것을 멈추고 한국을 선교지라고 생각하며 목회하기로 했다. 양평은 연고가 없었지만, 양평을 선교지라고 생각하고 선교를 시작했다. 그 후 6개월 후에 백 목사를 만나 사역을 이야기했고, 그 후 1년쯤 지난 후 백 목사 가정도 함께 내려와 공동 사역이 시작됐다.
A. 백흥영 : 담임목사님의 말씀대로 선교사로 나가기 전에 신학 과정 3년을 마치고 다시 부목사로 5년을 섬겼다. 그러는 중에 가정사역에 관심을 갖게 됐고, “가정 선교의 불모지는 한국이 아닌가?”라는 아내의 조언에 가정사역을 고민했다. 당시 아이와 한 달 정도 해외 다녀올 생각으로 황 목사에게 조언을 구하러 갔는데, 황 목사로부터 양평에서의 공동 사역을 제안을 받았다. 이후 가정을 선교지라고 생각하고 두 부부가 같이 한번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으로 공동 목회가 시작된 것이다.
Q4. 이미 서로 알고 있는 관계라고 하지만 그래도 공동 목회라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면 목회자 부부 4명이 공동 목회를 할 때 어떻게 진행을 하는가? 또 각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A. 황인성 : 교회의 방향성을 정하는 것이 거의 1년 정도 걸렸다. 우리 각자가 꿈꾸는 교회가 무엇인지 서로 나눌 필요가 있었다. 주로 수요일 날 저녁에 커뮤니케이션을 갖는 시간을 가졌다. 대화를 많이 나누다 보면 의견 충돌도 있을 수 있지만, 소통을 많이 하려고 했다. 그래서 무엇인가 결정할 때 시간이 걸리기는 한다. 서로가 결정되지 않으면 억지로 끌고 가지는 않는다. 특별히 정해진 역할은 없지만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 시간이 좀 걸린다.
A. 백흥영 : 그렇다. 우리는 서로가 너무 배려를 하고 양보를 하다 보니 시일이 오래 걸린다. 공동 사역을 4명이 하는 것이지만 사실은 아내들이 사역의 70%를 감당하는 것 같다. 아내들이 직접 발로 뛰고 내조며 외조를 다 담당하고 있어 아내들의 역할이 굉장히 크다. 아내들로 인해서 공명교회와 책보고가게가 지탱해나간다.
Q5. 두 분 목사님들의 사역 중의 하나인 마을학교 프로그램을 보니 지역주민들과 아이들과의 소통의 장으로 보였다. 어떤 성과나 일들이 있었나?
A. 황인성 : 양평은 서울만큼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는 등 입시에 매여 있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학부형들은 아이들에게 다양한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싶어 했다. 서울은 방학 때도 아이들이 학원 공부로 바빴지만, 양평은 방학 때 아이들이 생각보다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학원 같은 느낌이 아니라 아이들과 즐긴다는 생각으로 얇은 영어책을 같이 읽는 모임과 백 목사님은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쳤다. 그러자 아이들이 6주 동안 6~70명의 아이들이 책보고가게에 오게 됐다. 그러면서 관계가 쌓였고 자연스럽게 공명 교회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예배에 참여하게 됐다. 지금은 매 달 한 번씩 카카오톡으로 소식지를 보내는데 200여 명이 지속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그 후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지금은 18개 강좌를 온오프로 진행하고 있으며, 약 70여 명의 아이들과 만나고 있다. 이것이 책보고가게의 원동력이다.
A. 백흥영 : 교육 인프라가 부족하다 보니 문화강좌를 시작했다. 물론 양평군에서도 좋은 강좌도 있지만, 우리들의 차별성은 관계성에 있다. 한 번 수업으로 끝나는 관계가 아니라 수업 이후에도 끊임없는 피드백과 만남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켰다.
Q6. 마을 책방과 목회는 서로 어떤 연결지점이 있나?
A. 황인성 : 책보고가게 손님들이 공명교회 성도들이 대부분이다. 그들과 함께 살겠다. 그분들이 책보고가게에 오면서 교회에 자연스럽게 출석하기 시작했다. 책보고가게라는 플랫폼이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에 올 수 있는 접촉점이 된 것이다. 책보고가게의 낮은 문턱을 통해서 교회를 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Q7. 마을책방의 운영은 어떻게 하나? 세미나실의 대여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호응은 어떤가?
A. 황인성 : 지금도 계속 고민하고 있는 분이다. 카페로도 등록이 되어있고 서점으로도 등록이 되어있지만 수익이 크지는 않다. 세미나도 진행하지만 세미나 수입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교회의 재정이 책보고가게로 넘어가지는 않는다. 교회의 헌금을 헌금 따로 결정하도록 했으며, 교회가 주중에 교회 공간을 사용하는 임대료를 보조하는 형식이다. 경제적인 부분은 백 목사나 나나 강의 등을 나가면서 얻은 수입을 통해 해결해 나간다. 어찌 보면 이중직은 넘어 삼중직으로 경제적인 부분을 같이 해결해 나간다고 보면 된다.
Q8. 한국형 선교적 교회에 대한 생각은?
A. 황인성 : 교회 내부에서의 개혁도 필요하지만, 젊은 목회자들은 최대한 빨리 기존의 교회 울타리를 벗어나야 한다. 사람들과 소통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목회자가 시간이 지날수록 교회 안 다니는 분을 만날 기회를 갖기는 쉽지 않다.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는 사람인데, 복음을 전할 기회가 없다. 책모임에서 비교인 분들을 만나는 것은 나에게 좋은 도전이다. 훈련이 되기도 한다. 관성에 젖지 않고 소통할 수 있는 장소와 대화하려는 태도가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신학생 후배들에게 가능하다면 팀사역을 꼭 권하고 싶다. 혼자 하는 것보다 분명한 시너지가 있다. 서울 외에 지방에서 현실적인 팀사역에 맞는 신학 공부를 하는 것이 좋겠다.
A. 백흥영 : 선교적 교회가 어떤 형태인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온전한 교회가 되면 형태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개교회 중심이 되면 이웃에 대한 관심이 적어진다. 한국은 의도적으로 선교적 교회라고 하지 않는 이상, 기존의 관성대로 갈 수 있다. 부목사 10년 정도 하다 보니 공통적으로 담임목사 루트 외에 생각을 못 한다. 그것 말고도 다른 방법과 방식이 있는데, 함몰되다 보니 도전이나 역동성이 없다. 그래서 또 다른 방식으로의 선교적 교회를 생각해볼 수 있다.
Q9. 그렇다면 교인들은 공동 목회를 어떻게 생각하나?
A. 황인성 :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사람들이 빨리 모여서 좀 당황하기도 했다. 목회자 두 가정만 모여도 9명이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모임에 함께 하고 싶어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교인들은 우리 목회를 즐기고 있다. 설교는 매일성경을 가지고 일관성을 두고는 있지만 성도들 입장에서는 두 목회자를 통한 다양성을 누리는 것 같다.
A. 백흥영 : 그렇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서로 다른 목회자들을 통한 목회적 다양성을 누리며 만족감이 크다. 성도들은 같은 성향에서는 친밀성을 다른 성향에서는 다양성을 누리는 것 같다. 성도들은 두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 9명을 만나는 것이다. 누가 대표인지는 의미가 없다. 우리 스스로 공동 목회라는 정의를 내리니까 편해졌다.
Q10. 동료 일목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A. 백흥영 : 일하는 목회자들은 정말 고생을 많이 한다는 것을 느꼈다. 고생하신다는 말씀을 하고 싶다. 희망을 주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앞으로도 고생할 것 같다. 그러나 그 초심을 잊지 않고 갔으면 좋겠다. 일목에게는 하나님이 매일 채워주시는 은혜가 있는 것을 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실 것이다.
A. 황인성 : 계속 이야기 하지만, 공동으로 목회하는 것을 추천한다. 팀으로 함께 할 수 있다면 서로에게 힘이 될 것이다. 목회자 자신이 먼저 행복할 필요가 있다.
Q11. 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공적인 교회로서의 교회의 사회적 책임, 공공성의 철학이 있는가?
A. 황인성 : 교회를 처음 시작할 때 고민했던 단어가 공명이다. 일상이 건강한 교회, 주중에 늘 만나기 때문에 따로 심방이 없는 교회, 재정이 투명한 교회, 함께 참여하는 교회, 마을을 섬기는 교회를 생각했다. 교회가 사회 안에서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으며 교회 안에서의 교회가 아니라 주일날 오는 사람만 목회 대상이 아니라 주 중에 만나는 모든 사람을 목회의 대상으로 생각했다. 강상면은 당연히 목회 지역이다. 다양한 목회를 생각하면서 주민 공모사업과 양평에 제로웨이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순절에는 탄소금식을 했으며 미얀마를 위한 기도회도 진행했다.
A. 백흥영 : 주일에는 기독교 용어를 쓰고 주중에게는 또 그들에게 맞는 이중 언어를 쓰는 것이 맞다고 본다. 또한 마을과 어떻게 평화를 만들어 갈 것인가? 고민을 하면서,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성경적인 가치관을 이웃들에게 전달할 수 있어 공적으로 나누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했다.
Q12. 장기적인 비전이나 계획이 있나?
A. 백흥영 : 거창한 목표는 없다. 앞서 사명선언문에서 밝힌 대로 성삼위 일체 하나님의 삶이 우리에게 와서 맞 울리고, 우리의 삶이 다른 이들에게 맞 울려져서 삶의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건강한 교회를 세워가지는 마음을 가지고 싶다. 그 안에서 마을과 조화를 이루며 지역을 생각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교회가 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