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교회력설교, 문철영목사, 이정표

  • 입력 2021.07.26 10:50
  • 수정 2021.07.2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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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도 성령강림절 열한번째 주간

문철영 목사, 연세대학교 신과대(B.A), 본대학원 Th.M, 및 신학전공 Ph.D 취득,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역임, 호서대학원 강사역임, 노량진교회 부교역자 역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인천노회 제 37대 노회장역임, 수정교회 담임목사(1989. 6. 20~ 현재까지)
문철영 목사, 연세대학교 신과대(B.A), 본대학원 Th.M, 및 신학전공 Ph.D 취득,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역임, 호서대학원 강사역임, 노량진교회 부교역자 역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인천노회 제 37대 노회장역임, 수정교회 담임목사(1989. 6. 20~ 현재까지)

1. 이정표(요 6:24-35)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했던 무리들은 그 장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없음을 확인하고 예수님을 찾아 배를 타고 바다건너편까지 왔다. 예수님을 만난 그들이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고 질문할 때에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찾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되질문을 하셨을 것으로 보인다. 이 질문에 대해 사람들이 침묵할 때에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를 지적해 준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이어서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한다.

먹고 배부르게 하는 것은 썩을 양식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가 된다. 그러나 표적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무슨 관련이 있는지? 궁금증이 생긴다. 표적은 무엇이며 표적을 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쉬운 말로 하자면 표적은 길을 안내하는 길표지판 곧 이정표이다. 그 이정표 곧 표적을 보아야 할 중요한 이유는 이정표가 지시하는 방향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풀어 해석할 수 있다. “너희는 이정표가 지시하는 방향에 관심이 없고 이정표를 마치 목적지인양 알고 더 이상 앞으로 갈 의지가 없이 완전 주저앉아있구나”.
그 때에 그들은 예수님께 이와같이 질문한다: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조상들이 먹은 광야의 만나는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하나님)께서 하늘로서 주신 것이다.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경험한 만나의 기적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것이 내려온 곳 하나님을 가리키는 표지판 곧 표적의 역할을 한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의 뜻을 알아차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은 “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라고 말할 수 있었다. 이정표가 지시하는 최종목적지에서 그 생명의 떡이 나오게 된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그 최종목적지의 자리에 생명의 떡이신 자신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2. 다윗의 자백(삼하 11:26-12:13)


  밧새바가 다윗 궁으로 들어와 다윗의 아내가 되어 아들을 낳았을 때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었다. 선지자는 비유를 다윗에게 말하였다. 양과 소가 많은 어느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있는 작은 암양 한 마리를 빼앗아서 지나가는 나그네를 위해 잡아 잔치 고기로 만들었다. 다윗이 선지자로부터 그 비유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고 하였다. 이어서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주어야 한다”고 했다.

다윗의 고백하는 순간 선지자 나단은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하였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7-9절)”.


다윗은 즉시 선지자 나단 앞에서 죄를 자백한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그 때에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고 하였다.

 

3. 서로 섬기는 삶(엡 4:1-16)


  에베소서 4장 1-16절의 중심은 독자들에게 옛 생활양식을 버릴 것을 권고하는 것이다. 에베소 신자들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우상숭배가 그들의 습관이 되었던 이방인들이다. 그들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앉아 있어도 그들의 생각과 마음은 우상 숭배적 사고방식을 버리지 않고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에베소서 저자는 그들에게 옛 생활양식을 버릴 것을 권고하고 있다. 옛 생활양식을 버리지 않으면 세상의 교훈과 풍조에 떠밀려서 믿음 생활의 본질에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에베소 신자들이 옛 생활 양식을 버리지 않고 신앙생활하게 될 경우 그들이 몸담고 있는 교회를 그들은 어떻게 이해하게 될까? 그들은 교회를 이익단체로 볼 것이다. 나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떠날 수 있는 곳이 된다. 그들은 교회를 자신들을 보호해 줄 집단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교회의 단체에 속함으로써 세상에서 더 강한 힘을 자랑할 수 있고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힘 있게 만들어 성이 교회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여기에는 열심을 낼수록 배타성과 폐쇄성이 강화되는 조직의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에베소서 저자가 말하는 교회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세상을 향하여 닫혀있지 않고 항상 열려있다. 뿐만 아니라 정체되어 있는 단체가 아니라 세상을 향하여 움직이고 맥박이 뛰는 모임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을 가진 자들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고 지체가 되어간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정체와 쉼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지속으로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는 것이 있다.
이 모임은 저수지 물처럼 물이 둑에 갇혀있는 것과 것이 아니라 둑이 없이 흘러내리는 강물과 같이 흘러가는 모임이다. 생명의 물길이 낮은 곳으로 흘러가듯이 하나님의 선이 흘러내려감으로써 세상에 충만하게 존재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우리와 무관하게 멀리 계신 분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 우리를 연결시켜 그리스도와 몸을 이루는 지체로 삼는 우리와 함께 하는 하나님을 인식하게 한다. 늘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에게 충만하게 임하여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13절)”.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지체로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은사)대로 우리는 지체끼리 서로를 섬길 수 있다. 그 은사를 따라 역할을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 직분이 주어졌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11-12절).”

 

4. 다윗의 통회(시 51:1-12)


  본 시편의 저자는 다윗이며 밧세바와 동침한 후에 나단 선지자가 왔을 때라고 표제어가 밝히고 있다. 다윗이 어떤 죄를 범했는가? 십계명 중 3개의 계명을 어겼다. 살인죄 간음죄 탐욕죄다. 다윗이 선지자 나단 앞에서 회개할 때에 무엇을 회개했을까? 당연히 세 가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출생 때부터 살아오는 동안 지은 죄와 모태에서 지은 죄까지 회개하고 있다. 다윗은 그가 실제로 지은 죄만 회개하면 되었지 출생 시부터 살아오면서 지은 죄를 회개하고 있는가?

뇌종양 수술을 한 분을 알고 있다. 두개골을 절개하고 뇌종양을 제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려 25회나 되는 방사선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뇌종양을 제거하였는데 왜 또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하는가? 종양의 뿌리에서 나오는 작은 종양까지 성장억제 또는 제거를 위함이라고 한다. 다시금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죄의 뿌리까지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윗이 그토록 죄에 심한 통회와 자복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다윗은 하나님의 성신이 그를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에게 머무는 것이 다윗에게 궁극적 목적이다. 그래서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고 그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해 주시기를 원한다. 그 구원의 즐거움과 정한 마음은 다른 것으로는 안 되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머물 때만 가능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10-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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