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이란 참기만하고 분출을 못해 생긴 마음의 병이다. 일명 스트레스라고도 할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모든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으랴 마는 인간으로서 자기 만족을 한없이 누렸던 왕이 솔로몬이다.
그는 1천여 명의 공주와 귀녀들을 처첩으로 두었고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쾌락을 누렸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을 다 누리고 삶을 결론 내기를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결론 내렸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스스로 다가오는 어려움을 인해 마음의 중심을 잡지 못하면 스스로가 마음을 천국으로 가꾸기도 하고 지옥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인간은 그 어느 면에서 상처와 한이 없는 사람이 없다.
1)가난의 恨이 있다.
2)못 배운 恨이 있다.
3)가족관계에서 눌린 恨이 있다.
4)직장에서 상사에게 받은 상처의 한이 있다.
5)교회에서 사람들에게 상처 받은 한이 있을 수 있다.
6)주위 사람들에게 인정 받지 못하는 것이 한 일 될수도 있다
이 恨을 마음에서 감사로 잘 승화시키지 못하면 마음의 독소로 남아서 큰 파괴를 가져오게 되고 그 영향력은 가정으로 직장으로 교회로 그 파괴력을 확대된다. 한을 쌓아 놓으면 그 결과는 질병으로 우울증으로 정신 분열로 가정 파괴로 사회 문제로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우울증이 마음의 큰 고통으로 자리잡아서 결국은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요즈음 우리 나라가 경제 발전으로 이어지면서 선진국이라는 스포트라이트 받았지만. 그 이면에 노촐된 어둠도 존재한다. OECD 국가중의 자살율 1위라는 불명예를 가지고도 있다. 특히 10대 남자와 20대 여자분들의 자살율이 크게 급증하고 있다. 이 문제는 사회정신적인 병리 현상이라고 볼수 있다. 자살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눌리는 스트레스가 개인적 사회적 정신적으로 크다는 이야기 일 것이다.
꽃같은 우리의 귀한 아들 딸들이 자살한다는 것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것은 육체적인 문제 이전에 정신적인 문제이다. 우리의 선배들은 그 고난의 전쟁터에서 고된 산업현장과 외국의 건축의 현장에서 고난을 뚫고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다.
자살의 반대는 살자이다. 조금만 참으면 될 것이다. 등산을 하다 보면 힘들고 지치는 부분이 정상이 오르기 전이라고 한다. 그래서 “깔딱 고개”라고 말한다. 인생의 깔딱고개를 넘으면 그 다음에는 마음을 시원하고 상쾌하게 하는 넓은 풍경의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있다. 고개를 넘어가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눈과 마음의 축복이라고 생각이 된다.
없는 것 보지 말고 있는 것부터 생각하자. 청춘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아름답고 귀하다. 우리 모두는 다양한 한을 마음으로부터 물리치고 수용하며 잘 소화해서 우리의 밥으로 삼아야 한다.
어떤 일이라도 그 어려운 일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새로운 차원에서 바라보면 해석의 길이 보인다. 롬8:28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고 했다.
창세기의 요셉은 야곱은 11번째 아들로 형제들에게 받은 상처의 한을 가슴에 품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로 보았고, 미래를 위한 하나님의 준비로 보았기에, 큰 마음으로 관용하였고, 이스라엘과 애굽 민족이 7년 풍년 7년 흉년의 상황에서 지혜롭게 정치함으로 위기를 이길수가 있었다. 요셉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총리요, 하나님의 섭리를 들어내는 인물이요, 이스라엘 구원 역사에 길이 남은 큰 인물이 될수 있었다.
삶의 무게앞에서 받는 마음의 상처(scar)인 한(anger)을 하나님의 섭리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상처가 별(star)이 된다. 요셉은 마음의 상처를 별로 승화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