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필 교수】 설교문에서 낮은 음성으로 선포해야 할 세군데

  • 입력 2021.12.21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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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문이 의심문이 되지 않도록 하는 법

세 번째 의문문 표현법

1) 의문문 1도 올리면 왜 의심문 될까?No.1 어찌합니까?어떻게 할까요. 감히 제가 감히 그녀를 사랑합니다. 조용히 나조차 나조차도 모르게 잊은 척 산다는 것 살아도 죽은 겁니다.

No.2 사랑하는 여러분! 공부 잘 되고 있습니까??No.3 총리께 묻습니다??OOO정부! 경제정책의 특징이 무엇이라 생각 하십니까??No.4 김대리! 그 프로젝트 잘 되고 있나??No.5 여보 지난번에 산 넥타이 어딨어??No.6 공부 잘되고 있니??No.7 성도 여러분, 기도 잘 되고 있습니까??위 일곱 개의 문장은 모두가 의문문이다. 어떻게 보입니까? 어떻게 들릴까요? 의문문 입니까? 의심문 입니까?? 의문문은 세 가지의 형태로 나누어진다.

순수 의문문? 의심문?? 동의문

특히 의문문은 말소리 1도 올리고 내림에 따라 의심문과 동의문으로 모양이 바뀐다. 우리의 일상에서 말꼬리 시비로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의문문이 의심(疑心)문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심 문에는 부정의 뜻이 숨어 있다.잠시 실습을 하겠습니다. 앞에 소개한 1번부터 7번까지의 예문을 읽어봅니다. 두 가지 형태로 소리 내어 보세요.

먼저는 파솔라의 높은 음성으로 끝을 올리세요. 일곱 개의 문장을 하고 나면 기분이 썩 좋지 않을 거예요. 탁한 공기가 입안에 가득 찬 느낌입니다. 블랙커피라도 먹어야 가라앉을 것 같군요.

다음은 도.레의 낮은 음으로 부드럽게 물음표 끝을 내립니다. 어떤 느낌이세요.의심 문 인가요?? 동의문 인가요! 의문문 인가요? 의문문이 동의문으로 바뀝니다. 위로와 격려와 긍휼이 생성됩니다.

 

의문문 1도 올리면 왜 의심문 될까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하루에 얼마나 하고 있습니까??이웃과의 관계는 잘 되고 있습니까??일터에서 열성을 다하며 근무하고 있습니까??위 예문은 의문문입니다. 이런 유형의 문장들은 설교에서 자주 들려오는 내용들이지요. 이 문장을 글로 만나면 순수한 의문문입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장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로부터 질문을 받게 되면 의문문은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어떤 모양으로 바뀔까요?7번 문제입니다.여러분은 하루에 기도를 얼마나 하고 있습니까??에서 교인들은 고개를 숙입니다. 목사님은 기도의 생활이 중요하기 때문에 물어본 것입니다. 강조한 거죠. 그런데 설교를 듣는 교인들은 고개를 숙입니다. 이어서 또 묻습니다. 이웃과의 관계는 잘 유지되고 있습니까??에서도 머리를 숙입니다. 설교자는 이웃과의 친밀한 관계를 말씀 드린건데그럼에도 고개를 들지 않습니다.세 번째 또 묻습니다. 일터에서는 열심히 근무하고 있습니까??이때부터는 고개도 고개지만, 얼굴표정이 씁쓰레 합니다. 예배를 마친 교인들의 모습은 대다수 우울한 표정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죽는구나.” “맨 날 못한다고 야단만 치시구만기쁜 표정들이 아니다.요즘 직장에서도 힘들어 죽겠는데, 교회까지 와서 지적만 받고 있구나” “에이 교회 그만둘까혼란스러워 합니다. 서로들 눈치 보기에 바쁩니다. 혹자는 그래요 우리는 못났고 목사님은 잘 나서 좋겠네요라고 생각하는 교인도 있다. 그럼 목사님의 얼굴 표정은 어떤 모습일까요? 설교자는 설교자대로 답답해합니다. 오히려 더 힘들어 하지요.설교시간에 왜 고개를 숙일까? 앞은 보지 않고 왜 시계만 쳐다볼까!” 목사님도 이해가 안갑니다 예배만 마치면 뛰어가는 사람들, 저래도 되는가!” “나는 모든 열정과 사랑을 다 쏟아 부었는데 성도들은 왜 마음을 안 열어줄까!” 고민이 깊어집니다.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 아마 이런 독백만 하게 될 것이다. “오 주여! 주님만은 이 종의 마음을 아십니다.”늦은 저녁시간에 사모님께서 한 말씀 하십니다. “왜 격려는 못하시고 야단만 치세요” “못한다고 하면 어느 누가 잘 할 수 있겠어요.” “당신 설교하는 모습 보면 정말 무서워요. 평소하고는 너무 다른 모습이에요. 갈수록 사나움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사모님께서는 목사님의 마지막 자존심 까지 건드리신다. OO목사님처럼 할 수 없을까요?”옆에서 듣고 있던 목사님은 어떠실까요? 저 같으면 그래 너희들이 해봐. 설교가 무슨 수필인줄 아나 한편의 설교 만들려면 17시간은 걸려. 쓰다가 한번 막히면 또 어떻고 쥐어짜도 안 나올 때는 어떤 줄이나 알아. 미친다 미쳐: 1년에 520번 설교야의문문이 의심 문으로 바뀌는 과정은 딱 한 가지 요인에서 비롯된다. 물음표 끝을 올려 부치면 의심문이 된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질문체를 보겠습니다.

4번 문제입니다.

김대리!그 프로젝트 잘되고 있나??”박과장이 큰소리로 물어본다. 물음표 끝은 어김없이 높이 올려 밀어 부친다. 마침 김대리는 커피한잔 마시고 있을 때다. “노는 꼴을 못봐요 커피 한잔 마시는 걸 가지고 아이쿠 저 인간 누가 안 잡아가나김대리의 불평스런 독백이 계속 쏟아진다.의심은 많아가지고, 사람을 못 믿고 무슨 일을 하나,” “저러니 사십팔 살 될 때 까지 결혼도 못하고 오십 넘으면 미혼이 아니라 비혼이야!” “여자들이 와서 잡아먹기라도 하냐?” 한번 폭발한 독백은 갈 때까지 간다. “시도 때도 없이 김대리! 결혼하면 행복할까?” “긴 머리 여자가 좋을까?” “짧은 머리가 좋을까?” 몇 년째야 머리 좀 길면 긴 머리 되는 거고, 긴 머리 자르면 숏머리 되는 거지듣는 사람 입장에서 의심으로 해석하면 상대가 미워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과연 박과장은 김대리가 못 미더워서 의심문으로 물어 보았을까요? 김대리 귀에 의심으로 들려왔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의문문 끝에는 의심문으로 변질되는 날카로운 갈고리가 달려 있다. 의문문 끝을 높이면 안 된다. 의심은 또 다른 의심을 부추긴다. 의심은 갈등과 불신을 조장하는 관계의 적이다.6번 문제입니다. 수능을 삼십 여일 앞둔 3학년 3반 자율학습시간.

교장 선생님께서 교실에 들어오셨다. 교정의 나뭇잎도 어느덧 누렇게 물들어 가고 있다. 이때는 소수 몇 명을 제외하고는 열공의 열기가 교실을 가득 메우고 있을 때다. 교장선생님께서 사기를 북돋아 주시기 위해 특별히 방문 하신 것이다.공부 잘되고 있습니까??”하는 순간 갑..(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진다는 신조어) 학생들은 얼굴을 찌뿌린다. 싫은 표정들이다. 교장선생님도 당황을 하신다. 학생들의 냉소에 실망이 역력하다. 큰마음,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왔는데 허탈하다. 1주일 전부터 격려사까지 준비했는데 돌발 사고에 말이 중단 되었다. 옆에 계시던 담임선생님도 콧등을 찡그린다.3분도 채 걸리지 않고 교장선생님과 학생들간의 미팅은 끝났다. 교장선생님은 긴 복도를 걸으시며 한숨을 내 쉰다. “이 나라가 어찌될까? 여름에는 선풍기, 에어컨, 겨울에는 난방, 공부하기 얼마나 좋은데, 밥이 없어, 책이 없어, 옷이 없어사실은 오늘 같은 이벤트를 계획하신 것은 친구 박교장으로부터 빅뉴스를 들은 후였다. “3 아이들이 많이 힘들어 하고 있으니 위로하고 용기를 주면 큰 힘이 될 것이다는 내용 이었다. 특강을 마칠 때쯤에는 박수는 물론 박동수! 박동수! 학생들이 자신의 이름까지 연호했단다.뿐만 아니라 고3 아이들의 눈빛에 진정성이 있었고 조는 학생 없이 의욕을 불태우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김 교장도 친구 박교장의 도움을 받아 오늘의 일정을 준비했던 거지요. 그런데 왜 친구 박교장은 성공했고 김 교장은 실패 하였을까요? 차이점은 딱 하나입니다.공부 잘 되고 있습니까?”의문문 문장 하나입니다. 설문지로 공부 잘되고 있습니까를 조사했다면 잘되고 있습니다. 조금 되고 있습니다. 요즘 집중이 안 됩니다. 재수 할 생각입니다. 공부가 뭐 중요한가요. 등등 각자의 처지대로 답을 합니다. 그래서 문자 언어의 의문문은 의도한 부정 문장이 아니라면 상처는 받지 않습니다.왜냐하면 답을 선택하는 주체가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의 의문형은 주체가 묻는 사람입니다. 의미를 의도하는 주체도 묻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문자언어에는 의심문이 없지만 음성언어인 말에는 의심문이 나타나는 거죠.2) 의심문은 왜 부정문 될까?공부 잘 되고 있습니까??”에서 니까를 올려 부치면 어떻게 들려옵니까? 공부 안 되고 있지? 로 들려옵니다. 의심과 부정이 동시에 섞여 있는 셈이지요. 특히 이때 청자의 위치가 아랫사람인 경우에는 더더욱 강한 의심과 부정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면 또 교장선생님이 허탈해하며 떠나간 교실의 분위기는 어떠했을까요? “칭찬은 안하시더라도 구박은 안하셔야지,” “얼마나 공부하기가 힘든데옛날 학력고사 시절에는 거저였데” “1때부터 입시준비하면 서울대학 갔었데” “2부터 준비해도 연.고대는 갈 수 있었다는 거야” “우리도 그때 태어났어야 했는데하는 소리하며, “왜 어른들은 다 똑같은 줄 모르겠어.” “우리 아빠도 공부 잘되니??”우리 엄마는 어떤 줄 아니 손 씻었니??”오늘 교장선생님도 공부 잘되십니까??”그럼, 과연 교장 선생님은 오늘의 사태의 원인을 어떻게 분석하며 처방을 내릴 수 있을까요? 의사가 진단을 잘못하면 잘못된 처방이 환자에게 돌아가듯 교장선생님께서 오진을 하게 되면 잘못된 결과는 학생들 몫이 된다.

독일의 사상가이자 언어학자인 훔볼트(Humvoldt, Karlwilhelm von) 에 의하면 언어는 지시 대상의 단순한 묘사가 아니다, 그것이 지시하려는 사물에 붙은 이름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훔볼트는 언어는 현실을 묘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창조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지하철에서 가끔 엄마와 자녀들간의 휴대전화 대화가 들려온다. “숙제 다 했니??게임하고 있니??수학 학원은 몇 시 부터야??학원 갔다 오면 손 씻어야지??”참 불쌍한 아이들이다. 의심을 먹고 자라면 의심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지요. 숨이 막혀온다. 의심과 부정을 먹고 자라면 정직하게 자랄 수 없다. 의심받는 부정은 오히려 직접적으로 듣는 부정보다 심리적 압박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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