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비보셋은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 왕의 손자다. 사울 왕 할아버지가 죽은 후 이스라엘 왕권은 다윗에게로 넘어갔다. 므비보셋은 20년 동안을 숨어 지냈다. 두 다리는 절고 있다. 다윗 왕 부하들이 언제 나를 잡으러 올까, 떨리는 두 다리를 부여잡고 숨죽이며 절규하는 청년 므비보셋을 상상해 보자. 인생의 고난 길에서 가장 비참할 때가 언제일까요? 오갈 데가 없을 때다. 므비보셋이 다섯 살 때 할아버지 사울 왕과 아버지 요나단이 전사했다. 유모가 므비보셋을 안고 도망가다 떨어뜨렸다. 그래서 두 다리를 절게 된 것이다. 20년을 숨 한번 크게 쉬지 못하고 이스라엘 지역 중에서도 가장 낙후된 곳에서 숨어 지냈다. 그런 그에게 궁으로 들어오라는 다윗 왕의 소식이 떨어진다. 다윗 궁전으로 들어가던 날 므비보셋은 이렇게 고백하며 외친다.
“개 같은 나를 불러주시다니요, 다윗 왕이여 감사합니다.”
다윗 왕은 므비보셋을 왕자처럼 대우한다. 왕과 함께 식탁에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다. 다윗의 행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사울 왕의 토지와 전 재산을 찾아 므비보셋에게 주는 다윗 왕을 보자. 정말로 멋있는 지도자다. 이것이 정치다. 긍휼은 지도자의 근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뒷일을 생각해서라도 정적들의 친가, 외가, 처가까지도 씨를 말려버리는 것이 권력투쟁의 반복되는 역사였다.
∙ 긍휼의 눈이 열리면 섬김의 손을 내밀게 된다.
∙ 함께 울어주고 싶고, 놀아주고 싶다.
∙ 품어주고 싶은 따뜻한 발걸음이 시작된다.
∙ 긍휼은 앉아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능력이다.
긍휼은 모서리만 보는 작은 눈이 아니라 전체를 보는 눈이다. 므비보셋은 얼마나 감사했을까? 아버지 친구인 다윗 왕을 보고 아버지라고 불러보고 싶었을까? 이런 덕치의 지도자를 두고 있는 백성들의 삶은 참으로 평온할 것이다. 독자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어려운 이웃을 보면 그들이 어떻게 보이는가? 여러분 스스로가 외롭고 힘든 시기를 보낼 때 손 내밀어 주셨던 분은 있었던가?
긍휼을 실천하라. 긍휼이란 마음에 품었던 따뜻한 결심을 현장으로 옮기는 행위를 말한다. 긍휼은 짠한 마음 나누고 싶은 사랑의 이름이다.
긍휼은 실천하는 것
내가 어느 날 공원에서 운동하다 벤치에 잠깐 앉아 있을 때였다. 한 청년이 휴지통 뒤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의 눈을 피하면서 슬쩍슬쩍 보았다. 어느 순간 내 앞에 다가왔다. 아저씨, 배고픈데 1000원만 주세요. 1000원을 줬다. 청년이 떠나간 뒤에 얼마나 후회했는지. 내가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인 줄 몰랐어요. 1000원 가지고 그 청년이 무얼 사먹겠어요. 쓰레기를 뒤적였을 정도면 세끼는 굶었을 겁니다. 그러니 설렁탕 두 그릇도 부족할 판인데. 그 후 그곳을 다시 몇 번이고 갔었다. 만나면 함께 밥은 못 먹어도 식사비는 주려고. 청년은 보이지 않았다.
몇 해 전 3월 이른 새벽이었다. 부산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서부역 건널목에서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 휴지통 뒤적이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그래도 무엇인가 하나씩 손에 쥐는 것이 있었다. 고기 뼈다귀 같은 거였어. 그분은 아마 수개월을 이틀에 한 끼 정도 식사했을 거다.
내 손에는 도시락을 들고 있었다. 새벽 기차를 타고 강의 가는 날에는 집에서 식사 못하니 주먹밥과 김밥을 싸준다. 할아버지의 마음 찡한 행동을 보면서 나의 머리와 마음에서는 여러 차례 도시락을 드리고 있었다. 몇 번이고 망설이는 동안 빨간 신호등은 파란 신호등으로 바뀌었다. 기차에서 도시락 두 번 먹다 못 먹었어. 흐르는 눈물과 바보 같은 어리석음에. 왜 실천하지 못했을까? 눈은 움직였는데 손이 움직이지 않은 거지요. 행함이 습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의미는 사랑을 실천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은 마음과 뜻을 모아 몸으로 행함을 보이라는 것이다. 사랑은 헌신, 희생, 나눔, 섬김, 용서다.
행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나는 그분들을 결코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께 물어 보았다. ‘아버지 하나님, 제가 잘못했지요?’ ‘그래. 네가 잘못했다. 이 놈아. 네가 교수 맞냐? 교수가 그런 행동 가지고 강의한다는 것 아직 멀었다. 인류평화 어쩌고저쩌고, 말로 평화하지 말고 한 사람만이라도 예수 사랑 증명해라’ 그러시는 것 같았다.
∙ 원칙만 보지마라.
∙ 법칙만 보지마라
∙ 사랑이 없는 정의는 말만 앞세운 주관적 편리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