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필 교수】 자족과 행복론

  • 입력 2022.01.1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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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족은 행복의 본질, 자족은 조건에 매이지 않아

행복론! 이 주제는 어떻게 보면 인생의 선배들이 그동안 그림을 그리다 미완성으로 남겨놓은 작품이라고도 생각해 보았다. 특히 서양의 수많은 서양 철학자, 사상가들이 풀려고 했던 문제들이다. 지금도 지구촌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것을 붙잡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이제 감히 내가 이 문제를 풀어 보려고 한다. 행복을 정의하기에 앞서 먼저 행복에 대한 이론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않고는 행복을 만날 수가 없다. 그리고 이제부터 나는 행복이란 단어 대신에 자족이란 말을 사용하겠다. 왜냐하면 자족은 본질이고 행복은 비본질이기 때문이다. 자족은 본체고 행복은 그림자다. 본질에 충실하면 비본질은 따라온다. 그림자는 스스로를 만들지 못한다. 본체인 몸통의 형상에 따라 그림자의 모양은 결정된다. 그러므로 행복의 모양은 자족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자족은 행복의 본질

그럼 자족이란 무엇인가? 자기 스스로의 만족이다. 그럼 행복은 언제 어디에서 채워지는 조건일까? 역시 행복도 스스로 만족할 때 채워진다. 행복한 사람에게 자족하냐고 물으면, 자족하다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자족하며 살아간 사람에게 행복하냐고 물으면 행복 하다고 답할 것이다. 그럼 자족과 행복은 같은 뜻인가? 아니면 차이가 있는 것인가? 차이가 있다면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있을까?

 

자족은 몸통이고 행복은 깃털이다.

자족은 행복의 모체다.

자족은 행복의 본질이다.

행복은 자족의 그림자다. 그림자는 본질이 아니다. 그림자를 잡을 수 있는가?

 

그림자는 형체가 없다. 잡으려고 하면 사라지거나 도망친다. 물론 그림자도 잠깐은 머무를 때가 있지. 그 그림자를 손으로 잡았다고 좋아할 때 태양이 가려지면 어떻게 할 건가? 더구나 그림자인 주체가 이동할 때마다 그림자를 잡기 위해 엎어지고 넘어지고 깨지고 자빠지면서 환경 탓, 세상 탓만 할 것인가? 행복은 왜 그림자인지, 본질이 아니고 비본질인지, 이 부분이 정리가 되어야 진실로 행복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행복은 객관적 판단으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행복은 타인의 기준과 세상적 평가로 해석되는 것 같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비교분석일 뿐이다.

외부의 기준과 타인의 평가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러움을 받았어도, 내가 행복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면 행복한 사람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타인들이 제시하는 행복한 조건이 없어도, 내가 행복의 기쁨이 넘치고 스스로 만족하면 행복한 사람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리의 생활 속에서 행복의 기준이 되는 요소와 조건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행복의 요소와 조건, 환경들은 시대에 따라 요구가 더 많아지고 있다. 한 개의 그림자도 잡을 수가 없는데 여러 개의 그림자를 잡으러 다니다 지치고 쓰러지고 넘어지고, 자빠진다. 20대가 생각하는 행복의 요소, 30대가 잡으려는 행복의 기준, 40-50대가 잡으려는 행복의 그림자, 60대가 호주머니에 넣고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행복의 열쇠들, 70-80대가 그리는 행복의 완성들, 연령별로 계층별로 이것들은 조건과 요소가 다 다르다.

행복의 조건

여러분은 혹시 지나온 시절, 내가 왜 행복하지 못하고, 무엇이 부족해서 만족하지 못했으며, 누구 때문에 주눅이 들어 고개 떨구며 자신 없이 살아 왔다고 생각하는가? 비본질의 그림자들을 열거해 보라. 그 허망들이 다 드러나게 된다.

일류 대학 이류 대학, 학교는 어디까지 나왔느냐? 집은 있느냐, 없느냐? 크기는 어떠냐? 어느 동네에 살고 있느냐?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전문직이냐, 일반직이냐? 인물은 어느 정도? 승용차는 어떤 차종이냐? 이러한 조건들 다 쟁취하면 평생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하기 위해서는 힘과 조건을 만들 필요가 없다. 만들려고 하면 행복은 도망치고 또 도망치고 그러다 인생 막바지에 가서는 인생은 헛되고 헛된 것으로 허망한 결론을 내린다.

 

자족은 사랑의 결정체

행복은 자족의 종속 변수다. 자족만 알면 행복은 그냥 따라오게 되어 있다. 이제부터 자신에게 물어라. 어떻게? 너 자족하고 있니? 김목사, 너 자족하고 있니? 최장로, 너 자족하고 있니? 행복은 나의 결과물과 남의 결과물에 따라 좌우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자족은 주님과 나 사이에서 사랑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결정체다.

자족 하면 떠오르는 신앙의 선배가 있다. 자족! 바로 자족의 삶을 살았던 사람, 그가 바로 바울이다. 신약성경 27권 중 13권을 기록한 인물이다. 유럽 사회에 예수그리스도를 소개한 복음 사역에 목숨을 걸었던 선배다. 바울처럼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기뻐하며 감사한다면, 누구든지 그 분야에 일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자기 분야에서 죽을 각오로 하되 억지로도 아니고, 슬프게도 아니고, 우리의 소망이신 오직 주님을 바라보며, 기쁨과 기도로, 감사함으로 달려간다면 자족의 삶을 살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며, 자족의 삶을 살다간 인물이다.

나는 그를 통해 행복의 본질인 자족을 발견했고 행복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에게 자신 있게 자족과 행복을 강의하고 있다. 다음 시간에는 바울 사도의 삶을 찾아가면서 행복의 뿌리(본체)인 자족의 비결을 전개해 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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