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의 마지막 행위는 전달력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의 내용을 세상을 향해 선포하는 행위를 설교전달이라고 한다. 성경의 본문 말씀인 재료를 가지고 양들이 먹을 수 있는 밥을 만든다. 이것이 설교문이다. 설교문이 완성 되었다고 해서 설교 준비가 끝난 것은 아니다. 그 설교 내용을 양들이 잘 먹을 수 있도록 요리를 해야 한다. 그 요리가 전달력이다. 학자는 재료만 소개하는데 그칠 수 있지만, 설교자는 밥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정창복 교수는 ≪설교학 서설≫에서 말씀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이론을 절실하게 주장하고 있다. “지금껏 준비된 말씀을 기다리는 양들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파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최종적으로 설교자에게 주어지는 심각한 과제이다. 아무리 훌륭한 내용으로 준비된 설교라 할지라도 그 설교가 회중들의 가슴속을 찾아들지 못한다면 그것은 설교로서의 가치성, 더 나아가 존재성마저 상실하게 된다. 그러므로 한 편의 설교는 수많은 준비를 거쳐 완벽한 원고를 탈고하는 데서 끝나지 아니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설교의 탄생이란 준비한 설교가 회중들의 가슴에 전달되고 거기 가서 불이 붙어 타오를 때에 우리는 한편의 설교가 창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똑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요리사의 실력에 따라 음식의 모양과 맛이 달라지듯, 설교의 내용도 설교자의 전달력에 따라 차이가 난다. 그래서 설교의 내용과 전달력을 설교의 두 기둥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설교의 전달력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기본적으로 네 가지 형태로 이루어진다.
1. 설명체
2. 이야기체
3. 대화체
4. 선포체
네 가지 모형이 하모니를 이루면서 성도들에게 전달된다.
1. 설명체
설명체란, 설명이란 단어가 말해주듯 어떤 문장이나 내용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어투가 설명체다. 학교의 선생님이나 교수님들을 떠올리면 된다. 주일 예배 설교를 예로 들면 이렇다.
“예수님은 누구일까요?” 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해야 한다. 이때 사용하는 어투가 설명체다. 음성의 높이는 주로 낮은 음인 10-30의 음성(도.레.미)에서 이루어진다. 유의 할 점은 설명체를 이야기체로 한다거나 선포체로 전달하면, 본래의 의미가 변질되어 전체의 내용이 부조화를 이루게 된다.
2. 이야기체
말 그대로 설교문의 내용이 이야기 내용 부분으로 이루어졌다면 이야기체로 실감나게 맛나게 하면 된다. 일반 예화가 여기에 속한다. 설교문에서 일반예화의 역할은 본문의 주 메시지를 돕는 보조 역할이다. 음성의 높이는 10의 음성-20의 음성(도.레높이)에서 처리한다. 또한 성경스토리를 사용할 때도 이야기체를 사용한다.
성경스토리란, 성경의 인물이나 사건을 말 한다. 본문의 주 메시지를 선포한 후 그 메시지를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기 위해 성경스토리를 사용할 때가 많이 있다. 예를 들면 로마서 4장을 본문으로 택하여 설교할 때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을 실감나게 이야기해야 한다. 이때 사용하는 어투가 이야기체다. 음성의 높이는 10-30의 음성(도.레.미)이다. 일반 예화와 차이점이 있다면, 설명체와 함께 곁들어 사용하는 특색이 있다.
설교에서 성경 스토리는 2-3개 포함되어 있다. 아브라함 이야기, 요셉, 야곱,다윗, 사울왕, 바나바 등등 본문의 말씀을 논증할 때 사용한다.
특히 설교자가 명심해야 할 원칙이 있다. 설교문은 암기 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기계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설교문을 보면서 낭독하는 것은 설교자의 직분을 상실한 태도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설교자라면 성경을 줄줄 꾀고 있어야 한다. 특히 성경스토리(성경 인물이나 사건)를 말할 때는 설교문을 안보고 해야 한다.
3. 대화체
대화 할 때나, 인사 나눌 때 사용하는 어투가 대화체이다. 서로가 인사 나눌 때 수첩을 꺼내어 자기 이름을 소개하거나,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를 말할 때 수첩을 보고 인사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렇듯 설교전달에서 성도에게 전하는 안부 인사나, 대화식을 표현 할 때는 대화체를 사용한다.
이를테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주간동안 평안하셨는지요? 요즘, 제법 날씨가 차가워졌습니다. 특히, 일교차가 심하니 따뜻한 물도 드시면서 생활들 하십시오. 장로님,권사님들 건강관리 잘하셔야 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전달 할 때는 평범한 대화체로 해야 한다. 만일 설교문을 보고 한다면 얼마나 어색할까?
4. 선포체
설교는 하나님의 명령문이다. 그래서 본문의 주 메시지를 선포 할 때는 담대하게 명령하듯이 해야한다. 설교에서 가장 난해한 부분이 선포체다. 잘못하면 야단이나, 지적이나, 호통처럼 들려서 성도들이 거친 설교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한 오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 수요일까지는 설교문 작성을 마쳐야 한다. 목.금.토 3일 동안은 강대상에서 5-7회 정도는 리허설을 해야 한다. 연습만이 답이다. 훈련도, 준비도 하지 않고 성령님만 의지하면 안 됩니다. 내가 할 것은 내가 해야한다.
∙ 몸이 설교해야 한다. 설교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을 체화라고 한다. 학자는 이론을 연구하고 논문을 작성하는데 책상에서 한다. 하지만 ∙ 설교자는 책상과 운동장(강대상)을 넘나들며 연습해야 합니다.
선포체에서 주로 사용하는 음성의 높이는 30-60의 음성(미.파.솔.라)으로 선포한다. 설교문은 설교자 자신이 작성해야 한다. 서론부터 결론까지 작성해서 반복 또 반복 연습하여 몸에 익힐 때 까지 꾸준하게 연습해야 한다. 그런 후 강단에 올라 갈 때는 A4 3매정도 압축하여 준비하는게 좋다. 그래야 설교문에 대한 의타심이 없어진다.
대다수 설교자의 설교문은 설명체, 이야기체, 대화체, 선포체로 구성되어 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여러 악기가 어울리면서 한 폭의 음악을 만들어 내듯, 한편의 설교 선포도 4개의 설교체들이 연합하여 하나가 된다.
• 설교문이 그물이라면
• 설교 전달력은, 그물 던지는 실력입니다.
• 설교문이 활이라면, 설교전달력은 화살입니다.
로이 피어슨 Roy Pearson 의 설교 전달력의 중요성을 들어보자. “20시간을 쏟아 작성한 한편의 설교가 20분간 이란 짧은 시간에 파괴 될 수 있다.”
필자는 20여 년 동안 한국의 담임 목사님 1만 5천명을 만났다. 세미나 현장과 각 교단노회, 지방회 초청 강의를 통해 만났다. 특히 6개월-1년 과정의 정규과정에서 는 1500명의 목사님들을 만났다. 기독교 TV 설교방송을 통해서도 설교를 만났다. 거기에서 얻은 공통된 점은 설교를 잘하려고 하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현상이다.
다음은 필자의 견해다.
• 연습은 잘해야 하지만, 예배의 현장은 맡기는 것입니다.
• 성령님이 키워가는 설교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1. 설교를 잘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2. 설교에 멋(연기)을 부리면 안 됩니다. 이것은 타락의 시작 입니다.
3. 설교는 뿌리는 것이 아니고 정성껏 심는 것입니다.
4. 설교는 잘하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5. 목사님은 설교를 죽을 각오로 준비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