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어려움은 가장 편안한 관계에서 드러난다. 편안한 관계라는 것은 여러 각도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편안하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갖고 있는 결핍된 심리적 상황들이 드러날 수 있는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는 뜻이다.
상담 수퍼비전을 받는 과정에서 연인관계를 얼마만큼 유지했었는지, 또는 관계적인 갈등을 어떻게 풀어갔었는지를 질문을 받은 경험이 있었다. 그때는 결혼 전이었고, “도대체 이런 질문을 왜 하시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앞서서 저항감이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그냥 가볍게 듣고 지나갈 수 있는 질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인에게 관계적인 만족이나 갈등을 풀어가는 방식에 대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채우지 못했던 결핍된 마음의 공간을 무의식적으로 바라는 욕구가 있었음을 생각했었다. 갈등을 풀어가는 방식 역시도 부모님이 서로 갈등을 풀어가는 방식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갈등상황일 때는 몰랐었다. 그런데 내가 어릴 때부터 경험했던 경험들이 친밀한 관계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부터 내면의 깊은 성찰을 하는 동기가 되기도 했다.
사람의 발달과 관련해 여러 이론들이 있다. 특히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발달과정에 여러 이론들이 있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비슷하다. 인간은 초기관계경험을 통해서 인간관계에 필요한 기초적인 내면의 능력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초기관계경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어머니로부터의 관계 경험들이다. 타인과 자신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 애착, 감정조절 능력과 같은 내면능력은 초기관계 경험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이다. 이때 경험으로 인해 자기 자신에 대한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형성된 이미지는 대인관계에 있어서 결정적인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심이 된다. 이를 가리켜서 대상관계이론에서는 자기대상이라고 한다.
자기대상을 중심으로 여러 관계가 점점 확장되는 것이다. 이후 아버지의 관계 경험이 합류하면서 보다 입체적인 인간관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리고 친구들, 또래와의 관계 사회적 관계로까지 기초가 되는 것이다.
탑으로 비유를 든다면, 가장 아래에 있는 탑이 튼튼해야만 그 위에 있는 탑들을 쌓는데 수월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가장 기초가 되는 가장 아래에 있는 탑이 튼튼하지 못하다면, 나머지 위에 있는 탑들 역시 튼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연인관계도 같다. 연인관계도 가장 아래에 있는 탑이 튼튼히 자리를 잡아야만 나머지 위에 탑들이 안정감 있게 쌓여질 수 있는 것처럼, 초기관계경험으로 인해 형성된 내면의 가장 기초적인 관계능력이 중심이 되어야만 연인관계도 안정감 있는 관계가 형성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개 초기관계경험을 통해 채워졌어야 될 마음의 공간을 연인관계에서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관계적 요구에 만족이 되지 않을수록 관계에서 불안정함과 불만족을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크다.
스포츠 선수는 잘못된 자세를 교정하기 위해서 반복된 훈련을 통해서 교정해야 한다. 충분한 훈련을 통해 익숙해진 자세가 만들어지기까지 몇 번의 좌절과 반복된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시간이다. 그래야만 실전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관계적 훈련도 동일하다. 초기관계경험을 통해서 형성된 자세를 바로 잡는 것은 단시간에 얻을 수 있는 결과가 아니다. 지속적인 훈련과 좌절된 경험을 통해서만 얻어낼 수 있는 결과다.
상담훈련을 진행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담을 통해서 상대방을 고치려고 하는 목적을 갖고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훈련 과정을 통해서 나에게도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자기 인식을 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훌륭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기인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각자 자기 입장만 생각하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인식이 되면 상대방도 생각하게 된다. 나의 실수와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고 있었는지, 내가 어떻게 행동하게 되면 상대방이 만족스러운 관계경험이 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상담사가 무조건 답을 알려주는 방식은 결코 좋은 방식이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상황에서 스스로 문제를 찾아가고 해결할 수 있는 독립성을 길러주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인관계 즉, 자신에게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관계에서 비밀스러운 자신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는 초기관계에서 부족했던 마음의 공간을 채워달라고 하는 무의식적인 요구이다. 그렇다고 본다면, 각자 상대방의 부족한 어떤 영역을 채워줄 수 있는 인격훈련이 매우 필요하다. 자신을 알게 될수록 상대방이 보이기 때문에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