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특히 남녀주인공이 나누었던 “자기를 위해 추앙”하라는 대사가 화제가 되이고 했다.
‘추앙’의 뜻은 ‘상대방이 나를 존중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러나 드라마상에서 내용 흐름으로 봐서는 자신에게 채워지지 않은 공허함을 상대방이 추앙함으로써 만족하려고 하는 갈망과 어울리는 듯 한 느낌이 더 강하다.
사실 추앙의 의미를 상담적인 관점으로 보면 여러 각도로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자신의 공허한 마음을 상대방으로부터 무조건 채우려고 하는 태도로 관계를 시작한다면,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릴 적 경험은 한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대인관계나 감정의 방식을 형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신에게 중요한 양육의 대상으로부터 공감과 의존 그리고 보호의 경험이 결핍이 될수록 자신의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을만한 상대를 찾아 추앙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추앙했던 기대를 상대방이 실망하게 된다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대표적으로 회피행동을 예로 들 수 있다. 회피행동은 자신에게 느껴지고 있는 불편한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대처행동을 하는 것인데, 상대방과 단절을 한다거나 거리감을 가지려고 하는 행동이다. 인간은 상대방으로부터 추앙을 받고자 하는 마음은 인간의 욕구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자기입장에서만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을 맞추기를 바라는 것은 결코 건강할 수 없다.
애착이론에서 보면, 많은 사람들이 어린아이를 양육을 할 때 아이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장난감을 사주는 등 물질적인 것으로 제공할 수 있는 것만 하면 자신의 역할을 다 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정서적 양육이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더라도 사랑받는 느낌을 경험하면서 음식을 먹으면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자체가 매우 소중하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라고 하는 자기개념이 만들어가지만, 정서적으로 만족스러움을 경험하지 못한 자녀는 건강한 가기개념 형성을 기대할 수 없다. 정서적인 돌봄을 제공받지 못하면, 그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갈급한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누군가를 추앙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인간은 누구나 사랑받는 느낌을 굉장히 그리워할 뿐만 아니라, 갈급함을 채우기 위해서 여러모로 노력을 하면서 지내게 된다.
나의 어머니는 객관적이시고 이성적인 성격이시다. 어머니로서 정말 자식을 사랑하시고 최선을 다해 양육을 하신 것은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 감사하다. 어느 부모나 자기 자식을 사랑하겠지만, 당시 부모님 세대들은 정서적인 양육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으셨을 것이다. 내 어머니도 그러셨다. 그러다보니 결혼을 해서는 어머니에게 경험하지 못 했던 정서적인 따뜻함을 아내에게 많이 추앙을 요구했던 모습이 있었다.
내가 기대했던 만큼 아내의 반응이 이성적이고 객관적이며 마치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껴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솔직히 때로는 그런 불편한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몰라 심리적인 방황을 경험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내 역시도 같은 입장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내도 부모님으로부터 무조건적으로 건강한 정서적 돌봄을 제공 받지 못 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로가 같은 입장인데 그동안 내 입장만 생각했었던 것이었다.
우리 마음에는 취약한 아동이란 개념이 있다. 겉으로는 건강해 보이고 사회생활을 하는데 불편함은 없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언제나 외롭고, 이해받고 싶은 취약한 아동이 누구에게나 있다. 취약한 아동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돌보거나 알아차림이 없이 지낸다면, 취약한 아동영역에 의해서 나오는 욕구적인 추앙은 상대방에게 관계적인 갈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오랜 시간동안 취약한 아동과 많은 교제를 나누고 지내고 있다. 취약한 아동이 느껴지는 감정에 대해서 느껴보고 그 감정에 대한 일기를 쓰기도 하고, 성인이 지금의 내가 내 마음에 있는 취약한 아동의 외로움을 스스로 달래주는 시간을 항상 갖고 있다. 처음에는 이런 작업이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일으키는지 몰랐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취약한 아동이 안전하게 자리를 잡을수록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방식이 매우 안정적으로 변하게 된다. 신앙생활을 하지만 취약한 아동에 대한 극복이 없다면, 취약한 아동의 영역으로 인해 심리적인 추앙을 누군가에게 매우 기대하게 될 것이다.
말씀을 읽고 묵상을 하더라도 취약한 아동에게 말씀을 적용해본다면 어떨까? 말씀과 취약한 아동이 교제를 나누고 영적인 공급을 매일 같이 일정하게 제공받는 과정은 건강한 미래를 준비하는 현재가 될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