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정부에서 운영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 바로 빅터 플랭클린(Viktor E. Frankl) 박사다.
플랭클린 박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경험했던 경험을 토대로 훗날 의미요법(Logotherapy)를 창시하였다. 프로이드(Freud)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욕구중심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플랭클린 박사는 인간의 행동 동기에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의미중심으로 이해한다.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절박한 수용소 생활이었지만 삶의 의미를 갖고 있는 사람은 그 환경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인간이 이해에 대해 의미중심으로 접근한 것이다. 좀 더 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인간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태도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결정 또한 본인이 해야 하는 자율성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율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영적인 존재’다고 말한다. 영적인 존재라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 개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겠다는 선택을 하고, 그리고 그런 선택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인생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차원에서 영적인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플랭클린 박사는 유대인으로서 어릴 때부터 받아온 종교적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인간이해에 있어서 영적인 존재로만 멈추지 않고 더 궁극적인 영적인 본질적 실체를 만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또 다른 태도를 갖고 경험될 수 있는 자유는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스톡데일은 전직 해군 장교이자 미국 부통령 후보였다. 베트남 전쟁에서 잡힌 미군 포로 중 최고위 장교였던 스톡데일은 7년간 포로생활을 했다.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 그는 반복적인 고문을 당했고 많은 고통을 받았다. 그가 살아서 나갈수 있다는 것을 믿기는 아주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중에 콜린스가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를 저술하는 과정에서 스톡데일 장군을 인터뷰했을 때, 스톡데일은 그가 베트남 포로 생활 중 겪었던 엄청난 고생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가장 소중한 경험”으로 만들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밝혔다.
콜린스는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에 가장 정신적으로 힘들어했고 포로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던 포로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질문했다. 스톡데일의 답변은 다소 의외였다. “나는 어떤 사람들이 살아 나오지 못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긍정적인 사람들이었다.” 콜린스가 그게 어떤 뜻인지 재차 질문했을 때, 스톡데일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들은 ‘우리는 크리스마스에는 나갈 수 있을거야’ 라고 말하곤 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갔을 때, 그들은 ‘다음 크리스마스에는 나갈 수 있을거야’ 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러 번의 크리스마스가 석방과 관련된 아무 좋은 소식이 없이 지나갔을 때 그들은 좌절하면서 죽어갔다.”
콜린스와 그의 연구진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살아남은 11개의 조직을 연구했다. 콜린스는 그 조직의 리더들은 강력한 심리적인 양면성을 갖추고 있음을 발견했다. 한쪽에서는 현실의 잔인한 어려움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였다. 다른 한쪽에서는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결국 위대한 조직으로 거듭 날거라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콜린스는 이와 같은 심리적인 양면성을 스톡데일 패러독스라고 이름 붙였다. 이것은 현재 우리가 COVID-19로 인해서 맞닥뜨리고 있는 위기 상황에도 잘 적용된다.
“언젠가는 잘 될 거야”, “언젠가는 끝날거야” 이런 막연한 긍정적인 생각은 오히려 나를 발전시키지 못한다. 정확하게 현실을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지금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삶의 의미가 만들어지고 내 삶의 새로운 일들이 발전되어 갈 수 있다.
다시 플랭클린 박사 이야기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이렇다. 같은 상황과 어려움이다. 그러나 그 상황을 대하는 방식은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고 해도 긍정적인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는 것이 오늘이라는 현실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것을 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의 모습이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요즘 무기력한 젊은이들이 많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느끼지 못하는 심리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무기력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기력은 작은 것이라도 행동할 때 극복될 수 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마 25:21)
작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큰 열매를 기대할 수 있는 시작이다. 무기력은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지는 법은 없다. 그러나 인간에는 극복 못할 환경은 없다. 작은 것이라도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주어진 환경을 살아갈 때 나의 길이 열어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