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현대인들에게 많이 나타나고 있는 마음의 감기다. 그렇다면 어떤 성격의 소유자가 우울증을 잘 걸릴까?
대략 보면 이렇다. 남한테는 잘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성격 좋은 사람으로 평가를 많이 받는다.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 하는 것도 싫어하고, 싫은 소리 듣는 것도 싫어하는 성격, 누가 뭐라 한마디 하면 오래오래 곱씹고 상처를 잘 받는 성격, 잔걱정이 많고 무슨 일이 있으면 해결될 때까지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성격. 계획한 일이 내 뜻대로 안 되면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 등을 뽑을 수 있다. 한 마디로 ‘완벽주의적인 성향’이다.
자기가 세운 계획대로 일이 잘 안 되거나, 타인으로부터 자기가 한 일에 대한 인정을 받지 못하면 견디지 못한다. 완벽주의적인 성향은 모든 일을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부단히 애를 쓴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부탁을 받았을 때 거절을 못하고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다보니 결국 한계에 부딪친다. 또 에너지를 너무 과도하게 사용을 하다보니까 금방 심리적인 탈진을 경험하게 된다.
지금까지 상담센터에서 우울한 내담자들을 만났을 때 자신이 현재 우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 대부분 “잠이 안 온다”, “기운이 없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눈물이 난다”, “밥맛이 없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고 신체증상 위주로 자신의 상태를 말한다.
그나마 호소하는 분들은 “슬프다”, “자신감이 없다”, “사람을 만나기 싫다” 등을 말한다.
예수님이 만나셨던 사마리아 여인은 당시 어떤 심정이었을까? 남자들에게 많은 상처를 받았던 여인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남편도 관계적으로 쉽지 않은 상태였다. 인간은 관계적인 존재여서 다른 사람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면서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이 만나셨던 사마리아 여인은 사람들을 피해 아무도 없는 시간에 우물물을 길어 올리고 있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였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자신을 부인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마리아 여인을 예수님이 만나셨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만남 즉, 교제가 이어지면서 여인은 점점 마음의 힘을 얻기 시작한다.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사람을 피해 생활했지만, 만남 이후에는 살고 있는 동네에 가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선포하는 모습으로 변했다. 다시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행동변화까지 이어진 것이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과 교제를 하는 모습이 마치 ‘기도’의 모습으로 연상된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통곡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일상의 일부분을 돌파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처음엔 어색하겠지만, 그 어색한 마음까지도 판단하지 않으신다. 점점 마음에서 긴장감이 이완되면서 표현해야 될 감정들을 토로한다. 감정을 토로하는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그분으로부터 사랑받는 존재인지에 대한 ‘자기-가치감’이 새로워진다.
우울한 마음은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게끔 이끈다. 그러나 사랑받는 기분은 삶의 의미를 새롭게 하고 나에 대한 가능성을 느끼게 한다. 그런 과정이 기도 과정이다.
신학교를 이십대 후반에 입학했었다. 물론 여기까지 이끌림 받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지만, 당시 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불안함이 있었다. 우울함이 있었다는 것이다. 기분이 업이 될 때는 무슨 일이라도 이룰 것 같은 생각이었지만, 기분이 살짝 다운 되었을 때는 자신감이 너무 아래로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런 나에게 하나님은 시편23편 말씀으로 나에게 큰 위로를 주셨다. 그리고 그 말씀을 붙들고 지금까지 믿음의 걸음을 걷고 있다. 그런데 또 가만히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은혜도 있었지만 동시에 나의 고민을 함께 나누었던 친구가 있었다. 그 사실을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 하고 지내고 있었다. 내가 힘들 때 힘든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고 들어 줄 수 있는 믿음의 친구들이 있었기에 우울한 마음을 극복할 수 있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시는 모습을 통해 두 가지가 모습으로 연상된다.
첫째는 교제를 하시는 모습이 “기도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는 가르침.
둘째는 이웃과 관계를 통해 마음을 함께 하는 경험
그리스도인들도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이것은 결코 믿음의 문제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가 믿음이 약하기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는 것도 아니다. 우울한 마음은 예수님과 교제하는 모습처럼 이웃과도 함께 하는 경험이 같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마음이 가장 답답하게 느껴질 때, 그때 혼자 있지 말고 이웃과 함께 하고 새로운 기도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출발점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울한 마음은 인생이 어둡게 느껴지는 상태다. 어둡게 느껴지는 마음은 비합리적사고로 생각이 패턴화 될 수 있다. 그 생각에 너무 빠지지 말고 현실적인 치료적 방향을 접근해보면 좋을 듯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