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그를 영접하시고(키 테과드메누 비르코트 토브) 순금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셨나이다(레로쇼 아테레트 파즈)”(시21:3).
선거철이 막바지로 들어서면서 흑색선전이 난무하면서 사람들의 이목이 찌뿌려지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정국이 안정이 되고 생활 경제가 활발해지고 물가가 잡혀야 시민들은 살기 좋은 세상이라 할 것이다. 어려운 시절에는 하나님을 바라고 그분에게 기도하며 묻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가 영원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키 테쉬테후 베라코트 라아드) 주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테하데후 베시메하 에트 파네이카)”(시21:6). 오늘 시편 21편은 왕정시편으로서 다윗 왕의 제왕시를 통해 토라 시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시 2; 18; 20; 21; 45; 72; 89; 101; 110; 132; 144:1-11). 곧 토라(시19)시를 중심으로 제왕시(시18-20, 21편), 개인탄식시(시17, 22편), 신뢰시(시16, 23편), 찬양시(시15, 24: 성전)등이 대칭을 이루며 중앙집권 구조의 키아스무스 구조(교차 대구법)양식을 이룬다.
시편 21편은 다윗이 전쟁에 승리하는 것을 가지고 감사하는 시편으로서 시편 21: 1-7절은 감사시편의 특징을 가지고 전쟁을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후반부 8-13절은 미래에 나타난 적들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것을 암시한다. “왕의 손이 왕의 모든 원수들을 찾아냄이여(티메짜 야드카 레콜 오예베이카) 왕의 오른손이 왕을 미워하는 자들을 찾아내리로다(예미네카 티메짜 소네에이카)”(시21:8). 또 어떤 학자들은 이 시편 21편은 시편 20편처럼 전쟁 전에 승리를 염원하며 암송하는 시편으로 본다(존 데이, 96쪽; 시 101; 72; 21; 132편). “왕이 노하실 때에 그들을 풀무불 같게 할 것이라(테쉬테모 케타누르에쉬 레에트 파네이카 아도나이)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그들을 삼키시리니 불이 그들을 소멸하리로다(베아포 예발레엠 웨토케렘 에쉬)”(시21:9). 예루살렘의 통치자로서 다윗 왕은 전쟁의 승리를 가져오며 대적자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자임을 말한다(시18; 20; 21).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루마 아도나이 베우제카)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소서(나쉬라 우네자메라 게부라테카)”(시21:13).
다윗의 제왕시에 나오는 신체 중에 마음은 감정의 자리로서 다양한 함의를 가지고 있다(시25:17; 27:14; 119:32). 히브리어 ‘레바브, 레브’는 심장을 말하며 욕망(시21:2) 혹은 이성을 말하기도 한다. “그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셨으며(타아와트 립보) 그의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아니하셨나이다(나타타 로 와아레쉐트 세파타이오 발 마나에타 셀라)(셀라)”(시21:2). “그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그에게 주셨으니(하임 샤알 밈메카 나타타 로) 곧 영원한 장수로소이다(오레크 야밈 올람 와에드)”(시21:4). 시편 21:3절의 ‘아름다운 복, 순금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셨다’는 말을 통해 야웨의 즉위식, 왕 즉위시편으로 보며 매년 열리는 왕의 즉위식 노래를 불린 시편으로 본다. 시편 21편은 시편 20편과 한 짝을 이뤄서 제왕시의 통일성을 보인다. 시편 20편은 왕을 구원해 달라고 하는 요청의 시이며 시편 21편은 왕을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21:11). “비록 그들이 왕을 해하려하여 음모를 꾸몄으나(키 나투 알레이카 라아 사쉐부 메지마) 이루지 못하도다(발 유카루) 왕이 그들로 돌아서게 함이여 그들의 얼굴을 향하여 활시위를 당기리로다(키 테쉬테모 쉐켐 베메타레이카 테코넨 알페네헴)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소서(루마 아도나이 베우제카 나쉬라 우네자메라 게부라테카)”(시21:11-13). 시편 21편은 다윗이 왕이 되어 역사 속에서 통치하는 장면을 보여주지만(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표제어), 하나님의 통치의 신왕 사상도 또한 보여주는 시편이다. “주의 구원이 그의 영광을 크게 하시고 존귀와 위엄을 그에게 입히시나이다 그가 영원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테하데후 베시메하 에트 파네이카)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오니 지존하신 이의 인자함으로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키 함멜렉 보테아흐 바아도나이 우베헤세드 엘리욘 발 이모트)”(시21:6-7).
이러한 신왕이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교지에서 그 사역을 감당한 고귀한 여선교사들이 있있었다. 서서평(Elisabeth Johanna Shepping, 1880-1934) 선교사는 독일 출신의 미국 선교사로서 성마가 병원 간호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뉴욕 시립 병원에서 간호사 실습을 하던 중 동료 간호사를 따라 개신교 신앙을 따라 살기로 한다. 그리고 유대인 요양소와 이탈리아 이민자 수용소에서 봉사 활동을 하다가 선교사의 부름을 받는다. 그녀는 1911년 뉴욕 성서 교사 훈련학교에서 여행자를 돕는 선교회 봉사를 하다가 불쌍한 조선의 의료 현실을 듣고 자원한다. 서서평은 미국 남장로교 해외 선교부에 지원하여 간호 선교사로 파송을 받는다. 1912년 2월 20일 파송받아 광주 선교부 제중원(원장 우월순)의 간호사로서 병원과 주일학교를 돕는다. 그녀는 조선 사람이 되고자 하여 토착화의 과정으로서 남자 검정 고무신을 신고 된장국을 좋아했으며 독신으로서 평생지내며 입양아로 박해라, 문안식, 문천식 등을 자식으로 키우며 평생 가족으로 지냈다.
32세 한국에 들어와 1934년 54세로 소천하기 까지 22년 간 선교 사역을 한다. 서서평 선교사는 일제 점령기에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던 광주의 궁핍한 지역을 중심으로 제주도와 추자도 등에서 간호 활동을 한다. 그녀는 미혼모와 고아 한센인, 노숙인 등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보살피는 어머니의 역할로 ‘나환자의 어머니’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녀는 자신이 입양하고 키운 고아가 14명이나 되며, 오갈 곳 없는 과부를 가족처럼 품어 집에서 같이 지낸 사람이 38명이나 된다.
서서평(徐舒平) 선교사는 한국 이름으로 ‘천천히 평화를 펼친다’는 이름의 뜻대로 광주 양림동에서 여성 자립을 위해 양잠업을 지도했다. 또 뽕나무를 심고 시설을 키우기 위해 미국에 기금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제주도에서는 여성의 자립을 위해 고사리 채취를 하도록 도왔다. 그녀는 임종 시에 자신의 시신을 의학용으로 기부하기도 하였다. 자신이 세운 이일학교의 학생들이 그녀의 임종 때에는 소복을 입고 따랐고 최초의 광주 시민 사회장을 치루기도 하였다.
그녀는 ‘삶은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이라는 문구가 주는 생명력처럼 광주의 마더 테레사로 살았다. 그녀의 일대기를 다룬 ‘천국에서 만납시다’라는 책은 백춘성 장로가 저술하고 대한 간호협회가 1980년 간행한 책이다. 조선 개화기에 서울과 가장 열악한 지역인 군산, 광주 등지에서 간호학교 설립하며, 육아 사업, 윤락 여성, 빈민구제 등 사회사업을 한, 그녀의 일생을 바친 선교 사역의 일대기이다. 그녀는 우리나라 간호학의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할 수 있는 ‘간호 교과서, 실용 간호학, 간호 요강, 간이 위생업’ 등 4권과 간호 사업사를 번역해서 책을 낸다. 한글 말살 정책이 시행중인 일제 치하에서 간호부 협회의 소식지와 서적들을 모두 한글 전용을 고집하였다. 이는 조선 사람들에겐 구약 중에 특히 출애굽기를 가르치며 독립의 확신을 심어 주려 애썼다.
서서평은 한국 최초의 여성신학교인 이일학교(현 한일장신대의 전신)를 세워 여성들을 가르쳤다. 미국 친구인 니일의 원조를 받아 양림 뒷동산에 붉은 벽돌로 3층 교사를 짓고 니일의 이름을 따라서 이일(李一)학교로 이름을 지었던 것이다. 우리는 서서평 선교사를 보며 한 사람의 일생을 헌신함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지어갈 수 있는지를 볼 수 있게 한다. 이렇게 고귀한 선교사들의 일생의 노고로 말미암아 오늘의 한국을 만드는데 이바지하며 잘사는 나라로 만들었던 것이다. 우리도 또 땅 끝에 있는 나라에 가서 이 사랑을 전해야 할 것이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