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쉬메아 테필라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웨샤웨아티 하아지나 엘 디메아티)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키 게르 아노키 임마크 토샤브 케콜 아보타이)”(시39:12).
인구 절벽의 시대라고 하고, 세계 인구가 2050년에는 95억이 되며 저출산의 상태로 말미암아 초고령의 시대로 접어든다고 한다. 사회가 불안하고 삼고(三高) 시대에 물가가 높고, 유가는 오르고 경기는 침체되고 환율은 높아서 무역하는 사람들은 아주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세상이 어려워 질수록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요구되는 시대를 살아간다. 시편 39편은 이스라엘의 예배 시편으로서, 왕정 시편의 개인(I)시편과 공동체(WE)시편으로 주의 기름부음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시편 2, 20, 45, 28, 89, 39편이 해당하며 후기 마카비 시대의 제사장적 왕과 관련되어 요한 히르카누스(주전 134-104년)시대를 반영한다고 본다(모빙켈). 또한 개인 탄식시편으로서 시편 39편은 시편 32; 38; 39; 41; 88편과 28; 22편 등과 같이, 질병과 같은 상황에서 탄식하는 모습을 보인다.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하샤 미멘니 웨아브리가 베테렘 엘레크 웨에네니)”(시39:13).
시인은 병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의 혀로 죄를 짓지 않게 하리라고 말하며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칭찬이나 보상받을 행동의 성취를 강조한다.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여두둔 형식으로 부르는 노래) 내가 말하기를 나의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아마르티 에쉬메라 데라카이 메하토)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시39:1-2). “나를 모든 죄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서 욕을 당하지 아니하게 하소서 나를 잠잠하고 입을 열지 하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네에라메티 로 에프타 피 키 아타 아시타)”(시39:8-9). 시인은 당연히 상을 받을 만한 가치의 동기로 시작하여 침묵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의 보상을 강조하게 됨을 듣게 된다. “주께서 죄악을 책망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먹음 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이니이다(셀라) (아크 헤벨 콜 아담 셀라)”(시39:11).
시편 38편과 같이 시편 39편은 질병의 상황 속에서 시인은 탄식한다. 곧 시편 38편은 구체적으로 시인이 병으로 말미암아 탄식의 상황에 이른 것을 말하지만, 정신적인 병에 이른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상처와 지겨운 고통, 죄로 인한 어리석음, 악취가 나는 상처, 눈빛이 떠나감 등에까지 힘든 상태에 이른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 시인은 종말의 상황을 말한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호디에니 아도나이 퀴찌 우미다트 야마이 마 후에데아)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메 하델 아니)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 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서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셀라)(아크 콜 헤벨 콜 아담 니짜브 셀라)”(시39:4-5). 이 질병은 죄악으로 인함이라고 하면서 인생의 허무함을 말한다. 질병과 죽음의 위기를 말하며 허무한 인생에서 결국 취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 시인은 재물도 결국 허무하게 한다고 말한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웨아타 마 퀴위티 아도나이 콰레티 레카 히)”(시39:6-7). 결국 인생은 하나님을 소망하고 하나님을 바라는 것이 진실된 소망이며 참다운 행복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시인은 또 마지막 하나님의 용서와 치유, 건강을 회복하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하샤 밈메니 웨아브리가 베테렘 엘레크 웨에이네니)”(시39: 13).
로버트 M. 윌슨(Robert M. Wilson, 1880-1963, 우일선) 선교사는 미국 아칸사스 주 콜럼버스에 태어나서 의료 선교사로 1908년 한국에 왔다. 그는 워싱턴대 의대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선교하다가 1948년 영구 귀국하였다. 1909년 영산포에서 한센병 여인을 처음 치료하면서, 그는 최초의 한센인 병원인 광주 나병원(여수 애양원)을 설립하게 된다. 그는 1909-1948년 일본 강점기에 선교활동을 하며 의료 선교와 한센 선교, 교육에 크게 공헌하였다. 그는 전남 광주에서 1908년 광주병원(현 광주 기독병원)에서 활동하게 되는데, 1905년 11월 놀란 선교사 원장과 교제하면서 제 2대 제중병원에 원장을 지냈다.
그는 1909년부터 한센병 환자를 치료하면서 한국 한센병원의 기초가 되었다. 그는 봉선리교회에서 영적 회복을 한다. 1912년에 최흥종 목사가 기증한 땅(소록도)이 1000평 이상으로 많아지자 일반인들의 핍박이 병원을 향해 시작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면서 광주 봉선리의 역사는 1928년에 그 역사를 마감하게 되었다. 당시 나병환자 치료 시설을 열었던 윌슨 선교사는 쉐핑 선교사의 도움을 받았다. 쉐핑 선교사는 윌슨을 도와 성자의 삶으로의 희망과 소망을 가르쳐 주었다.
윌슨 선교사는 낙천적 성격으로 사냥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었고 40년간 1만 명이 넘는 한센병 환자를 돌봐주는 거룩한 성자가 되었다. 1909년 4월 목포에서 일하던 포사이드 선교사가 영산포에서 만난 한센병 여인을 자신의 말에 태우고 광주로 데려와 환자를 죽을 때까지 돌봐주었다. 이 사건은 선교사들의 고정관념을 밑바닥에서 바꾸어 놓은 좋은 사건이 되었다. 로버트 윌슨 선교사의 호의로 그녀는 결국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낡은 온돌 위에서 보낼 수 있었다. 이 여인이 죽자 광주 지방 선교사들은 기금을 모아 그 돈으로 방 세 개짜리 오두막을 세웠고 이곳에 한센 환자들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그 후 최흥종 목사의 부지 기부로 광주 봉선동에 한센인을 위한 시설이 세워지게 되었다. 이 사실은 입소문을 통해 전국으로 퍼졌고 윌슨 선교사는 한센인을 위한 병원을 1913년에 세워 광주 나병원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윌슨은 광주 제중원으로 찾아온 한센인을 맞이한다. 서울 선교사가 보낸 한센 환자가 두 달 동안 걸쳐 360km를 걸어왔다. 그는 뼈와 가죽 밖에 남지 않은 남자였다. 윌슨의 눈에는 그가 환자라기보다 차라리 시신에 가까웠다. 보통 사람의 두 배로 다리는 부어 있었고 눈은 흰자위까지 모두 노래진 상태가 되었다. 그가 광주에 도착한 날은 마침 비도 내려 그가 등에 진 짐 보따리마저 물에 젖은 상태였다. 지난 세월 한(恨)밖에 남지 않은 삶이이었다. 그는 선교사들이 사는 양림동에 있는 봉선동 나환자촌까지 5리(2km)를 더 걸어야 했다. 그는 그 거리가 이틀을 더 걸어야 할 정도로 멀어 보였다. 이는 몸이 너무 나약했기 때문이다.
우일선 선교사가 다른 일을 마치고 그를 봉선동 치료시설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그가 자동차를 타고 가던 거리의 절반 지점에서 그를 만난다. 초인적인 힘으로 그는 살아날 소망이 있다는 희망으로 말미암아 지친 다리일지라도 그는 단숨에 달려온 것이다. 윌슨 선교사는 가족들로부터 버림받고 동족들로 천대를 받은 사람을 맞았다. 그는 더러운 시궁창에 숨어 살거나 상처 난 발로 걷다가 피부가 까여서 과육처럼 흐물흐물한 살덩이로 변해간다. 윌슨은 이러한 비참한 사람을 수용하고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고 천국의 문을 함께 연다는 사실을 믿고 이 사역을 너무 기뻐하였다.
1945년 광복 이후 미 군정청은 윌슨을 소록도 애양원등 한센인 시설을 총괄하는 군정 자문관에 임명했고, 그의 아들 존 윌슨도 아버지의 사역을 이어 받아 한국 땅에서 젊음을 불살랐다. 1948년 귀국 후 미국에서 신학공부를 하여 목사 안수를 받기도 했던 로버트 윌슨은 1963년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서 83세 일기로 소천했다. 이처럼 소록도의 천사, 윌슨 선교사는 몰로카이의 성자 다미엔처럼 한국 선교사의 성자가 되었던 것이다. 한국의 나병환자의 성지 소록도는 우월선 선교사를 잊지 못할 것이다. 우일선, 그대는 성자이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