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키 임메카 메코르 하임)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베오르카 니르에 오르)”(시36:9).
시편의 세계에는 무궁무진한 믿음의 세계가 숨어있다. 그래서 우리가 시편을 읽을 때 큰 믿음의 보화를 캐낼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말씀에 위로를 받고자 할 때, 시편의 말씀은 우리에게 큰 위안과 힘을 얻게 한다. 세상은 악인과 죄인들이 판을 치는 세계처럼 보인다. 거기서 신앙인은 신음하고 고통하며 살아가는 현실이다. “그가 스스로 자랑하기를 자기의 죄악은 드러나지 아니하고(키 헤헤리크 엘라이오 베에이나이오)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함이로다(리메쪼 아오노 리쉐노)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죄악과 속임이라 그는 지혜와 선행을 그쳤도다(하달 레하스킬 레헤티브)”(시36:2-3). 이 죄악된 세상에서 시인은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공의를 구하며 죄인들의 심판을 구한다. “주를 아는 자들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 베푸시며(메쇼크 하세데카 레요드에카)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주의 공의를 베푸소서(웨찌드카트카 레이쉬레 레브) ”(시36:10).
시편 36편은 이스라엘의 예배 시편으로서 야웨 왕즉위 축제 시편이다. 이 시편은 시편 8편, 65편과 93편, 99편, 132편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이 우주의 왕으로서 등극하며 혼돈의 세력을 무찌르고 지상의 왕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한다. 축제의 우주적 드라마와 그 신화론이 등장하며,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그 혼돈의 세력을 이기고 빛으로 세상과 우주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준다. 또 출애굽기 1-15장의 우주적 승리의 서사시와 이스라엘 민족 서사시를 통해 하나님은 구원의 드라마를 보여준다.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이르웨운 미데쉔 베테카)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웨나할 아다네이카 타쉐켐)”(시36:8). 이 여호와의 승리는 혼돈과 죽음을 이기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시는 승리의 노래를 보이며 이 땅의 어떤 대적도 이스라엘 예루살렘 성을 위협할 수 없고 이스라엘 백성을 대적할 수 없음을 노래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국은 평화의 나라가 되며, 이미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의롭게 하신다. 그리고 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의롭다고 증거하며 대적을 무찌를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을 주셨다. 다른 나라들이나 다른 신들은 이미 심판을 받고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며, 이스라엘은 의로운 재판을 받게 되어 여호와의 도래를 통해 ‘그의 집에서 거룩함이 다시 있게 됨’을 말한다. 다시 성결해지고 청결해져서 축복의 근원이 다시 회중 가운데 넘쳐 흐르게 된다고 노래한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아도나이 하샤마임 하세데카 에무나트카 아드 쉐하킴)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찌드카트카 케하르레 엘 미쉬파테카 테홈 라바)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아담 우베헤마 토쉬아 아도나이)”(시36:5-6).
한편 이 시편 36편은 왕정시이면서 이스라엘 공동체 탄식 시편(국가 탄식시편)이다(시28; 61; 63; 개인 탄식(I-psalms, 왕정시편(시 3; 5; 7; 11; 26; 27; 36; 52; 54; 57; 62; 64; 71; 77; 86; 139; 140편). 또한 보호 시편으로서 공동체 회중, 국가 회중 탄식 시편에서 보인다. 확신과 보호의 시편으로서 개인의 시편에서 확신의 시편으로 공동체에서 나타나며, 제의적 관점에서는 그들의 삶의 자리에서 확신의 시편으로 나타나며 보호시편으로도 보여진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마 야카르 하세데카 엘로힘)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우베네 아담 베쨀 케나페이카 예헤사운) ”(시36:7). 이 시편에서 탄식의 상황에서 인간의 자유와 부유함의 전통적인 요소들이 나타나며 탄식에서 축복으로 가는 혁신적이고 근본적인 규칙을 나타내며, 커다란 개인의 자유로 보여준다. 시편기자는 ‘살진 것의 풍족과 복락의 강물, 생명의 원천, 주의 빛’ 등을 노래한다. 그리하여 결국 교만한 자와 악인들이 패망하게 된다. “악을 행하는 자들이 거기서 넘어졌으니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날 수 없으리이다(샴 나펠루 포알레 아웬도후 웨로 야케루 쿰)”(시36:12). 이러한 축복의 인생을 살아간 인물이 우리나라 초기 선교사들주에 있다.
우일선 선교사(Robert M. Willson)는 광주 양림동에 그의 사택이 들어서면서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주택이 들어서게 된다. 그래서 오늘도 그곳에 신앙의 순례를 하는 발길들이 찾고 있다. 윌슨 선교사는 광주의 예루살렘으로서 교회와 병원을 세워서 복음의 빛을 발했다. 이 선교의 대열은 오웬 선교사가 처음으로 교회와 학교를 세운 이래 의료와 교육 활동이 많아졌다. 그 후에 광주의 몽마르트 언덕, 선교 마을로서 들어서서 수피아 여학교(배유지 선교사)와 피터슨 선교사, 허철선 선교사, 조아라 선교사 등 양림동의 선교 마을이 형성되었고, 그곳은 동방 남도의 예루살렘 성을 이루게 된다. 짧은 사역을 한 오웬 선교사나, 존 폰 타마자 선교사, 독일 선교사 엘리자베스의 선교사도 그곳에 기념하고 있다. 오늘의 광주 양림동은 선교사 마을을 조성되어 선교사 사적을 기념하고 있고, 그들을 만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서서평) 선교사는 1912년 입국한 뒤에 고아들의 어머니로 살며 간호학을 알렸고, 나환자와 행려병자들과 동고동락하며 문명 퇴치를 위해 사비를 털어 학교도 운영하였지만 풍토병과 과로로 1934년 숨진다. 이러한 선교사들과 협력하여 광주 복음화와 호남 복음화에 앞장섰던 것이다. 윌슨 선교사는 제중원을 세워서 광주 제중원이 3.1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1919년 3월 초, 광주 제중원 직원들 대부분이 김복현을 중심으로 일어나게 된다. 윌슨 선교사가 2대 원장에 재임하면서 병원을 신축하였고 최흥종, 최영육, 황상호, 최경동 등 8명에게 의료 교육을 시킨다. 이 제중원에서 1918년 1만 명의 환자가 치료를 받게 하였다. 이 중에 700명이 입원 치료를 받았고, 290건의 수술이 이뤄졌다. 이 의료 활동 뿐 아니라 이 제중원의 인물들은 3.1운동에도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광주 제중원 나병원 책임자였던 최흥종은 김복현과 함께 다른 지역의 독입 운동을 동향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고, 최흥종의 동생 최영욱은 세브란스 의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독립 선언서를 복사하여 배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광주 제중원 간호사였던 김금석, 김안순, 김화순, 서기 최경동은 3.10 만세 운동에 참여해 징역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광주 제중운의 첫 번째 남자 간호사였던 김금석은 제중원 나병원과 여수 애양원에 근무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하며 독립 운동을 지속적으로 참여하다가 1년 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광주 제중원 직원 20여 명 중 그 재판 기록들을 통해서 3.1운동과 관련해서 옥고를 치룬 사람이 8명이나 되었다. 우일선 선교사의 역할을 이처럼 한국 독립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윌슨 선교사는 제중원(광주 기독병원)의 2대 원장으로 부임해 제중 병원(Ellen Lavine Graham Hospital)을 1911년 벽돌 건물로 세운다. 그는 미국의 그레이엄 장로가 죽은 자신의 딸을 기념하여 기부한 기금으로 말미암아 이 건물을 세우게 된다. 그는 외과의사로 당시 미신과 주술적인 민간요법에만 의존하던 지역의 많은 환자들을 과학적인 치료와 수술로 현대적 의술을 시행한 이 지역 서양의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특히 한센병 환자를 치료했고 1912년 영국 에딘버러의 영국 나환자 협의회 지원으로 2천 달러와 최흥종 목사의 봉선리 땅 기부를 통해 광주 나병원이 시작되도록 하였다. 우일선 선교사는 환우들의 문맹 퇴치를 하고, 성경 공부를 시키며 완치된 환우들에게는 노동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도록 하여 직업 교육을 하여 자활을 하게 하였다.
윌슨 선교사의 거룩한 선교의 뜻을 오늘도 전해져서 크리스마스 상징인, 빨간 열매의 호랑가시나무는 양림동의 우일선 선교사의 사택을 아름답게 꾸며서 그의 성자의 영성을 받고자 하는 발길들을 이끌고 있다. 조선 시대의 돌림병에 걸린 어린이들을 버리는 풍장터였던 곳이다. 부모들의 한이 맺힌 장소를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장소로 변화시킨 인물이 우일선 선교사였다. “당시 서양인은 아기를 잡아 약을 만든다는 흉흉한 소문이 퍼져서 그 배타적인 분위기가 강해 서양인들의 거주 자체가 어려웠어요. 때문에 선교사들은 사택 건축 자체를 선교의 일환으로 진행하였고 이에 따라 건설인부를 한국인으로 고용하여 후한 임금을 주었으며 완공 후에는 서양 문물에 호기심이 있었던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방문을 유도하는 등 소통 공간의 역할을 하였다.”
한국 선교의 선구적 나침반이 되었던 우일선 선교사는 오늘도 하나님의 대사로 선교지로 가는 많은 주의 종들에게 이같이 귀한 귀감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