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박사】 병원보다 성경을 가르칠 건물로 세워진 오웬 기념각

  • 입력 2024.04.25 08:22
  • 수정 2024.04.2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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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배 교수의 구약 이야기 (362)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174)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전 강서대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전 강서대 총장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하파크타 미세페디 레마홀 리)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30:11).

세계는 전쟁의 위험과 공포 속에 있어서 우리는 두려워하고 있다.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제3차 전쟁으로 확대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다.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로 인해 경제가 어렵고 팬데믹 이후에 경기 침체로 말미암아 상공인들의 얼굴은 밝지 못하다. 가계 부채가 2000조에 가까우면서 서민 경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형편에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손길과 도우심에 기대하며 주님의 경영을 고대한다.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쉐마 아도나이 웨하네니)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30: 10). 시편 30편은 감사시편으로서 시편 제1권의 세 번째 단락, 시편 25-34편에 속하는 시편이다. 그래서 시편 25-28편은 탄식시로서 구원자와 피난처 되시는 여호와를 말하며, 시편 25편은 이합체 시편으로서 구원-요청의 선하심과, 하나님의 경외를 전반부에 주제로 구성하고 있다.

또한 시편 29편은 찬양시로서 여호와의 왕되심을 나타내고, 시편 30편은 감사시, 시편 31편은 탄식시, 시편 32편은 지혜시, 시편 33편은 찬양시, 시편 34편은 감사시(이합체)로서 후반부는 구원자와 피난처 되시는 여호와를 나타낸다. 시편 34편은 구원-감사 선하심과 하나님 경외로 끝맺음한다. 시편 30 편은 표제어가 다윗의 시, 곧 성전 낙성가이지만 장르로는 질병을 치유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을 담은 감사시라고 할 수 있다(제콥슨, 방정열). 이 시인은 질병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문턱에 내려가서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여준다. 시인은 자신이 질병의 원인이 교만이었음을 고백한다.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와아니 아마르티 베샬위 발 에모트 레오람)”(30: 6). 오늘날 시시티비(CCTV)가 설치되어 있는 현실에서 악용하여 대적자들이 노리고 공격하는 경우, 그 질병을 가져오게 하는 위협의 시대이며, 빅브라더의 시대의 감시와 통제 시스템에 살아가는 경우도 본다. 하지만 여기서는 질병을 넘어서서 치유와 구원을 가져가는 것이 바로 여호와가 구원자 되신다는 것이다.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레마안 예자메레카 카보드 웨로 이돔 아도나이)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30: 12). 시편 30편의 결론에서 찬송과 감사로 끝내는 것을 볼 때 스올(지하 세계), 사후의 삶이 죽음의 장소이며, 곧 어둡고 잠잠하고 구덩이, 깊음, 땅의 깊음 등이 있는 곳이다(88:6; 143:3; 115:17, 28:1; 30:3) 등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아도나이 헤엘리타 민 쉐올 나프쉬 히이타니미야르디 보르)”(30: 3). 이러한 경험은 우리의 일상에서 매일 도사리고 있는 함정과 대적자의 꾀에 노출되는 위험이요 지옥과 같은 시험이 있는 것이다. 이 시편 30편은 감사 시편으로서 질병에서 회복되는 것에 감사하는 것으로서 시편 32(107:17-22)과 더불어 언급된다. 시편 30편의 스올과 함정(구덩이, 지하세계)은 개인 탄식시로서 질병과 관련하여 언급된다(2-3, 8-9).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마 베짜 베다미 베리드티 엘 샤하트) 진토가 어떻게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30:8-9).

이는 질병의 고통이 지옥의 고통처럼 아프고 그 상처가 뼈를 찌르는 가시, 고통의 아픔으로 심한 질병의 상태를 보여준다. “여호와여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아도나이 엘로하이 쉬와에티 엘레이카 와티르파에니)”(30:2). 이 질병의 고통은 시편 30편에서 원수로 말미암아 온 것으로 말한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30:1). 이 질병과 원수의 공격에서 구원하심은 바로 하나님의 탄식의 기도를 들으심이라는 고백을 시인하고 있다.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30:10). 이 시편은 탄식시편의 특징을 가지지만 폭넓게는 탄식에서 구원으로 이어지는 기도 소리에 구원의 약속이 이뤄짐을 보여준다. 이 구원의 감격과 감사는 춤추는 것으로 이어진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30:11). 이러한 감사제사는 번제와 희생제의, 자원제로 감사하고 춤추고 노래하며 다양한 악기로 찬양함으로 나타난다.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30:4).

비록 시편 기자의 현실은 어둡고 노염과 울음이 짙게 배어있는 상황이지만 은총이 평생이며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라는 신앙의 기대는 지속된다(30:5).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비르쪼네카 헤에마드타 레하르리 오즈 히스타르타 파네이카 하이티 니베할)”(30:6-7). 이 다윗의 시, 성전 낙성가는 우리의 삶의 성전, 마음의 성전을 세우는 것과 같이, 우리의 탄식에서 시작되는 아픔과 고통, 질병과 탄원이 감사와 찬송, 춤으로 이어지는 환희가 있게 된다. 그래서 로마서 12장에서 바울은 산 제물과 드릴 영적 예배를 말하며 마음의 성전을 언급한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12:1).

이러한 찬양과 감사의 삶을 산 선교사가 있다. 그는 클레멘트 오웬 선교사(Clement C. Owen, 1967-1909, 오기원, 오원)인데 그는 1867년 미국 버지니아에서 태어나서 유니온 신학교에서 신학을 하고 버지니아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한다. 그는 한국에 선교사로 와서 유진벨 선교사와 더불어 가정과 목포에 선교부를 세우고 전남 지역에 선교를 하게 된다. 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전도에 열정을 쏟아 붓던 어느 봄날, 급성 폐렴에 걸려 그만 소천하게 된다. 전남 광주 양림 동산, 주진각 지붕이 있는 오웬 기념각에는 그를 기념하는 연주회가 최근 열리고 있다. 그는 19001212일 여자 의사인 조지아나 휘팅양과 결혼하여 언더우드 선교사 사택에서 식을 올린다.

오웬 선교사는 전라도 지역을 순회 선교하며 200명에게 세례를 주고 430명에게 학습 교육을 실시한다. 이는 열정적 복음 전도의 바울 선교는 종말적 재림에 대한 신앙으로 말미암은 것 같다. 그는 19093-4월 초 광주 남쪽 280리 지역의 순회 전도를 하던 중 과로로 인하여 쓰러진다. 그는 마지막 전도여행을 떠날 때 몹시 지쳐 있었고 건강 상태도 좋지 않았다. 날씨는 차고 일기는 불순하였고 악천후에 속에는 그는 전도 여행을 강행하였고 이미 약속한 성경공부가 누적된 업무로 중지될까 하는 거룩한 염려가 있었다. 그래도 그는 심한 옆구리 통증을 참고 쭈그리고 앉아서 돌아다닌 것이 불행이 원인 되었다. 그는 장흥 어느 시골에서 열흘 동안 순회 전도하던 중에 328일 주일 아침에 갑자기 몰아닥친 한파로 병원 얻어 하루 종일 고열로 시달렸는데 돌보는 사람이 없이 고통을 당하다가 쉬어야 하는데 또 무리하게 그 다음 날 가마에 태워 산등성을 세 개나 넘어 육칠십 리 길을 장흥읍까지 파김치가 되어 왔다. 이렇게 광주로 돌아오는 길은 130리 길의 이동과 밤길 70, 불구하고 의식이 없어진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서도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복음 전도의 열정은 바울의 사도행전을 이해하게 하는 1차 전도 여행과 3차에 걸친 선교 여정을 우리가 살필 수 있게 한다.

오웬기념각과 오웬선교사
오웬기념각과 오웬선교사

1900년에 오웬과 결혼하여 1901년 첫 딸 메리, 1903, 1905년 두 자녀를 더 낳았으며 오웬 선교사가 죽은 다음 달인 1909513일 마지막 유복자를 낳았다. 그의 남겨진 가족들을 통하여 오웬의 하나님의 선교는 계속 이어졌고 하나님의 전도가 그 후에도 선교사들의 열정적 사명의 이야기와 소식이 거룩한 발길을 이어지게 하였다. 그를 기리는 오웬 기념각은 그가 죽기 전부터 계획되었다. 그의 여동생과 숙부에게 보낸 편지에 할아버지의 기념 병원을 지으려 했으나 지금은 병원보다도 성경을 가르칠 큰 건물을 짓는 것이 낫다. 이는 할아버지 기념관을 짓는 것이 더 절실히 필요하다고 오웬 선교사는 생각한 것이다. 성경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교회는 비좁고 더욱이 200, 300리 먼 곳에서 온 사람들이 유숙할 방이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돈이 넉넉히 준비된다면 지하실에 기숙사를 갖추고 있는 훌륭한 벽돌 건물로서 건물을 짓는 것이 좋다. 하지만 많은 교사와 강당을 갖춘 집을 짓는 것이 여의치 못하지만 목조 건물에 흙벽으로라도 기필코 짓겠다는 호소의 편지를 보냈다. 그는 이 답장도 받아보지 못한 채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후 미국의 가족들과 친지들이 그의 한국 선교의 감동을 받고 성경을 가르칠 건물을 짓겠다던 그의 뜻을 기념하여 오웬 기념각을 짓는다. 이는 윌리암 오웬과 클레멘트 오웬을 기념하여 간판이 붙어있어서 먼 이국 땅에서 예수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온 오원(吳元)선교사의 뜻을 오늘도 빛내고 있다. 이렇게 선교사들의 유지를 받든 건물들이 한국 땅에 아직도 남아있다. 이는 오늘도 땅 끝에 가서 이 사랑의 빚을 갚으려는 거룩한 선교사님의 기도와 작업이 이루어진 열매이다. 앞으로도 오웬과 같은 열정, 바울의 열정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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