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라아도나이 하에슈아)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아메카 비르카테카)(셀라)”(시3:8).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는 매 순간마다 짧지만 바른 선택과 긴 안목의 믿음의 결단이 필요하다. 이란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추락당해서 그만 유명을 달리했다. 중동 전쟁이 확대되려는 상태여서 그 여운은 깊다. 세상은 점점 살기 어려워지는 순간을 맞고 있고 그 생명을 연장하려는 부자들은 생명 칩을 몸에 삽입하려는 움직임이 미국에서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어떻게 삶을 운영하여야 하는가? 시편 3편은 우리에게 짧은 구절이지만 많은 문제와 답을 준다.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 (베라르호 미페네 압샬롬 베노)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아도나이 마 라부 짜라이)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시3:1). 표제어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다윗의 왕위를 찬탈하여 그로 말미암아 위기에 빠져 다윗이 예루살렘 성을 빠져나갈 때에 쓴 시라고 한다.
이 처절한 운명의 장난은 다윗을 힘들게 하였다. 권력은 자식도 탐하게 되고 서로 공존하지 못하게 한다는 이치를 보여준다. 이 사건은 씁쓸한 마음으로 도망하는 다윗의 모습을 그린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시편 3편에서 군대의 대치 상태를 그리며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키는데 큰 영감을 준다. 루터가 거대한 로마 교황청을 대항하여 그 진리의 전쟁을 일으켰던 상황을 반영하는 진리의 구절이 된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라빔 오메림 레나프쉬)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에인 예슈아타 로 베로힘 셀라)”(시3:2).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로 이라 메리베보트 암 아쉐르 사비브 샤투 알라이)”(시3:6). 진리의 삶은 거대한 세력,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세력들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진리가 자유’케하는 그 힘을 따라서 움직이게 한다. 루터는 그 성령의 소리,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진리가 자유케 하는 그 길’을 갔다. 압살롬의 반란은 우리에게 인간과 인정, 인간관계의 일반화, 가족의 배신과 갈등을 보인다. 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자가 가까운 사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시편 3편은 왕정 시편이며 개인 탄식시로서 이에 해당한 시편은 3; 5-7; 9/10; 13; 17; 22; 26-28; 31; 38; 40; 55-57; 59; 61; 69-71; 94; 108; 139-141; 143편 등이다. 이 시편은 기소당한 사람의 불공정함과 불의한 일을 맞은 사람들의 시편으로서 성전에서 거룩한 시험을 당하는 사람들의 시임을 보여준다. 또 이 시편 3편은 여호와의 시험을 당하여 개인 탄식시로서 나타나고 있으며 특별한 제도적 배경을 보여준다(베이어린, 시 3; 4; 5; 7; 11; 17; 23; 26; 27; 57; 63편). 시편 3-9편은 순서적으로 질서있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그 배열이 완벽하지 않지만 그 기준을 가지고 있고 동일한 표제어와 함께 그 배열의 기준이 있다. 서로 다음 관계의 명시적 표제어로 다윗의 시편들에 해당한다(3-9; 11-32; 34-41; 51-65; 68-70; 108-110; 138-145편 등이다).
이 왕정 시편은 시편 3-4편으로서 그 외에 9/10편; 17; 22-23; 27-28; 35; 40-41; 57; 59; 61-63; 66; 69-71; 75; 91-92; 94; 108; 118; 138-143편 등이 해당한다(이튼). 시편 3편이 압삽롬의 반란으로 인해 큰 왕위의 위기를 맞지만 다윗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극복하는 과정을 그리며 왕정 시편의 위기와 구원을 대표적으로 잘 보여준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웨아타 아도나이 마겐 바아디 케보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우메림 로쉬)”(시3:3).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쿠마 아도나이 호쉬에니 엘로하이)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빰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키 히키타 에트 콜오에바이 레히 쉬네이 레샤임 쉬바르타)”(시3:7). 이런 큰 위기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심판은 엄정하고 냉혹하며 큰 시련을 통해 하나님이 그 뜻을 통해 죄의 응징과 복수를 하신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콜리 엘 아도나이 에크라)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셀라)”(시3:4). 이 탄식과 부르짖음의 기도는 구원을 받는 길이며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길로 가는 길이요 그 단초이다.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이러한 다윗의 탄식과 기도를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응답받는 기도를 하는 선교사가 우리의 초기 선교 역사에 있었다.
매혜란(Helen P. Mackenzie, 1913~2009) 선교사는 호주 출신의 선교사로 1976년 본국으로 돌아갈 때, 독신 선교사로서 의료 선교 활동을 하였다. 그녀는 한국인 환자들이 돈을 낼 수 없어서 의료 진료를 받을 수 없을 때, 몰래 도망치는 환자들을 걱정하며 오히려 선교사는 “치료를 다 받지 못하고 돌아갔는데 몸이 괜찮은지 확인해 달라”고 하였다. 매혜란 선교사는 1913년 일제 강점기에 그의 아버지 존 맥켄지 선교사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2대를 거치며 선교한다. 그녀는 선교사 자녀, MK로 자라며 의료 선교사로서 자랐다. 그녀는 평양 외국인 학교에서 공부하고 졸업하며 호주 멜전 대학교 의대에 진학에 의사가 되었다. 그녀가 38세가 되던 1952년, 의료 선교사로 한국에 다시 와서 그해 9월 부산진 교회 유치원을 빌려서 동생 매혜영(캐서린 맥켄지Catherine Mackenzie, 1915~2005) 선교사와 함께 일신 부인 병원을 설립하였다.
매혜란 선교사는 피난 생활로 어려움을 겪는 산모와 아기, 여성을 위한 진료와 모자 보건 사업을 시작했다. 1954년 현 부지 땅을 사서 병원을 완공하는 날, 병원 직원들과 기뻐하며 병원 건물이 너무 좋아서 가난한 사람들이 오기에 문턱이 높은 것은 아닌지 걱정하였다고 한다. 매혜란 선교사는 한 밤중에도 응급환자가 있으면 잠옷 바람으로 달려 나와서 환자를 돌보았다. 인큐베이터가 없던 시절 미숙아가 태어나면 몇 시간이고 옆에 붙어 앉아 의사가 인공호흡으로 아이를 살려냈다. 매 선교사가 애정을 쏟은 곳은 낙도나 의사의 손길 닿지 않는 무의촌 지역이었다. 그녀는 부산과 경남 지역을 순회 진료하며 가가호호 여성과 산모, 아기를 진료하였다. 산후 진단을 받지 않던 한국인들에게 산후 진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녀는 의료 인력을 늘이기 위해 조산부와 산부인과 · 소아과 의사를 교육하고 수련하였다. 매 선교사는 62세 나이로 은퇴하고 호주로 돌아가서도 맥켄지 재단을 만들어 후원하며 호주 전역을 돌아다니며 기부금을 만들었다. 1976년부터 매년 1000만 원 가량의 기부금 이자를 보내서 무료 진료를 위해 사용하도록 하였다. 매혜란 선교사가 재임한 24년간 분만이 오만팔천 건, 수술을 이만칠천건, 외래 환자 백사십 이만이천 건, 입원 치료를 구만구천건의 기록을 세우며 천사의 손길로 의술을 베풀며 한국민의 가난한 산모와 아기를 위해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였다.
매혜란 선교사는 97세 나이로 호주 멜번 카라나 양로원에서 별세한다. 그녀는 아버지 맥켄시 선교사가 나병환자를 위해 의료 활동을 한 뜻을 이어받아 평생 독신으로 살며 가난한 사람들을 돌봤다. 그녀는 일신 병원과 한국 모자 보건 사업을 위해 거룩한 손길을 베풀며 한국인을 위해 생애를 온전히 바쳤다. 그녀는 동생 캐서린 맥켄지(매해영) 선교사와 더불어 6.25 전쟁시 가난한 산모와 아이를 돌보며 여성 전문 병원을 세워서, 일신 기독 병원을 오늘 까지도 운영하게 하였다. 선교사의 뜻을 따라 오늘도 기독 병원의 숭고한 뜻을 전하며 의료 진료를 하고 있다. 선교는 이처럼 대대로 이어서 행하며 구원의 손길을 펴며 하나님의 사랑을 펼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 사랑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고 이 순간도 예수 사랑의 십자가 뜻은 이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