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견미단을 통해 주신 선물

  • 입력 2024.08.12 16:12
  • 수정 2024.08.13 11:09
글자 크기
프린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에스더 목사, “참된 정치란,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

필자는 지난 719일에 뉴욕 프라미스교회(허연행 목사 시무)에서 이승만 건국대통령 서거 59 주기를 맞아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미국 행적지(뉴욕, 보스턴, 하와이 등) 탐방을 위해 방문한 '2024 견미단'의 젊은이들을 만났다.

견미단 일행
견미단 일행

15세부터 35세까지 뜨거운 피가 끓고 있는 54명의 견미단원 중에서 세 명의 젊은 친구들이 필자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그 세 젊은이들에게 장래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민수현, 김혜원
민수현, 김혜원

그 중에 제일 언니인 김혜원이란 대학생은 현재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부산의 세계로교회(손현보 목사 시무)에서 왔다고 했다. 담임목사님께서 이승만 건국대통령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본인은 크리스천은 정치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가 그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신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이승만처럼 정말 나라를 살리는 멋진 크리스천 정치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민수현이라는 남학생은 해군에 입대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수영을 잘 하냐고 하니 그렇단다. 박애린이라는 여고생은 국회의원을 하면서 작가가 되고 싶다며, 현재 이승만 건국대통령에 대해 글을 쓰고있는데, 나중에 완성되면 필자에게 보여주겠다고 했다.

김혜원, 박애린
김혜원, 박애린

필자는 이 젊은 세 친구에게 참된 정치란,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세상의 정치를 보면, 명예와 물질을 탐하고 너무나 추하고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이유가 바로 진짜 통치가이신 하나님을 모방해서 하는 것이므로 진짜 정치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정말 멋진 정치가가 되고싶으면 성경과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성경 속에는 요셉과 다니엘과 느헤미야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정치를 해왔는지 기록되어 있으니, 참된 정치를 알고싶으면 성경을 자세히 읽으면서 넓고 깊게 연구해보라고 했다.

 

이사야 34:16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분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그리고 수현 학생이 군인이 되고싶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인데, 성경에서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하나님께서 제일 처음 사용한 호칭이 여호와의 군대이기 때문이라고 말해줬다.

 

12:41 “사백 삼십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필자의 아들도 미 해병대에 6년간 있으면서 요르단 파병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Matthew가 파병 이야기를 엄마인 필자에게 물어볼 때에 필자는 잠시 머뭇거림도 없이 파병을 다녀오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우리는 여호와의 군대(the hosts of the LORD)"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성천. 요르단 가기 전
성천. 요르단 가기 전

여호와의 군대가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군대 훈련만이 아니라, 파병을 나가서 전쟁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해주었는데, 사실 아들 Matthew는 요르단에 가서 진짜 전쟁이 아닌 모기와의 전쟁을 치렀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웃기도 했다.

특히 미국은 군인들에 대한 대우가 한국과 비교가 안될만큼 매우 좋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온몸을 바치는 군인들에 대해 좋은 대우를 해주는 미국이 그래서 복을 받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필자는 수현이에게 군대에 가려면 미국에 와서 가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말을 해주었다. 현재 필자의 아들은 군대를 제대했지만, 컬럼비아 대학 마지막 학년을 다니고 있어서 공부를 마칠 때까지 학비와 아파트 비용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에 먼저 광야에서 군사 훈련을 받아야 한다. 군사 훈련에서 낙오되는 사람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진정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군인이 무엇인지 알면 좋다고 수현 학생에게 잘 생각했다고 말해주었다.

노성천 Matthew Roh
노성천 Matthew Roh

우리는 한국의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를 매우 존경한다. 그런데 누구나 존경이 지나치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존경하는 대상을 우상숭배 하듯 숭배하게 된다. 따라서 이승만 박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견문을 넓히고, 그분의 기독교 사상 등을 배워 익히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만, 주의할 것은 이승만 박사를 사랑하고 그분을 높이다가 그를 하나님처럼 우상숭배하게 되지 않도록, 늘 초점을 이승만 박사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께 두어야 한다. 이승만 박사를 통해 그분이 만난 하나님을 만나고 볼 수 있어야 하며, 이승만 박사가 사랑한 예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또 이승만 박사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다. 그래서 필자도 이승만 박사를 후대에 알리기 위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훌륭한 조상을 닮아가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그렇게 훌륭한 이승만 박사가 섬긴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을 절대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말해주었다.

이승만 박사 프린스턴대학 재학 시절
이승만 박사 프린스턴대학 재학 시절

견미단과 헤어진 지 보름 정도 지났을 때, 한국에 도착한 애린이가 필자에게 '견미록'을 쓴 글을 보내왔다. 그 글을 읽으면서 필자는 정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잠깐 만나서 함께 식사하는 그 짧은 시간에 이 젊은 학생들에게 어떻게 impact를 줄 수 있을까를 기도하며 대화를 나누었는데, 필자가 말한 것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정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등학생인 박애린 학생이 쓴 글을 소개한다.

박애린
박애린

견미단을 통해 주신 선물

박애린

견미단을 출발하기 전, 이승만 박사 그리고 한국과 미국의 건국 역사에 대해 알아보았다. 하지만 공부하면 할수록, 이승만 박사에 대해 알면 알수록 자신이 없어졌다. 내가 그 순간에 있었다면, 내가 이승만 박사였다면 과연 같은 선택을 내릴 수 있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견미단에 가는 게 맞는지에 대한 의문을 하와이에 착륙하는 순간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견미단을 통해 이승만 박사의 발자취를 밟으며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웠다.

더불어 더 많은 것을 배웠음에도 겁먹는 것이 아닌 반대로 하나님께 앞으로의 인생을 맡기겠다는 담대한 다짐과 고백을 했다.

견미단을 오기 전에는 스스로 믿음에 대해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어서 그냥 외면했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직접 보고 듣고 느끼니 피할 수 없게 되었고,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이 이승만 박사를 사용하셨다는 사실이 와 닿았다.

이어 나도 하나님께 이승만 박사처럼 쓰임 받고 싶어졌으며 자연스레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었고,
이승만 박사가 만났던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는 기도를 하다 보니 이승만 박사와 나를 사람 대 사람으로서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이승만 박사가 바라본 하나님에 초점을 맞추게 됐다.

결국 리틀 이승만이 되고 싶어 견미단에 왔던 나는 사람 이승만의 능력과 업적을 따라 하기보다도 이승만이 만났던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이승만 박사처럼 되기 위해 가장 먼저 지녀야 할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향한 소망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을 중심에 둔 사람이라면 굳이 이승만 박사처럼 되려고 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이승만 박사처럼 쓰임 받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즉, 먼저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대범함, 꿋꿋함, 동역자 등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가기에 필요한 것들을 갖춘다면 하나님이 이승만 박사를 쓰신 것처럼 나 또한 사용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견미단을 통해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보고 듣고 얻었지만 내가 얻은 가장 큰 가치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로 다짐한 사람이기에 그에 걸맞게 하나님을 찾고, 사랑하고, 자연스럽게 맡은 일과 주어진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했으며, 또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생각하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기로 다짐했다.

내가 믿음의 선조들로부터 선물 받은 자유를 사랑하는 이웃, 즉 북한 땅에 살고 있는 이웃들도 누릴 수 있게 돕겠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어느 순간에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실지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이고 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에 기도로 구하되 내가 그리는, 원하는 바를 하나님께 강요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이다.

견미단 일정을 마친 후 나는 이승만 박사처럼 쓰임 받기를 원하기도 하지만, 이승만 박사가 만난 하나님을 만나고, 이승만 박사가 하나님을 사랑했던 만큼 사랑하고, 의지했던 만큼 의지하는 것을 더 바라게 되었다.

또한 하나님이 정말 나를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과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한 가지 에피소드를 말해 보자면, 창세기 1장을 묵상하던 중 감탄이 절로 나오던 풍경의 하와이 해변보다 직접 빚으신 인간인 나를 더 사랑하신다는 것이 느껴져 하나님께 죄송함과 감사함을 동시에 느끼는 값진 경험을 했다.

견미록을 빌려 이 모든 걸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준비해 주신 조평세 단장님과 손영광 교수님, 그리고 스태프분들과 조장님들, 모든 견미단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조평세 대표와 이승만 대통령 기념 재단 김군기 사무국장. 사진=1776연구소
조평세 대표와 이승만 대통령 기념 재단 김군기 사무국장. 사진=1776연구소
(왼쪽부터)손영광 부대표와 이승만건국대통령 미주총회 사무차장 김수경 목사 & 사무총장 황일봉 장로
(왼쪽부터)손영광 부대표와 이승만건국대통령 미주총회 사무차장 김수경 목사 & 사무총장 황일봉 장로

'견미단''미국을 보는 단체'라는 뜻으로 미국을 견학한다는 말이다. 이 호칭은 1883년에 조선의 보빙사절단이 미국을 처음 공식 방문해서 조선 선교의 문을 열게 했는데, 그 별칭을 따서 만든 것이다.

지난 202311월에 '1776연구소'를 개소한 조평세 대표는 '2024 견미단'의 리더로 76일에 서울 중구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에서 '2024 견미단 발대식'을 거행했다. 714일부터 28일까지 미국을 방문한 견미단은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국빈 방미 70주년을 기념하며 만들어졌다.

1776연구소의 1776은 미국이 독립선언을 한 해인데, 미국의 독립정신을 제대로 알아서 대한민국도 건강한 자유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견미단. 사진=1776연구소
견미단. 사진=1776연구소

견미단을 모집하기 위해 '부산 세계로교회'(손현보 목사 시무)'바른청년연합'(대표 손영광), '빌드업코리아'(대표 김민아), '1776연구소'(대표 조평세) 등을 통해 공고를 내자, 150명이 지원했고, 그 중에 54명이 선발되었다.

재밌는 사실은, 작년까지 '한강 다리를 폭파하고 도망간 런승만' 또는 '부정선거로 당선되었다가 하야한 이승만'이라는 거짓말을 믿었다가, 다큐멘터리 등을 보면서 오히려 이승만 박사를 존경하게 되어 견미단에 온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다.

견미단은 하와이, 보스턴, 뉴욕, 필라델피아 순서로 다녔는데, 714일 하와이의 호놀룰루 공항에 도착하여 이승만 건국대통령이 설립한 한인기독교회를 방문하고 한인 이민자 9백 여명이 잠들어 있는 오아후 묘지, 한국전쟁 기념비와 진주만 기념공원, 이승만 박사가 마지막 여생을 보낸 마우나라니 요양원까지 둘러보았다.

리틀극장 (현 Play & Players Theatre)
리틀극장 (현 Play & Players Theatre)
리틀극장 왼쪽 벽에 붙어있는 글
리틀극장 왼쪽 벽에 붙어있는 글

견미단은 펜실베니아로 가면서 프린스턴 대학을 방문했고, 1919414일부터 16일까지 사흘간 제1차 한인회의가 열린 장소인 '리틀 극장'(Play & Players Theatre)과 서재필 기념관 그리고 필라델피아에 있는 이승만 대통령의 아들 이태산의 묘지를 방문했다.

이태산 묘지 방문
이태산 묘지 방문

이승만은 만 15세의 나이에 그의 부모가 간택해 준 박 씨와 혼인하여 아들 태산(봉수)을 낳았다. 그의 부인 박 씨는 이승만이 감옥살이를 할 때와 미국에서 공부할 때에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던 조강지처이다.

이승만 가족
이승만 가족

남편을 따라 미국에 가고싶지만, 시아버지를 모셔야 하므로 박 씨는 7살 난 아들을 박용만과 함께 미국에 보냈다. 그러나 불행히도 필라델피아에서 봉수는 디프테리아에 걸려 사망했다(1906. 2.25.).

이에 이승만 박사의 아버지 이경선은 격노하여 이승만 부부를 이혼하도록 했다고 하며, 1912년 결국 두 부부는 이혼했고, 1917년에 박 씨는 이은수를 양자로 입적시켰다.

문무일 한국 본부 사무총장과
문무일 한국 본부 사무총장과

필자도 지난 31일에 이승만 다큐를 찍기 위해 문무일 한국 본부 사무총장과 함께 이태산 묘지에 다녀왔다. 묘지 이름은 Lawnview Cemetery이다.

태산 묘비 청소
태산 묘비 청소

이승만 박사는 그의 아들에게 늘 "태산아"라고 불렀기에, "RHEE 1899 TAISANAH 1906"라며 묘비명이 '태산아'(TAISANAH)로 되어있다. 묘비명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겨우내 돌본 흔적이 없어서 필자는 물티슈로 묘비를 깨끗이 닦고, 주변 정리를 하고 꽃을 꽂았다.

이승만 건국대통령은 '2024 견미단'으로 미국을 방문한 청년들과 같은 꽃다운 나이에 ,<매일 신문> 등을 창간했고, 감옥에서 <독립 전쟁>이라는 책을 집필했고, 신영한사전을 편찬했다. 그뿐인가? 그는 감옥을 '복당'이라고 부르며, 사대부 출신 정치범 40여명을 전도했다. 정치가들이 기독교인이 되어야 우리 나라가 기독교 국가로 세워진다고 생각한 이승만 박사는 감옥 안에서 기독교 민주주의 국가의 초석을 마련했던 것이다.

필자는 견미단으로 온 청년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승만 건국대통령이 "대한 사람의 새 물줄기는 예수 교회"라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나라의 기초로 삼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건설하려고 피나는 노력을 했던 것을 기억하며, 우리 조국의 미래를 예수 그리스도만 섬기는 나라로 이끌어가는 미래의 주역들이 되길 소망해본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