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율법의 재해석과 정리
신명기와 관계된 내용 중에서 다음과 같은 세가지 내용을 알면 차영지 운동이 왜 성경적이며 또한 반드시 실행되어야 할 일인지 알게 된다.
첫째, 신명기는 광야에서 태어난 다음세대에게 다시 정리해준 하나님의 말씀이다.
모세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 광야로 나섰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으로 인해 40일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40년이나 걸려서 가게 되었다. 그 여정 가운데 애굽에서 나온 세대들은 지도자 모세와 잚은 장수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다 죽고 (민 26:63-66; 32:13) 새로운 세대가 광야에서 태어났다 (신 1:34-38). 그들에게 출애굽의 역사와 기적, 광야생활 40년 동안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 등에 대해 다시 한번 정리해 준 율법이 신명기 (Deuteronomy)서의 내용이다.
Deuteronomy는 deuteros와 nomos의 합성어로서 “두 번째 율법”이라는 뜻인데 최초의 헬라어 번역 성경인 70인 역이 l7장 l8절의 “이 율법의 사본” (a copy of this law)을 “Deuteronomium” 라고 번역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직역하면 “율법의 복사”이지만, 사실 다음 세대들을 위하여 처음에 받았던 율법을 요약하고 재 해석한 내용이다. 한글 성경의 한자 표기는 “申命記”인데 ‘다시’ 라는 뜻의 ‘申’, ‘계명’이라는 뜻의 ‘命’, ‘기록’이라는 뜻의 ‘記’로 되어있다.
둘째, 신명기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비하며 주신 말씀이다.
모세가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즉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전에, 자신조차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모세도 과거의 사람, 즉 불 순종의 세대에 속한 사람으로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3:23-29) 다음 세대와 그 후손들을 위해 필연적으로 해야만 하는 일을 완성한 책이 신명기인 것이다.
신명기는 다음세대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면서 후손들에게 대대로 전할 것을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신 4:1-9).
|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여호와께서 바알브올의 일로 말미암아 행하신 바를 너희가 눈으로 보았거니와 바알브올을 따른 모든 사람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에서 멸망시키셨으되.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가 들어가서 기업으로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
앞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망할 수도 있다는 경고와 함께 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을 재 천명하고 있다 (신 11:13-21):
|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이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의 날과 너희의 자녀의 날이 많아서 하늘이 땅을 덮는 날과 같으리라 |
셋째,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라는 “쉐마” (히브리어로 “들으라”는 뜻)가 신명기의 핵심 내용 (6:4-9)중 하나이다.
쉐마는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지시한 내용이다. 쉐마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유대교는 시간적 개념의 선교, 즉 다음 세대인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계명과 뜻을 철저하게 가르친 반면에 공간적 개념의 선교, 즉 어느 특정 지역으로 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은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유대교는 오직 자신들 안에서 특정 지역에 한정되어 있는 선교를 하고 있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아마도 신명기의 쉐마의 원형은 민수기 15:37-41일 것이다. 먼저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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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그리하여 너희가 내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행하면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었느니라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니라 |
반면에 신명기에서 새롭게 정립된 내용 (6:4-9)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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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
민수기에서는 모세 등 지도자들이 그 명령을 수행할 것을 강조한 반면에 신명기에서는 그 의무가 부모들에게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다르다. 즉 신명기에 의하면 부모들이 먼저 그렇게 하고, 그리고 자녀들에게 철저하게 가르치라는 것이다. 민수기에 비해서 신명기에서는 가정의 비중이 훨씬 높아져 있음이 발견된다. 그와 같이 신명기에서 가정이 자녀 교육의 중심이 된 이래 오늘날까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사사기: 복음의 단절과 그 결과
사사기는 부정적인 차원에서 왜 차영지 운동이 중요한지 깨우쳐주고 있다. 사사기에 대한 이해는 수 24:15부터 해야 할 것이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수 24:15).
여호수아의 생애 말기에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여호수아는 다시 한번 비장한 결단을 촉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여호수아가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한 말을 주목해보자.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가정이 무너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면 가정과 사회에서도 건강한 관계가 깨지고 만다. 하나님과의 관계, 가정에서 가족들과 관계, 그리고 사회 속에서 건강하게 리더로 살아가는 관계 등이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호수아는 정확한 선택과 결단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사기 2:7-15을 보면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 그리고 여호수아 시대 이후 신명기에서 주신 말씀을 준행하지 못했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2:10-11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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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삿 2:10-11). (After that whole generation had been gathered to their fathers, another generation grew up, who knew neither the LORD nor what he had done for Israel. Then the Israelites did evil in the eyes of the LORD and served the Baals). |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그토록 여호와를 알지 못한 채 악을 행하게 되었을까? 사사기를 보면 두가지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 그들을 이끌 만한 지도자가 없었다. 사사기 1:1을 보자: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삿 1:1).
여호수아가 죽기 전에 모세가 죽었다. 모세는 죽기 전에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웠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땅을 분배하고 살면서 지도자를 세우지 못하고 죽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민족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고 그 때마다 각각의 사사들이 일어나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둘째, 부모들이 자녀들을 영적으로 가르치지 못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잘 가르칠 의무와 아울러 자녀들 앞에서 모범을 보임으로써 자녀들로 하여금 보고, 듣고 배우도록 해야 하는데 사사 시대에는 그렇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자녀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 채 바알 신을 섬기게 되었던 것이다.
타락의 극치는 요시야 왕의 아들 여러보암 왕때 (760-753 B.C.) 나타난다. 사실 그 때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풍요로운 시기였다.
그런데 그렇게 풍요로울 때 누가 먼저 타락했을까?
말씀을 전해주어야 할 사람들이다. 그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줄 사람이 없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장소가 사라졌다. 결과적으로 젊은이들이 영적 기근 상태에 빠져 비틀거리고 있고 넘어지고 있었다.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해 통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가 바로 아모스 선지자이다. 아모스 8:11-13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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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
결국, 이스라엘은 멸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영적으로 극심하게 타락한 북이스라엘은 바벨론에 의해 722년에 망하고, 남유다는 586년에 앗수르 (오늘날의 시리아)에 의해 멸망 당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 때 성전도 없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생존하기 위해 철저히 율법을 지키며 생존하게 됨으로써 이스라엘 전체가 율법주의로 변하게 되었다. 물론 당시에는 어절 수 없는 최선의 방법이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포로에서 돌아오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라, 느헤미야, 스룹바벨 등의 지도하에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재건하며 다시 한번 약속의 땅에 정착하게 되었다. 하지만 70여년 간의 포로 기간 동안에 이미 이방신들과 이방 문화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극심한 영적 혼란을 겪으며 타락하게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고 가족 간의 관계도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한 현상을 보고 말라기 선지자가 강력하게 회복을 촉구한 내용이 셋 있는데, 성전건축, 십일조, 그리고 가정의 회복이다.
그 후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약 400년간의 암흑기를 지나야 했다. 그 기간을 신구약 중간시대 (Intertestamental Period)라고 한다. 당시에 유대 민족은 로마의 침입을 받고, 식민지로 살아가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했던 것처럼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단호하게 선언해야 할 때이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 돌아와서 주일을 성수하고, 십일조를 드리며 가정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리 세상이 악할 지라도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유대교의 쉐마와 기독교의 쉐마
유대교의 쉐마 (신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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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스라엘아 들으라 (Hear)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the LORD is one" () 5. 5.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 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 지니라 ([4]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the LORD is one. [5]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strength. [6] These commandments that I give you today are to be upon your hearts. [7] Impress them on your children. Talk about them when you sit at home and when you walk along the road, when you lie down and when you get up. [8] Tie them as symbols on your hands and bind them on your foreheads. [9] Write them on the doorframes of your houses and on your gates. |
내용을 요약해 보자.
첫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분명히 알리는데, 바로 유일하신 하나님이라고 했고;
둘째, 그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명령하며;
셋째, 그 명령을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했다.
유대인들은 신명기 시대 이후로 오늘날까지 쉐마를 목숨처럼 지키면서 시간적 선교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어려운 고난 가운데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현대 국가의 독립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 대화나 학습의 기술 등에 대해서는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쉐마를 운명처럼 실천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기독교의 쉐마 (행 2: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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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listen carefully ) [15]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 하셨느니라 ([14] Then Peter stood up with the Eleven, raised his voice and addressed the crowd: "Fellow Jews and all of you who live in Jerusalem, let me explain this to you; listen carefully to what I say. [15] These men are not drunk, as you suppose. It's only nine in the morning! [16] No, this is what was spoken by the prophet Joel: [17] "'In the last days, God says, I will pour out my Spirit on all people. Your sons and daughters will prophesy, your young men will see visions, your old men will dream dreams. [18] Even on my servants, both men and women, I will pour out my Spirit in those days, and they will prophesy. [19] I will show wonders in the heaven above and signs on the earth below, blood and fire and billows of smoke. [20] The sun will be turned to darkness and the moon to blood before the coming of the great and glorious day of the Lord. [21] And everyone who calls on the name of the Lord will be saved.' [22] "Men of Israel, listen to this: Jesus of Nazareth was a man accredited by God to you by miracles, wonders and signs, which God did among you through him, as you yourselves know. |
내용을 요약해 보자.
첫째,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중에 말세에 하나님의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신다고 명시한 후;
둘째, 세대 간의 벽이 허물어 지며 특히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역사가 일어날 것을 말씀하신다;
셋째, 이러한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이”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 포함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그 모든 일을 이루셨다고 했다. 가장 특이한 것은 그 일이 성령의 역사 가운데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유대교의 쉐마는 유대인과 이방인, 어른과 아이, 남자와 여자가 구분된 가운데 오직 유대인들 가운데 세대에서 세대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면, 기독교의 쉐마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을 포함하는 “모든 육체” 중에서 특히 어린이나 어른이나, 부모나 자녀나, 남자나 여자의 구분 없이 모든 세대가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것이 다르다.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보면 유대교로부터 태동하였지만 그 내용은 완전히 다른 형태를 가진다는 것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어떻게 하여 복음을 세대에서 세대로 전할 수 있을까?
영적으로 그들과 소통하며 함께 은혜를 받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현세대와 다음 세대가 엄격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세대와 세대의 거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하나가 되어 함께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성령을 체험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의 쉐마인 것이다. 차영지 집회는 3세대가 한 곳에 모여 함께 예배 드리며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시는 성령을 체험하는 집회를 함으로써 사도행전의 역사를 오늘날 실현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쉐마의 특징: 요엘 선지자의 예언과 베드로의 설교의 다른점
사실 기독교의 쉐마의 출처는 요엘 2:28-32이다. 하지만, 두 본문이 같은 것 같으면서 다른 점이 있다. 다음과 같이 두 본문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요엘 2:28-32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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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 (all flesh)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 (the great and dreadful day of the LORD)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
사도행전 2:16-22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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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 (all flesh)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 (the great and glorious day of the Lord)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
두 본문을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은 차이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요엘: “그 후에”
사도행전: “말세에”
요엘: 내가 내 영을 “만민” (all flesh)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사도행전: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 (all flesh)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요엘: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사도행전: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요엘: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wonders in the heavens and on the earth)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사도행전: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wonders in the heaven above and signs on the earth below)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요엘: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 (the great and dreadful day of the LORD)이 이르기 전에
사도행전: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 (the great and glorious day of the Lord)이 이르기 전에
요엘: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사도행전: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가장 크게 발견되는 차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요엘서는 “그 후에”라고 함으로써 시간의 흐름 가운데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으로 예언한 반면에 사도행전은 “말세에”라고 함으로써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러한 일이 이루어짐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 요엘서와 사도행전은 동일하게 하나님께서 “만민” 혹은 “모든 육체” (all flesh)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신다고 했는데, 요엘서에서 “만민”은 모든 유대인을 의미하는 반면에 사도행전에서 “모든 육체”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을 포함하는 것이 다르다.
셋째, 요엘서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 (the great and dreadful day of the LORD)이라고 함으로써 두려운 심판을 암시하는 반면에 사도행전은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 (the great and glorious day of the Lord)이라고 함으로써 성령이 모든 육체에게 부어지는 것은 두려움과 공포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영광스러운 날임을 강조했다. 기독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넷째, 요엘서는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라고 함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명시한 반면에 사도행전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주는 예수님을 의미한다. 즉 사도행전은 하나님이 그 모든 일을 예수님을 통해 이루신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요약해 보면 기독교의 쉐마는 세대 간의 시기를 지나면서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유대교와 달리 모든 사람이 동시에 성령을 받는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것이고 그러한 일은 유대인에게 한정되어 있는 사건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모든 일을 이루시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선언이다.
성경에 나타나는 영적 지도자들의 특징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순종한 사람들이다 (사 6:1-13).
(1) 하나님과 영적으로 만난 체험의 사람들 (1-5).
(2) 부족한 점이 정말 많은 사람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은 사람들 (6-7).
(3)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순종한 사람들 (8).
(4) 사람들에게 보냄을 받은 사람들 (9-10).
(5) 나의 뜻이 아니 하나님의 섭리와 절차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 (10-13).
(6) 결국,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사람은 소수이다(13)
●우리는 예수께서 보낸 자들이다 (눅 10:1-11; 요 17:16-19)
(1)소수의 일꾼들
(2)위험한 일 그러나 평화적으로 ((4-5절. 무장해제)
(4)길에서 인사도 받지 말고
(5)지체하지 말고
(6)바리새인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복음의 일꾼들 답게/ 겉멋 들지 말고 (눅 11:43)
(7)주는 대로 먹고 (7-8): 율법조항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생명이다.
(8)그 집에서 가장 시급한 일들을 도와주며 (9)
(9)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라 (9)
(10) 받아들이지 않으면 억지로 하지 말라 (10-11).
●새 언약을 받은 사람들이다 (히 8:7-13).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선포하는 사람들이다 (히 9:22-28; 10:1-20).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성취하는 사람들이다 (요 12:47; 딤전 2:4).
●하나님의 비밀의 뜻을 이루어가는 사람들이다 (엡 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