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5장은 유명한 달란트 비유가 나온다. 달란트 비유는 다양한 주제로 초점을 맞춰 해석이 가능하다. 주인이 타국에 가면서 종들에게 자기소유를 맡겼다.
첫째, 주인은 각자에게 다른 양을 주셨다. 어떤 사람은5, 어떤 사람은2, 또 어떤 사람은 1달란트 을 받았다. 공평하지 않아 보여도, 능력대로 맡겼다.
둘째. 주인은 결과보다 충성을 보셨다. 5달란트, 2달란트를 남긴 종에게 똑같이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했다. 많이 남겼느냐보다, 충성했느냐가 기준이다.
셋째, 움직이지 않은 자는 책망 받았다, 1달란트를 땅에 묻은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저주를 받았다.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심판을 피할 수 없다.
넷째, 주인은 작은 것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겼다. 작은 것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 성경의 관점이다. 그 예들이 성경에 가득차 있다.
(1)달란트 비유의 결과는 주인으로부터 종은 작은 일에 충성했다고 칭찬을 받았다. “그 주인이 이르되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마25:21). 작은 일에 충성했다고 주인은 칭찬했다.
(2)불의한 청지기 비유(눅 16:10)의 핵심도 같은 관점이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주인에게 해고당할 위기에 처한 청지기가 지혜롭게 빚진 자들과의 채무 관계를 조정하며 미래를 대비했다. 예수님은 청지기의 “세상적인 지혜”를 칭찬하시며, 제자들에게도 장차 올 영원한 나라를 대비하라고 권면하셨다. 작은 것에 충성한 자는 큰 일도 맡을 자격이 있다는 논리이다. 재물(작은 것)에 신실하지 못하면, 참된 것(영적 사명)을 맡기지 않는다. 이것이 주님의 논리이다.
(3)마25장에 양과 염소의 비유가 나온다, 인자가 영광 가운데 올 때에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과 같이,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둔다. 오른편에 있던 양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 왼편에 있던 염소들에게 “저주를 받는 자들아.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왜 이 차이가 났을까? 양도 염소도 주릴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다. 의인이 대답했다.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 그런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것이니라”.
왼쪽에 있던 염소, 악인이 항변했다. 우리도 아픔을 겪고 있던 분들을 돌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왼쪽 악인이 왜 이런 평가를 받았을까? 자기 이름이 나는 곳, 이익이 돌아오는 사람들에게만 했기 때문이다.
(4)허드슨 테일러가 남긴 명언이다. “작은 일은 작은일이다. 그러나 작은 일을 충성스럽게 하는 것은 큰일이다”
(5)과부가 성전에서 두 렙돈 작은 금액의 동전을 헌금으로 드렸다. 예수님은 매우 높게 평가했다. “이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그들은 다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막 12:43-44).
예수님의 평가 기준은 사람과 다르다.
첫째, 겉보기의 액수보다 중심을 보신다. 많은 돈을 넣은 부자들보다, 작은 두 렙돈(극히 적은 금액)을 넣은 과부를 더 귀하게 보셨다.
둘째, 헌신의 정도를 보셨다. 부자들은 남는 것 중 일부를 드렸지만, 과부는 자기 생활비 전부를 드렸다.
셋째, 가난한 과부를 예를 들면서 주님은 무엇을 가르치려고 했는가?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를 가르친 것이다. 헌신의 본보기로 삼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과부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서는 양이 아니라 마음과 태도, 희생의 깊이가 중요함을 가르치셨다. 하나님은 마음이 담겨진, 정성이 담겨진, 작은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신다.
(6)지금은 때가 아니다. 상황이 어렵기에 나중으로 미루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사업이 작고 여건이 열악하니까? 나중에 규모가 커지고 자리가 잡히면 하나님께 더 크게 헌신하겠습니다.”라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선은 다르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큰 비전을 약속하시기 전에, 작은 것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먼저 시험하신다. 왜냐하면 작은 것에 충성하지 않는 사람은, 큰 것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업의 스케일이나 성공보다, ‘지금 삶의 자리’에서의 충성하느냐? 그 신실함을 평가하신다.
(7)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는 어떻게 선발되었는가? 여호수아는 40년 동안 모세의 보조자 역할을 충성스럽게 감당했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떠나지 아니하니라”(출33:11). 겉으로 보기엔 ‘2인자’, 보조직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 중심과 충성을 보셨다. “그 안에 영이 있는 자를 데려다가…”(민27:18).
여호수아는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긍정적인 보고를 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능히 그 땅을 취할 것입니다. 과연 가나안은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과실이 풍부하고 물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이것이 여호수아의 보고의 내용이다.
중요한 점이 있다. 여호수아는 ‘무엇을 성취했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어떻게 섬겼느냐’, ‘어디에서 어떻게 반응했느냐’로 선택받았다. 하나님은 ‘현재의 충성’을 미래의 리더십 기준으로 삼으셨다.
예수님의 제자 선발 기준도 같은 관점이다. 외형이 아닌 중심을 보셨다. 사람 그 자체를 보신 것이다. 예수님은 사명을 맡기기 전에 밤새 기도하셨다(눅 6:12-13). 제자들의 사회적 배경, 능력, 스펙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 안의 성실성, 순종할 마음, 배우고 변화될 가능성을 보셨다.
오늘날 일터 기업가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재무제표’가 아닌 ‘정직한 마음 중심’을 보신다.
기독 실업인으로서 ‘작은 일’에 충성한다는 것은? 계산서의 1원도 정직히 처리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고객에게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직원 한 명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서 경영하는 것이다. 그러한 마음이 주님의 눈에 ‘리더의 자격’으로 기록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큰 회사를 운영하느냐보다, 오늘 어떤 자세로 경영하고 있는지를 보신다. 작은 일에 충성된 자를 하나님은 반드시 높인다. 작은 것의 소중한 가치를 지키는 것이 실력이다. 작은 일이 인생에 큰 길을 연다. 작음과 큰 것의 성경적 기준은 양이 아니라 내용의 질이다.
예수님은 가장 작은 자로 오셨다. 마귀 간에 태어났다. 그리고 12명의 제자를 선발하고, 함께 3년간 동행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고 3일만에 부활했다. 예수님의 사역을 결코 작다고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인류역사에 가장 위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는 사람과 사역에 자신의 영혼을 담았기 때문이다. 영혼에 담긴 메세지가 여전히 인류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정신이고 근간이기 때문이다.
작은 일에 전부를 거는 인생을 보면 그 자체가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작은 일을 하찮게 여기며, 불성실한 태도로 대하는 모습을 보면 그리 아름다운 모습으로 여기지 않는다.
작은 틈이 결국에는 뚝이 무너진다. 작은 것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글의 완성도는 작은 디테일을 잘 살려낼때 품격을 느낀다. 명품과 짝퉁의 차이도 비슷하다. 명품은 디테일이 살아 있다. 짝퉁은 모양은 똑같은데 작은 미세한 부분에서 엉성함과 조악함이 들어난다.
작은 것, 작은 길이 큰 길을 여는 지름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