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철 목사] 기억과 소통

  • 입력 2025.11.21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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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반도체 메모리라 불리는 메모리(기억)는 컴퓨터의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신속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명령어와 데이터를 전자적인 방법으로 저장시키는 일종의 기억 장치다. 메모리의 정보저장 능력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서 2015년 8월 현재 인텔과 마이크론이 공동 개발한 3D 크로스 포인트(3D XPoint)는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설계 기술로 기존의 난드(NAND) 플래시 메모리보다 1,000배 이상 빠르다니 놀라울 뿐이다. 더 빠르고 더 다양하게 소통할 수 있는 기기를 사용하는 인간이 현실에서 기억을 활용하여 원만한 소통을 시도하지 않음은 이상한 일이다.

기억은 소통의 과정이다. remember란 “가족과의 재결합”(re-member)을 의미한다. 이는 고향을 찾음이다. 타향으로 멀어졌던 마음이 귀향으로 가까워짐이며, 끊어졌던 관계가 고향을 찾음으로 이어지는 상태다. 사람은 기억할 수 있음으로 인해 소통의 구원에 이를 수 있다. 사람들의 대화가 단절되고 관계가 소원하고 왕래가 끊김은 절망적 상태다. 소외감이 팽배하다. 소외감은 죄의 사회학적 표현이다. 기억은 죄의 상태를 벗어나 구원의 초입으로 이끈다.

두 사람은 좋은 추억을 회상함으로 대화를 통한 관계에 재점화를 시도한다. 원수가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떨쳐버리고 이방인이었던 상대를 다시 가족의 테두리 안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이 “기억”이다. 이에 비해 망각은 모든 것과의 결별을 뜻한다. 때로는 망각이 은혜일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망각은 가까운 사람들과의 단절을 초래한다. 더불어 관계를 맺으며 짰던 삶의 올이 모두 풀어져버리는 것과 똑같다. 망각자는 화자나 청자의 위치에 제대로 설 수 없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은혜를 잊어버리면 배은망덕이 되고 결국 사람을 잃어버리는 지경까지 이른다. 과거를 잊어버림은 시간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의 반사경이 되었던 등 뒤의 삶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것이다. 기억을 통해 “가족과의 재결합”이 이루어지면 마음껏 공간을 넘나드는 빛과 공기처럼 소통의 기운은 서로의 정신세계를 흐른다. 서로의 소리가 공명을 낸다. 풍성한 생명이 작동한다. 불통으로 인해 시들었던 생명에 새로운 기운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소통에도 모세 혈관과도 같은 미세한 관이 있다. 망각으로 인해 오랫동안 막혀있던 이 관을 기억이 뚫는다. 이 회복된 소통의 관을 통해 두 사람의 대화는 부분과 전체가 통하고 중심과 변이 통하고 아래와 위가 통하는 관계에 이를 수 있다. 이로써 화자와 청자는 가족이 되어 대립, 갈등, 분열, 단절, 막힘, 끊김, 오해와 같은 불통 현상을 거뜬히 극복하고 진정한 소통의 세계에 진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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