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 목사와 교회 지체들의 고백

1. 고신교단에 대한 이해를 최덕성 박사께서 많은 수정을 해주었다. 가장 결정적인 부분은 고신교단이 도나투스적 분파주의가 아니라, 정통교회를 유지하려는 몸부림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조선예수교장로회는 신사참배를 가결한 뒤에, 일제에 의해서 해체되었다. 신사참배에 거부하고 한상동 목사를 주축으로 거룩한 교회를 유지하려고 1946년에 가장 먼저 “고려신학교”를 설립했다. 고신은 고려신학교와 경남(법통)노회가 특징일 것이다. 그리고 고신에 대한 부정적인 특징은 인재들을 포용하지 못한 것이다. 합동은 수 많은 인재를 포용한 것이 문제일 것이다. 고신이 포용하지 못한 인재(이병규, 석원태, 백영희 등)는 한국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그 중에 이광호도 포함될 것이다. <실로암 교회 30년사>에서 고신에서 제명되는 것을 진솔하게 제시하는 것을 보면 아픔이 어느 정도 회복된 것으로 생각된다.

조주석 목사는 노회의 제명에 대해서 총회에 항소하지 않음을 아쉬워했다. 그러나 고신교단에서 그 과정은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공회가 부당한 판결을 하면 모든 공회의 판단에 의심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고신교단에서 정죄된 경우 그 판단을 부정하는 사례들이 있다. 부당한 판결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회복하여 자기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2. <실로암교회 30년사>는 교회 사역 전반이 기록되고 보존되었다는 매우 좋은 사례이다. 목사의 설교와 활동 사례들을 교회가 보존했고, 교회 지체들도 그 활동에 대해서 기억한 매우 우수한 모습이다. 다른 교회사의 사례는 사진 중심으로 편재되었는데, <실로암교회 30년사>는 고백 중심으로 편재시켰다. 담임목사의 술회와 고백에서 모든 지체들의 고백으로 구성시켰고, 뒤에 화보를 배치시켰다. <실로암교회 30년사>은 화보가 아닌 고백이 드러난다. <실로암교회 30년사>는 보는 교회사가 아니라, 읽고 이해하는 교회사이다. 한 교회를 이해하는 것은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3. 실로암 교회의 목사 이광호는 박식한 사상가이다. 그리고 매우 보수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 보수적인 사안들을 세부적으로 명문화시킨 것이 아쉽다. 규범은 인격과 행동을 통제하기 때문에 소극적으로 해야 하는데, 실로암 교회는 적극적으로 작성한 것이다. 그러한 엄격한 구도를 유지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유지한 것은 큰 과업일 것이다.

4. 교회 지체들의 글쓰기의 모습은 매우 탁월하다. 신학교와 모든 상황에서 글쓰기와 토론 등의 훈련이 잘 되었다. 자기 기억과 감정 그리고 지식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복된 일이다. 교회가 협력해서 함께 글로 보존한 것은 합당하고 가치 있는 과정이다.

5. 교회 사역자로 이광호 목사가 부러운 것은 모든 행위를 기록으로 보존하며 저술로 출판한 것이다. 그 작업으로 실로암 교회는 사상 체계를 구축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확장할 것인지(수정 확장, 보완 확장 등등), 유지할 것인지(축소 지향, 엄격 등)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교회가 더 개혁되어야 할 당위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좀 더 다른 변화를 위한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변화의 난관과 진통에서 복된 성장이 있기를 기대한다.

6. 이광호 목사는 노회(한국개혁장로회)와 신학교(한국개혁장로회 신학교)를 형성하여 명실상부한 조직 체계를 구축했다. 한국에서 개혁파들이 선명성을 추구하면서 연합하지 못하는 모습이 많다. 선명성과 함께 연합할 수 있는 자세로 좀 더 다른 개혁파 조직들과 연합할 수 있으면 좋겠다. 다름이 연합할 좋은 요소는 아니다. 그러나 동일한 교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연합하지 못하는 것도 좋지 않다.

실로암 교회가 한국 교회에서 볼 수 없는 유익한 모습을 <실로암교회 30년사>을 통해서 보여주었다. 실로암 교회가 좀 더 합당한 모습으로 개혁되어 가며, 많은 개혁교회들과 연합과 화합을 이루어 한국 개혁 교회를 선도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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