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207)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19)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

이 고난의 시대에 우리는 욥처럼 설 수 있을까? 펜데믹의 전염병 위협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으니 답답하다.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하고 안정된 사회가 될 것인가? 우리 모두는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사회와 나라와 민족,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나라마다 백신과 방역의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을 가지고 위기를 극복하려하지만 좀 체로 이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사라지지 않고 있으니 안타깝다. 이와 같은 때에 욥은 하나님의 길과 자신의 길에 대하여 생각하며 자신의 인생의 위기과 고난을 이겨나가고 있다. 자신의 인생길을 바로 하나님이 아신다는 고백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인생의 과정이 바로 연단의 과정이며 순금 같은 결과를 갖는 삶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욥기 전체의 결론이고 욥기가 말하는 저작 목적이다. 하지만 오늘 우리에게도 이 고난의 시대에 하나님이 연단하는 기간으로 봐야 한다. 이 때는 우리를 정금같이 나오게 하는 삶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욥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작정된 인생의 계획을 이뤄 가신다고 고백한다.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욥23:11-12). 인생의 과정과 목적을 안 욥은 하나님의 길을 가며 그의 명령을 지키며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갔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에 작정하신 일을 이루실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바로 오늘 우리가 이 전염병 시대에 살아가는 자세가 주님을 두려워하며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약하게 하시며 전능자가 나를 두렵게 하셨나니 이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어둠 때문이나 흑암이 내 얼굴을 가렸기 때문이 아니로다”(욥23:16-17). 이 전염병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인해 주님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삶이어야 한다.

선교사들은 특히 하나님의 선교에 임하며 어려움이 가중될 때에도 십자가 복음의 선교를 위해 자원하며 나선다. 윌리암 아서 노블(1866-1945) 선교사도 연달은 선교사의 소천(홀, 아펜젤러, 메리 스크랜턴 선교사)으로 인해 감리교 선교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선교사로 들어와서 평양을 중심으로 한 북한 선교사로서 사역을 감당하였다. 노블은 배재학당에서 3년간 물리학, 수학을 가르쳤고 배재대학의 교양학부장으로 사역하였고, 그 후 15년간 평양 선교부에서 섬겼다. 평양과 영변, 의주 등을 방문하며 북방 선교의 길을 열었고, 1900년에는 구약성서 번역에 참석하였다. 또 그는 평양 기술학교인 격물학당을 완공하고 한국에 전화 시스템을 도입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윌리암 아서 노블(Noble, William Arthur,1886~1956) 매티 윌콕스 노블(Mattie Wilcox Noble,1872∼1956)과 가족
윌리암 아서 노블(Noble, William Arthur,1886~1956) 매티 윌콕스 노블(Mattie Wilcox Noble,1872∼1956)과 가족

부인 매티는 미국의 어머니로 선발되기도 하였고, <매티 노블의 조선회상(1910)>을 출판하여 한국 선교 역사를 남기도 하였다. 노블과 매티의 딸 루스와 아펜젤러의 아들 닷지가 첫 선교사 자녀가 결혼하는 역사도 만들었다. 노블의 둘째와 넷째는 한 살도 못 되서 평양에서 목숨을 잃는 고난도 당지만 불행에 굴하지 않고 복음 선교사로서 한국의 선교의 큰 족적을 남기게 되어서 오늘의 한국 교회성장에 크게 기여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선교사는 그 나라의 문화 선구자로서 빛을 전하는 자들이었다.

매티 노블의 조선 회상 , 매티 윌콕스 노블(Mattie Wilcox Noble,1872∼1956)
매티 노블의 조선 회상 , 매티 윌콕스 노블(Mattie Wilcox Noble,1872∼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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