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상은 행복과 고통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며 살아가는 현실이며 한번 기뻐하다가도 또 한 번 슬픈 일을 맞이하며 눈물지으며 살아가는 인생이다. 찬송가 541장에 나오는 ‘솔로몬의 부귀보다 욥의 인내가 더 귀하다’는 가사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더 귀하게 들린다. 과거 주기철 목사는 일제강점기에 살면서 고난의 신앙생활을 하며 이와 똑같은 고백을 한 것을 기억한다. 욥의 인내가 더 필요한 시대에 신앙 고백을 한 것이 오늘도 요구되고 있다. 우리 시대에도 전염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의 울음소리와 더불어 이 욥의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이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일상을 위협하는 현실에서는 더욱 욥의 인내가 요구된다.
욥은 고난을 당하는 현실에서 친구(엘리바스)가 조언하는 말에서 고난 극복의 지혜가 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화목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22:21). 하나님과 평화하는 일에 대하여 욥기 22장은 후반부에 더 말하고 있다. “청하건대 너는 하나님의 입에서 교훈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욥22:22).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는 것이 고난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하며 세상의 물질과 보화가 고난의 현실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네 보화를 티끌로 여기고 오빌의 금을 계곡의 돌로 여기라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화가 되시며 네게 고귀한 은이 되시리니”(욥22:24-25). 전능자 하나님이 보화가 되고 그 분이 믿을 분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 고난과 고통의 삶속에서 구원을 받는 길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엘리바스가 세 번째 말하는, 욥기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부연하여 설명한다.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 너는 그에게 기도하겠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서원을 네가 갚으리라 네가 무엇을 결정하며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치리라”(욥22:26-28).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음과 한탄, 고통을 들으셔야 할 때이다. 하나님께 서원했던 것과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결정했던 것을 이루실 것이라 말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서있을 때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욥의 순전함과 같은 존재들이 한국의 초기 선교사들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 중에 루비 켄드릭(Ruby Rachel Kendrick 1883-1908)은 25세 조선에 온 지 9개월 만에 급성 맹장염으로 소천한다. 하지만 고난 중에도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된다(요12:24). 남감리교회 선교사로 처음 한국 땅에서 순직하면서 “만일 내가 죽으면 텍사스 청년회원들에게 10씩, 20씩, 50씩 조선으로 나오라고 일어주세요!”라고 유언했다. 그래서 12명의 여성 선교사가 자원했고, 추모예배 때 텍사스 엡윗 청년회원 20명의 회원들이 선교사로 지원했다. 루비 켄드릭은 엡윗 청년회에 보낸 편지에서 “내게 천 개의 생명이 있다면 그 모두 조선에 바치리라”는 말에서 보듯 조선을 사랑했던 자매였다. 그녀가 텍사스 주 데니슨의 코퍼스 크리스티 만에 있던 엡웟회 캠프장에서 연례 청년 대회에 5천명의 환송을 받고 1907년 8월 29일 한국에 도착하던 때는 평양 대부흥회의 열기가 있던 때이다. 한 소녀의 천개 생명은 짧은 생애의 선교였지만 큰 감동으로 남아있어 순전한 욥의 선교로 기억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