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206)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18)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만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42:5-6)

이 코로나 19 전염병의 팬데믹이 언제 사라질 것인가? 미국과 이스라엘 등 각국에서 백신 주사를 접종하면서 이제는 이 병이 잦아 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전염병은 사라지지 않고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욥기에서도 고난은 컸고 그의 고통은 가중되어서 욥은 심도 있게 죄의 문제를 깊게 다룬다.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욥6:10). 욥은 결국 고난의 문제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겠다고 고백한다. 이런 고난의 시대에는 ‘하나님 앞에서(코람 데오)’ 사는 것이다. 어떻게 내가 주님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의 선결과제이다.

“내가 범죄하면 주께서 나를 죄인으로 인정하시고 내 죄악을 사하지 아니하시나이다 내가 악하면 화가 있을 것이오며 내가 의로울지라도 머리를 들지 못하는 것은 내 속에 부끄러움(칼론, 혼돈)이 가득하고 내 환난(안위이)을 내 눈이 보기 때문이니이다”(욥10:14-15). 욥은 자신의 문제 근본을 알고, 자신이 의(차다크)롭게 살아도 하나님 앞에서는 머리를 들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자신의 문제인 부끄러움(혼돈)이 가득하고 염려(걱정, 환난)가 많은 것이다. 이 문제의 관건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오늘 일어나는 이 펜데믹 상황 속에 겪는 우리의 문제는 바로 이러한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문제와 공동체의 문제, 그리고 나라와 민족의 문제를 바로 인식하는 데에서부터 이 재앙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열쇠를 가지게 된다. 그 실마리 열쇠(키)는 회개의 길이다. 회개의 길로 나가야 한다. 욥은 회개의 길로 나가니 듣기만 하는 하나님을 직접 보는 차원의 하나님의 임재와 현존을 보게 된 것이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욥42:3-4).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고 그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욥은 이제야 진정한 하나님의 대화를 하게 된 것이다. 선교사는 이러한 민족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주님의 사자이다.

루이자 로드와일러(1853-1920)도 이화학당의 2대 학장을 지내면서 성경과 지리, 수학을 한국어로 가르쳤다. 그는 1890년 메리 스크랜턴의 후임으로 이화학당을 맡아 의료 선교와 위생교육을 강화하며 교육의 목표를 달성하였다. “그들은 음식을 만들고 의복을 만들며 자기 자신과 집을 깨끗이 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보다 나은 한국 사람을 만들려는 것이요, 외국인을 만들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화여자대학교 홈페이지에 소개된 제 2대 루이자 C. 로드와일러

루이자 로드와일러 당장은 ‘한국인을 더 나은 한국인으로’라는 스크랜튼 선생의 교육이념을 이어받아 한글 교육을 최우선으로 삼았고,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실용적인 지식 습득을 주장하였다. 당장직 퇴임 후에도 1899년까지 주한감리교 여선교부와 문서선교 분야에서 활동하며 지도에 전력하였다.

 

로드 와일러는 우리말 <찬미가>를 처음으로 만들어 보급하였고 평양 선교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였다. “개신교 선교가 개시된 이래 한국에서처럼 이렇게 빠르고도 풍성한 결실을 맺은 나라는 없었다.” 규칙장이였던 독일계 로드 와일러는 바른 교육자의 정도를 걸어갔던 인물이었다. 시편 23편 4절을 좋아한 그는 한국 사랑의 선교사로서 교육자로서, 사도(師道)의 길을 걸었다. 1899년 병으로 47세에 그는 귀국하여 67세에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여동생 집에서 소천할 때까지 한국 교육 선교의 어머니로서 활동을 하게 된다. 오늘 본질과 참된 가치를 찾는 전염병의 시대에 로드 와일러는 우리에게 바르게 사는 길을 제시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

 

관련기사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