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223)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35)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KC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KC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그가 내 길을 감찰하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31:4).

오늘날 세상은 온통 전염병 이야기와 재앙의 이야기뿐인 것 같다. 희망의 소식보다는 어두움의 이야기가 더 많고 세계는 혼란스런 상태로 빠져드는 것 같다. 오늘의 시대를 가리켜 불확실성의 시대요 세기적 종말의 시대라 말한다. 이러한 때에 고난의 의미를 물으면 우리는 욥기에서 답을 얻을 수 있다. 더욱이 욥기 31장은 이러한 어려운 고난의 상태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돕자고 한다(31:16-23). “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던가 과부의 눈으로 실망케 하였던가”(16). “내가 언제 사람이 의복이 없이 죽게 된 것이나 빈궁한 자가 덮을 것이 없는 것을 보고도 나의 양털로 그 몸을 더웁게 입혀서 그로 나를 위하여 복을 빌게 하지 아니하였던가”(20). 욥은 하나님의 재앙을 보며 두려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고아와 과부, 가난한 자를 돕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16-23). “나는 하나님의 재앙(에드 엘)을 심히 두려워(파하드)하고 그 위엄(미스에토)을 인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23).

전염병 이후(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인격적 요소가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는 언택트(Untact)교육, 가상공간이 주류를 이루게 될 것이다. 앞으로 생태 친환경적 산업과 빈 건물의 지하나 공간에 인공지능(AI)시스템에 의한 기술집약적인 농업이 이뤄지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가상공간이 펼쳐질 것이다. 이러한 때에 성경적 가치관과 본질추구는 여전히 우리 가운데 중요하게 자리매김을 하며 진리와 기본이 중시되며 소수의 의로운 사람들이 그래도 세상의 중심에서 역사를 이끌어 갈 것이다. 그것은 변함없는 진리이며 욥은 그래서 오늘날 의인의 전형(典型)으로서 신앙인의 본보기요 구원의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를 가리키는 그림자 역할을 한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풍요롭고 의로웠던 과거를 회상하고(29), 현재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해 말하고 있다(30). 현 본문 31장에서는 육체적 고통과 이웃으로부터 소외와 하나님의 교제가 단절된 상태에서 자기 연민 속에 탄식하며 절규하고 있다. “언제 내 걸음이 길에서 떠났던가 내 마음이 내 눈을 따라 갔던가 내 손에 더러운 것이 묻었던가 그리하였으면 나의 심은 것을 타인이 먹으며 나의 소산이 뿌리까지 뽑히는 것이 마땅하니라”(31:7-8).

결국 욥은 자신의 결백과 도덕적 완전함과 순전함을 주장한다. 욥은 16번이나 언제() 내가... 그렇게 하였던가라는 반어적인 표현을 사용하면서 자신의 도덕적인 순결을 주장한다. 이것은 바로 욥의 허물이다.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는 자체가 허물인 것이다. 오늘 우리는 자신의 정당성을 말하고 자신의 의롭다하는 것을 표현하고 행동하고 있다. 어리석은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겸손한 태도를 보이지 못한다. 가장 죄의식을 많이 가졌던 존재들이 전도자나 선교사가 아닐까?

1910년도 이화학당의 모습
1910년도 이화학당의 모습

십자가의 전도자로서 그들을 불쌍한 마음,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조선 땅에 십자가의 복음을 가지고 왔다. 여성의 존재 자체가 사람들의 인식에서 없던 때에 한국 여인들은 이름도 없다는 말을 듣고, 스크랜턴은 조선에 여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온다. 메리 스크랜턴(1832-1909)은 윌리암 탈콧 스크랜턴과 결혼해서 아들 윌리엄을 낳았다. 혼인 후 17년 후 남편과 사별한 후에 52세 늦은 나이로 선교사로 자원해서 조선에 와서 이화학당을 설립한다. 김씨 부인과 별단이, 점동이 등 10명이 학생으로 모집되어 교육을 시작한다. 대부분 고아나 가난하고 병들어 버려진 아이들을 가르치며 교육을 한다. 또 그녀는 상동 공옥여학교, 수원 매향학원, 매일학교, 진명, 숙명, 중앙의 설립에도 협조한다. 한편 하워드와 더불어 보구 여관(후에 이대 의료원)을 창설하며 의료 활동도 한다. 그녀는 24년간 선교 활동하며 시흥, 과천, 수원, 용인 등 경기도 지방과 1905년 수원, 오산, 시흥, 이천, 여주, 천안, 공주 등 경기 남부 지역을 순회하며 교회를 설립한다. 메리 스크랜턴은 한국 근대화의 여성교육의 어머니로 인생의 고난을 극복하고 선교사로서 빛을 전한 진정한 조선의 어머니가 되었다. 오늘도 또 다른 메리의 손길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위 ; 메리스크랜튼 선교사와 학생들 사진 아래 : 오늘날 이화여자대학교
사진 위 ; 메리스크랜튼 선교사와 학생들 사진 아래 : 오늘날 이화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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