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217)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29)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하스켄) 평안하라(쉐롬) 그리하면 복이(토바) 네게 임하리라”(욥22:21).

사람들이 고난으로 지치면 어떠한 상태가 될까. 자포자기하며 주저앉을까? 아니면 희망의 끈을 찾아 창조주에게 나아갈까? 신앙인이라면 실 날 같은 소망의 끈이라도 찾아서 구원의 길을 찾을 것이다. 오늘 팬데믹 전염병으로 세계는 몸살을 앓고 있다. 이 코로나 19가 개도국이나 최빈국에 백신이 공급되는 2028년까지 가야 멈춰지리라고 예상한다. 선진국에서부터 집단 면역이 형성되면서 변형 폐렴이 잦아들게 되리라고 본다. 우리는 그 구원의 말씀을 찾아 영혼이 살 수 있도록 욥기에서 답을 찾고자 한다. 욥기 22장에서는 엘리바스의 욥에 대한 세 번째 충고 장면에 주목하고자 한다.

빌닷은 전례를 들어 욥의 고난은 죄를 인정하지 않는데서 온다고 보았고, 소발은 교리상 욥의 고난은 그가 지은 죄보다 오히려 가볍다고 보았다. 그래서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고 한다(욥11:14-15). 하지만 엘리바스는 경험상 욥의 고난은 그가 지은 죄 때문이라고 한다(욥4-5장, 15장, 22장).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고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리면 다시 흥하리라”(욥22:23). 욥의 세 친구들이 욥의 고난을 단편적으로 보고 충고하고 있다.

우리는 이 장면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말씀(레마)에서 우리 고난의 차원을 생각하며 회개할 거리를 찾을 수 있다. 형제의 물건을 볼모 잡고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갈한 자에게 물을 마시우지 아니하고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않은 죄가 있지 않은가?(욥22:6-7). 권세 있는 자의 토지, 존귀한 자의 거주, 과부의 공수로 돌아감, 고아의 팔이 꺾임을 통해 자신의 고난이 온다(9-10). “이러므로 올무들이 너를 둘러 있고 두려움이 홀연히 너를 침범하며 어두움이 너로 보지 못하게 하고 창수가 너를 덮느니라”(욥22:11). 오늘 일어나는 우리 주위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부지런히 우리 자신의 죄과를 찾고 회개하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청하건대 너는 하나님의 입에서 교훈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22). 오늘 우리의 고난과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네가 무엇을 결정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치리라...죄 없는 자가 아니라도 건지시리니 네 손이 깨끗함으로 말미암아 건지심을 받으리라”(욥22:26,28,30).

존스 선교사는 1890년9월4일 제물포에 도착한 여 선교사 벵겔을 마중 나갔다가 그녀와 연인 사이가 되었고 1893년5월에 결혼했다.
존스 선교사는 1890년9월4일 제물포에 도착한 여 선교사 벵겔을 마중 나갔다가 그녀와 연인 사이가 되었고 1893년5월에 결혼했다.

이 문제를 신앙 안에서 해결책을 찾고 믿음으로 나간다. 조지 헤버 존스(1867-1919)와 벵겔(마가레타 J. 벵겔, 1869-1962)은 인천, 강화, 남양, 황해도 지역 선교의 어버이가 되었다. 존스가 최병헌을 통해 한글과 한문을 배웠고, 인천 제물포 교회(내리)에 2대 목사로 목회하였다. 1893년 정동에서 스크랜턴 목사의 주례로 벵겔과 결혼하였다. 벵겔은 로제타 셔우드와 함께 내한해서 이화학당에서 영어, 체조, 음악을 가르쳤다. 매일학교(영화학교)를 시작하여 김활란, 서은숙, 김애마, 김영의 등 수많은 여성 지도자를 길러냈다. 존스는 협성성경학원에 초대 원장을 역임하며 한국선교 25주년 기념사업을 총괄하였고 벵겔은 <한국의 매력>(1912)을 저술하였고, 존스는 디포우 대학과 보스턴 신학대학에서 선교학을 강의하면서 <한국 교회의 부흥(1917)>, <기독교와 세계 민주주의(1918)>책을 출판하며 한국을 알렸다. 이 부부는 조선의 암흑시대에 한 줄기 빛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자(使者), 구원의 도구요 축복의 통로가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조선은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우리도 이 어둠의 시대에 빛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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