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교회 쉼터인의 간증 (21)

임명희 목사 / 영등포 노숙인의 대부로 알려진 임명희 목사(광야교회 담임)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 합동신학대학원대학을 나오고 예장(합신) 광야교회 개척 후 34년째 목회하고 있으며, 교회 법인을 설립하여 무료급식소, 홈리스쉼터, 쪽방상담소, 돈키호테까페, 엘레오스치료원 사역을 이어오고 있다
임명희 목사 / 영등포 노숙인의 대부로 알려진 임명희 목사(광야교회 담임)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 합동신학대학원대학을 나오고 예장(합신) 광야교회 개척 후 34년째 목회하고 있으며, 교회 법인을 설립하여 무료급식소, 홈리스쉼터, 쪽방상담소, 돈키호테까페, 엘레오스치료원 사역을 이어오고 있다

저는 서울에서 1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친할머니의 심하게 잘못된 성격(입이 거칠고 남을 배려할 줄 모름)탓에 어머니께서 임신 기간 동안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셨습니다. 입덧도 심하게 하셔서 몸이 많이 야위셨습니다.

임신 중에 받은 과도한 스트레스는 태아에게 치명적입니다. 산모가 받은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태아에게 악영향을 미칩니다. 어머니로서는 견디기 힘든 시집살이였습니다. 시어머니로 인한 어머니의 겁과 두려움이 태중에 있던 제게도 밀려와서 어릴 때부터 저는 유난히 내성적이고 겁이 많은 아이로 자라게 되었습니다.

피부가 유난히 하얀데다가 외모까지 다소 이국적이어서 동네 아이들한테 놀림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린 제게는 마음에 못이 박히는 것과 같았습니다. 키는 큰데 몸이 약해서 힘은 없고, 성격 탓에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대부분 혼자 지냈습니다.

정서적인 문제는 신체적인 문제까지 야기시켜서 편식도 무척이나 심했습니다. 밥은 잘 안 먹고 빵, 과자, 콜라 같은 몸에 해로운 가공식품을 주로 먹었습니다. 몸은 허약해서 매년 감기는 단골손님이었고, 5살부터 알레르기성 기관지염과 아토피 피부병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여름에는 가려움증이 심해져서 팔꿈치 안쪽을 피가 나도록 긁어서 한여름에도 긴소매 웃옷을 입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겨울에는 기관지염으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침과 가래로 고생했습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서 약을 먹고 발랐는데 스테로이드라는 부작용이 심한 약이었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입니다.

박카스-D, 커피, 홍차, 콜라 등 카페인이 다량 함유된 음료수를 물먹듯 마셨습니다. 카페인은 다량 섭취할 경우 마약과 같은 기능을 합니다. 심신을 흥분상태에 놓이게 하면서 정서불안을 야기시킵니다. 저의 몸과 정신이 온전할 리가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초등학교 때 전학을 3번이나 했습니다. 울산-서울-여수-서울. 한참 말을 배울 나이에 사투리와 표준말로 인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말을 하면 애들이 놀려서 의사표현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6학년 때 말더듬는 친구와 가까이 지내면서 말까지 더듬어서 말에 대해서 심한 콤플렉스를 갖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고1때까지 매년 누군가로부터 놀림 받고 괴롭힘 당했습니다. "왕따"처럼 집단으로 따돌림 당하지는 않았지만 저에게는 치명적인 마음의 상처가 되었습니다.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서 끙끙대며 속앓이를 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나중에 심한 대인공포증과 우울증을 비롯한 여러 가지 마음의 병으로 변해서 인간관계에 많은 해악을 끼쳤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놀리거나 괴롭히거나 때릴 것 같은 두려움에 시달리곤 했습니다. 때문에 먼저 사람들에게 인사하거나 다가가는 일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무척이나 인사성이 없었고,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습니다. 열등감과 자격지심, 피해의식, 낮은 자존감, 완벽주의, 강박관념 등으로 고통 받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한 사람은 성인이 되면 대부분 폐인이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피해망상과 대인공포증 등으로 인해서 원만한 사회생활을 하기가 참 힘들게 됩니다. 오랫동안 억눌려 지낸 성격과 약물 부작용 등으로 인해서 가지고 있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약을 끊은 이후에는 금단증상으로 오랫동안 환각, 환청 등의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상반신의 1/3정도의 피부가 피와 진물이 나오도록 긁음으로 헐어서 여러 달 동안 제대로 움직이지도, 외출도 못하고 지낸 적도 있었습니다.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으로 총체적인 문제아였습니다.

저와 같은 이유로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군대 갔다가 4학년 2학기에 복학해서 2학년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전공인 독일어 수업이었는데 교수님께서 수업을 독일어로 진행하셨습니다. 첫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제게 쉬운 질문을 하셨는데 대답을 못했습니다. 가뜩이나 창피해서 혼났는데 수업 후에 잘 아는 후배 한 녀석이 제게 "4학년이 그것도 못하느냐" 고 했습니다.

순간 그 말이 제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면서 어릴 때 놀림 받고 괴롭힘 당했던 수치스러운 기억들이 물밀 듯이 밀려왔습니다. 마음이 너무나도 아파왔고, 정신이 너무나도 혼란스러웠습니다. 후배들이 저를 놀리고 괴롭히는 생각에 억눌려서 그 다음부터 수업을 빼먹기 시작했습니다. 1/3이상 결석한 후에 교수를 찾아가서 자초지종은 차마 말을 못하고 한 번만 봐달라고 했지만 어림도 없었습니다. 제 자신이 너무나도 미웠고, 죽도록 창피했습니다. 창피해서 누구에게 말도 못했습니다. 혼자만 끙끙 앓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해 저는 졸업을 못했습니다. 다음 해에도 같은 과목 첫 수업시간 후에 동일한 증상이 나타나서 수업을 빼먹다 졸업을 못했습니다.

저의 내적 상태는 마약 중독자의 그것과 비슷했습니다. 약, 카페인 음료, 가공식품 등에 함유된 유해물질이 오랫동안 체내에 축적되고, 그와 함께 잘못된 성격으로 인해서 정신 이상이 야기된 것입니다. 피부병으로 인해서 몸이 가려울 때가 많았고, 어릴 때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로 마음은 늘 억눌린 상태에서 여러 가지 마음의 병으로 괴로워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성경 말씀을 의지하고 기도하면서 참고 이겨내지 못했더라면 지금쯤 정신병원이나 요양원에서 비참한 삶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부모님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저의 상태에 대해서 거의 말을 안 하면서 지냈습니다. 사람이 어느 정도 아프면 엄살을 조금 부린다거나 아프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극도로 견디기 힘들 정도로 괴로우면 차마 말이 안 나옵니다. 그것을 견디는 과정에서 마음까지 억눌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어릴 때부터 참는 것이 몸에 배어있어서 웬만한 것은 다 참고 지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국 화병으로 발전해서 치유하는데 무척 힘들었습니다. 제 아토피 피부병의 근본 원인은 화병입니다. 피부를 통해서 화가 분출된 것이지요. 저의 내적인 상황이 말로는 도저히 표현이 안 되는 상황이었고, 말한다고 해서 당장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가끔 상태가 호전될 때도 있었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극도로 심한 감정의 기복, 정신적인 혼란, 가려움 등으로 인해서 무엇을 제대로 하거나 꾸준히 할 수 없었습니다. 저의 속마음도 모르는 사람들이 저의 행동만 보고 저를 꾸짖거나 나무라면 마음이 너무 아파서 남몰래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교회 기도실에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면서 기도했고 여러 해 동안 잠자리에 들면서 눈물로 베개를 적셨습니다. 잠자리에 들면서 하나님께, "눈감으면 영원히 눈뜨지 않게 해달라" 고 기도했고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하루도 어떻게 제 자신을 감당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에이리언 같은 괴물이 저를 쫓아다니면서 잡아먹으려고 하는 끔찍한 꿈을 여러 해 동안 꾸었습니다.

2009년 3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기도원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동안 할지도 모른 채 전날 밤 기도원에 가라는 말씀을 듣고 그 다음날 바로 짐 싸서 파주에 있는 순복음교회 오산리기도원으로 갔습니다. 두 달 후에 돈이 떨어졌습니다. 그때 아는 형제가 영등포에 있는 광야교회와 토마스 무료 급식소로 저를 인도했고, 거기 다니면서 끼니를 해결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될 수 있으면 안 가려고 했는데, 이틀 굶고 난 후에 어쩔 수 없이 가게 되었습니다.

이용자들 대부분이 노숙자고, 여름이라 냄새가 적잖이 났습니다. 저는 깨끗하고 깔끔한 것을 좋아하고 그렇게 사는데 처음에는 적응하기 좀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렇지 않게 되었습니다. 3개월 동안 무료급식소를 이용했습니다. 기도원에서 기도원 버스를 1시간 동안 타고 여의도에 가서 30분 동안 걸어서 영등포 무료급식소에 갔습니다. 돈이 없어서 말이죠. 한여름에 땀 뻘뻘 흘리면서 걸어갔고 장마 때는 비를 맞서면서 걸어갔습니다. 광야교회 무료급식소 자판기 커피가 단돈 백원인데, 그 백원이 없어서 커피를 못 마신 적이 부지기수였습니다. 두 곳에서 점심 한 끼 먹고 하루를 버텼습니다. 하루만 일해도 아껴 쓰면 기도원에서 1주일 정도 버틸 수 있는데 미련하게 무료 급식소에 다녔습니다. 이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노숙자들과 밑바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조금 더 잘 알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돈을 많이 벌게 되면 무료 급식 사업을 하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이를 위한 훈련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어느 날 점심 메뉴로 닭곰탕이 나왔습니다. 이런 메뉴는 드물게 나오는 메뉴입니다. 옆에 있는 노숙자에게 살점을 좀 덜어줬더니 제게 연신 고개를 숙이면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무척이나 짠했습니다. 당시 배는 고팠지만 은혜는 참 많이 받았습니다.

기도원 기도굴이 무척 좁아서 발을 뻗고 누울 수도 없었지만, 거기서 거의 대부분 지냈고 잠도 거의 대부분 거기서 잤습니다. 기도굴에서 기도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무척이나 좋았고 이를 통해서 은혜를 많이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죠. 1평도 안 되는 좁은 공간이지만 대저택 부럽지 않았습니다. 그 이전에 밥 굶은 적이 무척 많았습니다. 외국에서 돈 떨어져서 꼬박 이틀을 굶기도 했고요. 외국에서 돈 떨어져서 굶는 것은 국내에서 굶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기도원 생활을 어떻게 마무리짓게 되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무료 급식소에 가려고 기도원 버스 정류장에 혼자 서있는데 어느 자매님이 제 뒤로 오셨습니다. 그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분이 갑자기 제게 돈을 줘야겠다는 감동함이 생긴다고 하면서 제게 만원을 주셨습니다.

제가 땡전 한 푼 없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면서 정말 고맙다고 했더니 추가로 만원을 더 주셨습니다. 그날 외국인 목사님이 5천원을 주셨고 어느 형제가 3만원을 줬습니다. 땡전 한 푼 없다가 갑자기 하루에 5만 5천원이 생겼습니다. 그 이후 이래저래 돈이 생기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무료 급식소 생활을 마감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때에 기도원에서 하산하게 되었습니다. 3월부터 9월까지 6개월 동안 기도원 생활을 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2-3)"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목사) 의 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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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 부임한 영등포역 파출소장님의 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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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기도제목>

1) 주여! 군부 쿠테타로 시위하는 시민이 죽어가는 미얀마에 평화가 임하게 하시고 이런 혼란한 시기에 주의 복음이 증거 되는 계기가 되게 하옵소서!

2) 주여! 췌장암으로 투병중인 장현숙 집사님이 말씀을 영혼에 새김으로 확신가운데서 평강을 누리게 하옵소서!

3) 주여! 4명 미만의 적은 숫자지만 셀모임이 모임을 갖고 서로 돌아볼 수 있도록 셀리더들에게 힘을 주옵소서!

4) 주여! 죽었다고 소문 난 영등포 노숙문화재인 김오근형제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고 믿음을 갖게 하옵소서!

5) 주여! 우리의 예배, 급식, 기도, 전도, 섬김이 계속될 수 있도록 급식에 참여하는 노숙자들과 봉사자, 예배자, 전도자 및 직원들과 동네 주민들이 한 사람도 코로나 19에 전염되지 않도록 주의 손으로 지켜주옵소서!

6) 주여! 쪽방촌 복음화를 위한 1:1 돌봄 사역이 힘을 내도록 섬기는 도우미들에게 힘과 능력을 주옵소서! 그리하여 영접한 자들이 다 교회에 나오게 하옵소서!

7) 주여! 달팽이관에 이상이 있어 입원하신 김성희 권사님의 약해진 곳을 어루만져 강건하게 회복시켜 주옵소서!

8) 주여! 몸이 아파 고통과 아픔속에 있는 환자들을 불쌍히 여겨 치료의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문순열(턱관절),김은영(뇌결핵완치),김경철(폐쪽전이된부분항암치료),조봉희(척추암),김정숙(백혈암),박형선(대장암),최경진(척추협착증),박종용(후천성면역결핍증),이한나(치매와마귀역사),김춘란(심장),박은혜(간질),차용란(난소암),김도균(근육이영양증),방만순(왼쪽등뒤의혹),최정희(자궁암),유니스(난소암재발),고미순(맞은머리어지러움),진양숙(심장판막증),장현숙(췌장암),정숙혜(근육손실),안상덕(허리디스크),정종우(녹내장),임인순(뇌출혈),조두현(폐수술),조진기(설암),최봉환(척추디크스),임헌만(전립선암)등

9) 주여! 알콜과 방탕 중독자들 강희종,김주건,김오근,라만성,류진구,문경협,박정열,박종용,백창기,안상덕,안윤식, 이수경,이엉거,이은재,이태종,임송용호,오동원,윤종수,정힌진,최봉환,최성수,최세남,홍동흠 등을 말씀의 성령의 생수로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10) 주여! 강화도 북산 이야기 까페가 공원개발로 쫓겨나지 않도록 삶의 터전을 지켜 주옵소서!

11) 주여! 한광수 목사님이 국내에 유입 된 외국인을 대상으로, 이행남목사님이 서울에서, 류언근목사님이 진도에서 교회를 개척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옵소서!

12) 주여! 조시제 집사님이 한전 중부ceo의 경쟁에서 뽑힐 수 있도록 윗선의 결정권자들을 감동시켜 주셔서 은혜를 주옵소서!

13) 주여! 김준서 원장님의 서울 암 요양병원의 위기극복과 라위출장로님의 아세아 프로텍과 최석철집사님의 글로벌오로니아 식품회사와 백융의 회장님의 세인상사와 김천상집사님의 김피부과 의원과 구홍림대표의 우성염직과 이서복집사님의 학원사업과 김성경목사님의 성경통독선교회와 박사라집사님의 닥터김치료 사업과 서경희 집사님의 웨딩사업과 쪽방상담소의 김공장과 이미향 권사님의 찜질방 사업을 번창하게 하옵소서!

14) 주여!

1부 예배에 참석하는 최재철형제님이 회계사,세무사 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지혜와 건강과 기억력을 더하여 주옵소서!

15) 주여! 동성애 퀴어축제를 저지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서울시장에 당선되어 건전한 사회질서를 유지할 수 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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