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성이 영성을 잡아먹다

주욱중목사, 조은비전교회담임, 연세대학과법학과졸업, (주)대우근무, 장신대신대원(M.Div), 역서로는 [거룩한 죽음], [지성인을 위한 신앙 지침서] 등이 있다.
주욱중목사, 조은비전교회담임, 연세대학과법학과졸업, (주)대우근무, 장신대신대원(M.Div), 역서로는 [거룩한 죽음], [지성인을 위한 신앙 지침서] 등이 있다.

오래전 당시 정치학의 권위자인 L교수의 정치학 강의를 들었다. 고전적 정치 기술의 하나인 당근과 채찍”(zuckerbrot und peitsche) 이론을 설명하면서 채찍이란 독일어 파이체(peitsche)를 쉽게 기억하는 법을 이렇게 가르쳤다-“파이체를 빠른 속도로 반복하여 읽으면 파리채가 된다고- 평생 잊을 수 없는 기막힌 교수법이었다.

예수께서도 평생 한번 파이체를 잡으신 때가 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2:15), 성전의 장삿꾼들을 내쫓으신 때이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아야 하는데 “강도의 소굴이 되었기 때문이다(11:17).

 

이유1. 기도 vs 강도

강도는 폭행이나 협박으로 남의 재물이나 재산을 빼앗은 도둑을 뜻한다. 강도가 노리는 것은 금전적 이익이다. 성전의 핵심 가치(core value)기도’라는 영적 가치에 있는데 금전적 이익이라는 물질적 가치로 대체 되었기에 채찍을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영성보다 물성(物性)이 앞서는 가치의 전도(轉倒)가 성전의 타락을 가져왔고, 뒤집혀 있는 성전을 전복(顚覆)시키기 위해 파이체를 드신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교회가 물질화를 향해 치닫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다. 어느 순간 예배당 매매가 이상스럽지 않더니, 최근에는 경매로 넘어가는 예배당도 적지 않은게 현실이다. 예배당이 경매되다니....이보다 더 큰 신성모독이 어디있으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경매라는 돈의 힘에 속수무책이시라니...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예배당 경매는 앞으로 더욱 빈발하리라.

교회의 핵심가치인 영성이 물성으로 대체되는 순간 교회의 자본화(資本化)”는 시작되는데, 한국교회는 나름 오랜 자본화의 과정을 거쳐 왔다. 그 출발은 한국교회의 대표격인 Y교회가 아닐까? Y교회는 해방 직후인 194512월 일제 강점기의 종교적산(宗敎敵産) )인 천리교 중앙 포교당을 미군정으로부터 무상 양도 받은 후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교회로 급성장하였다. 당시 소수의 출옥성도들의 고문 후유증이 미처 아물기도 전에, 자신들의 신사참배에 대한 그 어떤 반성이나 회개도 없이, 마치 전리품을 나누 듯, 종교적산을 꿰찬 것이다.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의 기도보다 적산을 차지하는데 더 재빨랐던 것이다. 그 이후 Y교회는 해방이후 한국 개신교회의 모델이 되었고, 지금까지 많은 교회들에게 큰 영향을 끼쳐 왔다.

1985년 장로교신학대학원에 입학할 당시 주기철의 이름으로는 장학금이 전무(全無)해도, Y교회의 H목사 이름으로는 10여명씩 장학금을 전달했다. 살아있는 이를 기념하는 장학금이라니.... 이 얼마나 어색한 일인가-해방이후 40년이 지나도 주기철은 가난했고, H목사는 부요했다.

H목사는 1992년 어느 자리에서 일생의 짐이었던 우상숭배의 죄를 이제야 참회한다고 고백했다. 좀더 일찍 자신의 이름으로 전달한 장학금의 일부라도 순교자들의 이름으로 전달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하비콕스가 ()이 된 시장(市場)”에서 지적하듯이 Y교회 이후 한국 대형교회의 역사는 시장(市場)과 밀착되어 기업모델을 바탕으로 한 물질화의 길”을 걸어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며, 이같은 흐름이 한국교회의 주류를 이루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유2. 만민 vs 소굴

소굴이란 도적 따위와 같은 해를 끼치는 무리가 활동의 근거지로 삼고 있는 곳을 말한다. 은폐되고 폐쇄되었던”것이다. 이에 반해 만민개방성이 생명이다. 요한계시록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문은 동서남북 어디에나 열려있지 않은가? “만민을 향해 활짝 개방되어야 할 성전이 소굴처럼 은폐되고 폐쇄되었기 때문이다.

2천년전 예루살렘 성전이 소굴로 전락한 결정적 배경은 자신들의 독과점 구조를 공고히 함으로써 금전적 수익의 극대화를 도모한 정치-종교권력 간의 유착에 있지 않았던가? “독과점유착이란 불투명성과 폐쇄성은 성전을 소굴로 전락시킬 수 밖에 없었다. 영성이 아니라 물성을 추구할 때 나타나는 당연한 결과이리라.

Y교회를 다시 돌아보자. 자신들에게 돌아온 적산이란 엄청난 특혜는 미군정의 일방적인 호의에 기인한 것이다. 시혜자(施惠者)로서부터 독과점적 특혜를 누린 것이다. 여기서부터 교회는 정치권력의 단맛을 보았고, 그 이후 등장한 40여년의 독재정권들과의 유착을 통해 많은 특혜를 누려왔다. “특혜불투명하고 폐쇄적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만민을 위한 것은 결코 특혜가 될 수 없다.

오늘날 종교부지의 문제를 보라. 이 합법화된 독점적 특혜는 또 얼마나 매력적인가! 정치권력과의 유착은 눈치를 봐야 하지만 종교부지는 보란 듯이 그 혜택을 홀로 누릴 수 있다-돈만 있으면 말이다! 자본의 힘으로 차지한 종교부지의 독점적 지위를 당연한 듯 누리는 오늘의 한국 교회는 앞으로 더욱 소굴화 될 위험이 크지 않겠는가?

"소굴"이 갖는 불투명성과 폐쇄성의 또 다른 폐해는 교회 재정의 불투명한 집행목회의 세습이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교회안의 금전 스캔들이나 요란한 세습에 관한 소모적 논쟁들은 오늘의 한국교회가 만민을 위한 광장이 아닌 특정소수의 이익을 실현하는 소굴로 전락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칼 포퍼(K.R.Popper)가 지적한 열린사회와 그 적들로 가는데 교회가 빠질 수 없으니 이 얼마나 씁쓸한 일인가?

예수께서 파이체를 드신 성전청결일이 코앞이다. 예수의 채찍을 한국교회가 피해갈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해방직후 20여명의 출옥 성도들 중 가장 나이가 어렸던 20대의 조수옥 전도사. 그는 일제 감옥안의 생활을 이렇게 묘사했다. “마룻바닥에 배설물이 그대로 있었고, 구더기가 꾸역꾸역 기어 나왔다..... 변기통 안에서 사는 것과 같았다”....그녀는 변기통 같은 감옥생활 중에 네가지를 깨달았다고 한다. “(1)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2)고난은 은혜다. (3)고아를 돌봐야 한다. (4)돈은 모든 악의 뿌리이다.” 그녀가 20대의 꽃같은 나이에 변기통 안의 삶을 자청한 이유는 무엇인가? “신사(神社)라는 우상 앞에 절할 수 없다는 결단 때문이라고 그녀는 대답했다.

오늘날 임박한 예수의 파이체를 피해갈 길이 여기, 곧 조수옥 전도사의 깨달음과 결단에 있지 않겠는가? 오늘날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물신(物神)의 우상 앞에 결코 절 할 수 없다는 신앙적 결단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깨달음 속에 한국교회의 살 길이 있지 않겠는가? 이같은 결단과 깨달음이 나의 작은 가슴 속에서부터 먼저 이루어지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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