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섞으며, 봄비로/생기없는 뿌리를 깨운다.”- T.S 엘리엣의 “황무지”란 시의 첫 구절이다. 그의 주술(呪術) 때문이런가 한국 현대사 속에는 유독 잔인한 일들이 많았다. 제주 4.3 사건(1948), 4.19 혁명(1960), 4.16 세월호 사건(2014) 등... 어디 그뿐이랴 20세기 교회사 속에서도 4월은 유독 잔인했다.
“잔인한 달” , 1945년 4월 9일
D. 본회퍼 목사는 20세기의 천재적 신학자 중의 한사람이다. 21살에 신학박사 학위를, 23살에 교수 자격증까지 취득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의 위대함은 신학적 업적을 넘어 목회자로 걸어간 그의 발자취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히틀러에 폭거에 맞서 소수의 고백교회를 이끌고 온몸으로 끝까지 저항하였다, 영국에서 잠시 목회할 때, 그리고 미국의 유니온 신학교에서 강의할 때, 얼마든지 고난을 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는 마다하고 고난의 현장 가운데인 독일 조국으로 돌아왔다. “자유로운 나라들에서 발전할 자신의 수많은 가능성을 완전히 포기하고 우울한 종살이와 암울한 미래로 돌아온” 것이다. 그 언젠가 독일교회가 회복되는 날, 고난의 현장을 외면한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의 이런 “역사 앞에서”의 각성이 결국 그를 39세의 아까운 나이에 순교의 제물로 자신을 바치게 한 것이다.
"잔인한 달", 1944년 4월 21일
주기철 목사는 1939년 7월 농우회 사건으로 처음 투옥된 후, 1944년 4월 21일 순교할 때까지 총 7 차례에 걸쳐 5년의 수형생활을 하였다. 그의 신앙적 투쟁은 신사참배를 끝까지 관철시키고자 했던 일제의 집요한 회유와 협박에 대한 장기간의 투쟁이었다. 수많은 각계의 민족 지도자들이 연이어 변절함에도 끝까지 신앙의 절개를 지킴으로써, 한국교회는 물론 민족적 자긍심을 높힌 값비싼 죽음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순교의 동인(動因)은 무엇일까? 본회퍼가 “역사 앞에서의 각성”이라면, 주기철은 “종말 앞에서의 신앙”이 아니었을까?- 그의 최후의 설교인 “일사각오”를 통해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죽음”이란 “개인의 종말”을 넘어선 그의 단단한 각오는 20세기판 하나님을 향한 단심가(丹心歌)였으리라.
“잃어버린 유산”
오늘날 한국의 교회는 저들의 찬란한 신앙유산을 잘 이어받고 있는 것일까?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며 한국의 교회는 공산주의로부터 큰 피해를 입고, 지금까지도 레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감옥 안에 갇혀 “역사 앞에서” 바로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노동과 자본의 가치가 왜곡되어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하여 교회의 영향력은 지극히 미미하다. 레드 콤플렉스로 노동과 자본에 대한 복음적-역사적 지평을 잃어버리고 “과소평가된 노동문제”와 “과잉 평가된 자본의 횡포”(예컨대 부동산 투기 등)를 외면할 때가 많다. 복음은 대접과 같고 이념은 간장종지에 불과한데, 간장종지 안으로 대접을 넣으려고 한다. “역사 앞에서”라는 신앙의 지평을 상실한 것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주기철이 품었던 복음적 종말신앙도 해방 이후 난무한 이단과 사이비 신앙으로 오염되지 않았던가?-온갖 사이비와 이단의 유사 신앙들이 잘못된 종말론에 기댄 탓이다. 이와같이 한국의 교회는 4월의 찬란한 신앙 유산들을 상실한 채로, 스스로를 부요한 자로 착각하며, 가난하고 헐벗은 가운데 처해있는 것은 아닐까-라오디아교회처럼!(계3:17).
“회복을 위하여”
“순교”는 상황의 산물이기도 하기에 누구나 순교할 수 없다. 그러나 순교의 내적 동력인 “순교적 신앙”은 상황을 초월하기에 누구나 가질 수 있고 또 가져야 할 것이다. 태평성대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순교적 신앙”으로 무장하는 것이요, “순교적 신앙”이란 “역사 앞에서 – 종말 앞에서 스스로를 올바르게 세우는 일”이 아니겠는가?
본회퍼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디트리히 본회퍼-그의 형제들 가운데 서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증인!”. 죽었지만 오히려 살아있는 본회퍼의 이같은 불멸의 신앙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가 평생 마음속에 품고 살았던 그의 이같은 신앙적 화두에 있지 않았을까-“오늘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순간 저들의 찬란한 신앙유산을 회복하는 길이 우리들에게도 열리지 않겠는가
지금부터 꼭 76년 전 오늘, 플로센뷔르크에서 발가벗겨진 몸으로 순교한-아니 그의 묘비명대로 오늘도 살아있는-본회퍼가 한국교회를 향해 잔인하게 묻고 있다.
“오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