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성찬기 무료 나눔의 꿈을 부족함 없이 채워주시는 하나님

편집자 주한국교회 내의 목회 환경이 변화되면서 이제는 교회 재정에 사례비를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다른 일을 하면서 목회를 하는 목회자들이 많이 생겨났다. 하지만 단순히 생계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목회적 사명을 갖고 일하는 목회자들이 많다. 우리는 그분들을 일하는 목회자들(일목)’이라고 부른다. 현재 페이스북 <일하는 목회자들> 그룹에는 약 만 명의 멤버가 가입됐다.

오늘은 열일곱 번째 시간으로 제주에서 목공을 통해 나무성찬기를 제작하는 최광순 목사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을 나와 감리교 목회자로 살아온 최광순 목사는 2000년대 초반에는 영상목회로 시대를 앞섰고, 2010년 무렵에는 건축하는 목회자로 살아왔으며, 2020년 무렵부터는 나무성찬기를 제작하는 목회자로 알려지고 있다.

최광순 목사는 목원대학교신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2000년대 초반 대전지역에서 영상예배로 세미나를 주도하는 등 앞섰으며, 이후 건축 및 교회 리모델링, 목공 등의 일로 일목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최광순 목사는 목원대학교신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2000년대 초반 대전지역에서 영상예배로 세미나를 주도하는 등 앞섰으며, 이후 건축 및 교회 리모델링, 목공 등의 일로 일목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Q1. 예전에 자립하는 교회에서 목회하다가 다시 미자립교회로 이임하면서 일을 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그렇게 해서 생긴 수익을 교회에 헌금하면서 교회가 넉넉해지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쉽지 않은 결정인데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었는가?

A. 자립교회에서 미자립교회로 이사하는 날 후배 목사에게 목사님 왜 그렇게 하셨어요?”하는 전화가 왔다. 그때 나의 대답은 예수님께서 왜 하늘 보좌를 뒤로 하고 왜 이 땅에 오셨나? 십자가 지시기 위함이 아닌가? 목사가 정말 목사라면 자기의 좋은 환경을 내려놓고 가장 안 좋은 환경으로 가봐야 되지 않겠는가?”라고 말을 했더니 더 이상 말을 못 했다.

 

Q2. 자립교회 있다가 미자립교회로 갈 때 아무래도 생활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그 후 어떻게 되었나?

A. 미자립 교회 가겠다니까 처음에 그 교회 교인들이 못 받겠다고 말했다. 자녀가 4명이나 돼서 생활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는 수 없이 수요예배 때 말씀을 전했더니 끝나고서 다시 오라고 하는 것이다. 선교적 약속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목공 기술이 있어서 목공으로 부수입을 올리기 시작했다. 부수입이 교회에서 주는 것보다 몇 배는 많았다. 그렇게 생활이 안정이 되니까 목회도 함께 재밌어졌다. 그렇게 나도 목공으로 얻은 수입에 대해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하니까 성도들도 헌금을 더욱 많이 하게 됐다. 그러면서 교회가 1년 만에 자립교회가 된 것이다.

 

Q3. 목사님이 일부러 미자립교회를 선택하고 또 일목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가족들도 상당히 고민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사모님과 자녀들을 어떻게 설득했고 동의했는가?

A. 자녀들은 아빠가 가는 길을 신뢰했다. 물론 아내도 나를 믿었고 동의를 했다. 그런데 자립교회에서 미자립교회로 결정하는데 1년이 걸렸다. 아내가 동의는 했지만 실제로 결정하기까지 마음에 고통이 있었다. 하지만 새벽에 기도를 하고 확신을 얻어 이제는 갈 수 있겠다고 결정을 하니까 바로 갈 수 있는 미자립교회가 소개됐다. 그렇게 이전을 하고 일을 하면서 물질이 풍요로워지면서 가족들의 인정을 받았다. 그러니까 가족들은 어떤 선택을 하든지 하나님이 채워주신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Q4. 목사님이 일 하면서 하나님이 채워주는 모습이 굉장히 선하고 아름답게 보이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목공이라는 목사님만의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어떻게 그런 역량을 갖출 수 있었나?

A. 2010년 경 가까이에 있는 목사님이 같이 공부하자. 박사학위 공부하자는 것이다. 박사학위를 받는 이유는 목회자가 더 배워야 하는 것도 있지만, 언젠가는 다른 교회를 가야 하는데 교회들이 요구하는 스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제안이었지만 거절하고 나서 건축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이제 사람들이 나에게 말하기를 너는 기술이 있으니까 뭐든지 할 수 있잖아라고 말한다. 지난 10년 간 목공을 익히면서 엄청난 투자를 했다. 망치질하고 드릴 하고 나무를 자르고 힘든 과정이었다. 결국 다른 사람들 보기에 최고의 수준까지 올라섰다. 목공 기술 있으니까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Q5. 목공일로만 목회 사역과 가정을 꾸리고 네 자녀를 키우는 일이 가능했나?

A. 그렇다. 목공을 하면서 판로가 중요했다. 그래서 페이스북 같은 SNS 활동을 통해 판매 및 홍보에도 최선을 다했다. 지금은 성찬기나 십자가 제작을 하지만 전에 건축현장에서 일할 때는 한 달 수익이 억대에 달할 때도 있었기 때문에 돈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한 달 수익이 웬만한 직장인 못지않게 벌고 있다.

 

Q6. 목사님은 나무성찬기 나눔 운동도 펼치고 있다. 굉장히 인상적인데 시작하게 된 계기와 특별히 경험하는 은혜는 무엇인가?

A. 사실 나무성찬기는 하나의 작품이다. 공장처럼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이 아니다. 세트로 구입하면 몇십만 원이 된다. 많은 목사님들이 나무 성찬기를 보면 꼭 사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한국교회 80%가 넘는 작은교회 목회자들에게 몇십 만원 하는 나무성찬기는 그림의 떡이다. 그래서 이 분들에게는 나눔을 하고자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나무성찬기를 제작하다 보면 약간의 하자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것들을 따로 모아다가 다시 손질을 해서 나눈다. 나눔을 할 때마다 받은 분들이 너무 좋아한다. 어떤 목회자는 성찬기가 없어서 성찬하지 못했는데, 나무성찬기를 받고 성찬을 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한다. 물론 성찬기를 나누면서 속상한 일도 생긴다. 성찬기를 잘 받으셨는지 인증샷을 부탁드리지만, 많은 분들이 받은 후에 아무런 연락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성경에서도 돌아와 감사한 자가 열 명 중 한 명뿐이었음을 생각하며 그것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또 어디든 약간의 흠이 있는 성찬기를 다시 손질해서 보내고 있는데, 택배를 보내면서 발송장을 붙이다 보면 누구에게 어떤 물건이 가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면 마음에 들지 않는 성찬기를 받은 분들이 서운함을 표하는 전화를 할 때는 보내 놓고서 미안할 때가 많다. 현재까지 한 300여 교회에 무료 나눔을 했는데 그중에서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50 교회 정도라도 주님의 은혜라고 생각하며 감사하고 있다.

Q7. 나무성찬기의 장점은 무엇인가?

A. 보통 성찬기는 금속이 많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성찬식 때 성찬기가 부딪히는 쇳소리가 듣기 싫어서 나무성찬기를 찾고 있었다고 말했다. 나무성찬기로 하면 성도들이 좋아한다. 대부분의 성찬기는 성찬례가 끝나면 성찬상 안에 넣어두지만 나무성찬기는 10명 중 9명이 그대로 성찬상 위에 올려놓는다. 교인들이 반응이 좋다. 금속성찬기를 사용할 때는 마음이 차가워진다면 나무 성찬기로 성찬을 나눌 때는 따듯한 마음이 전해진다고 말한다.

 

Q8. 나무성찬기는 관리가 힘들지 않은가?

A. 물론 나무성찬기는 관리가 힘들다. 그래서 성찬기 관리법이 다르다. 나무가 물기를 먹으면 수명이 짧아진다. 그러므로 성찬이 끝나면 흐르는 물에 행군 후 마른행주로 바로 닦아줘야 한다. 내구성도 금속 성찬기보다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나무 성찬기를 쓰는 목회자들은 성찬기를 서재에 올려놓는 경우가 많다. 성찬기 세트로 인해 나무향이 목양실에 가득 채워진다. 나무성찬기는 관리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1년 안에 크랙이 나는 것은 교환해주고 있다.

Q9. 목사님은 성찬기 외에도 나무 십자가를 통해서 많은 분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십자가를 만들면서 느끼는 은혜는 무엇인가?

A. 솔직하게 십자가를 제작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찬기를 주문하시는 분들이 십자가도 같이 좀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그때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이미 십자가를 만드시는 분들이 있어서 그분들의 영역을 침범하고 싶지 않았다. 십자가 단순하지만 만들기 힘들다. 그런데 이왕 만들 바에야 좀 구별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남들이 사용하지 않는 목재로 십자가를 만들었다. 다릅나무, 흑단나무, 장미나무 등 정형화되지 않은 나무로 십자가를 만들었다. 그런 나무로 십자가를 만드니 사람들이 더욱 좋아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제주도에 많은 감귤나무를 봤다. 감귤나무는 주로 땔감으로만 사용했다. 사실 감귤나무는 굴곡이 심해서 만들기가 작품을 만드는 목재로 부적합했다. 그만큼 만들기도 까다롭다.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양도 너무 적다. 만들다 보면 때로는 힘들고 짜증 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감귤나무 십자가를 만드니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지금까지 감귤나무 십자가가 약 1000여 개 나갔다. 감귤나무 십자가는 비율도 잘 안 맞고 삐딱삐딱하다. 하지만 그 모습이 은혜가 된 것이다. 감귤나무 십자가는 마치 굴곡진 우리네 모습 같아 더욱 마음에 다가오는 듯하다.

Q10. 목공 하다가 위험한 순간은 없었는가?

A. 작업을 하다가 손가락 3개가 절단 위기까지 갔다. 손을 많이 다쳤다. 그저께도 일하다 다쳤다. 통나무가 가슴을 쳤다. 10초 동안 숨을 못 쉴 정도여서 이러다 죽겠다 싶었다. 다치는 일이 많다. 목공일 하기 전에는 건축 현장에서도 많이 다쳤다. 온몸에 상처투성이다.

 

Q11. 앞으로의 목회 계획은 있는가?

A. 사실 현재 하는 목공도 계속 장담할 수는 없다. 어떤 일이든 때와 주기가 있다. 젊을 때 영상예배에 나름 앞섰다. 영상예배로 자립을 했고 세미나도 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후에는 건축을 했다. 86건 정도 한 것으로 기억된다. 끊임없이 일하는 목회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5년 안에 나무성찬기 시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무성찬기를 가르쳐서 일을 했으면 좋겠다. 같이 먹고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앞으로 또 10년 후 나의 변화된 모습은 아직 장담하지 못한다.

 

Q12. 자비량으로 목회할 때 교회의 재정구조는 어떻게 운영됐는가?

A. 건축을 할 때는 본교회에서 사례비 중 본봉만 받았다. 그러니 교회가 자유로워졌다. 목회자가 자비량으로 목회를 하겠다니까 교회의 부담이 없어진 거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선교비로 나눈 것이 5~8억 정도 되는 듯하다. 성찬기는 1300점 정도 무료로 나눴다. 선교를 하고자 하면 하나님이 채워주신다. 10개를 나누면 얼마 가지 않아서 또다시 2~3개 주문이 들어온다. 2개 주문이 나머지 8개를 세이브한다. 나누면 하나님이 채워주신다.

 

Q13. 미래세대의 목회 모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나의 일은 미래 목회와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전도해도 전도되지 않는 시대가 온다. 듣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일을 하지 않으면 목회를 할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자비량으로 목회를 하여야만 사역을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목회를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작은교회 목회자들은 열정과 승리의식을 잃지 말아야 한다. 대형교회도 성도들이 예전과 같은 자세로 신앙생활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 가운데 작은교회들이 살 수 있는 것은 성찬을 통한 예배의 차별화라고 생각한다.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마음과 그 감동을 나눠야한다. 특히 일목들은 생존을 위한 목회가 아니라 마지막 시대 교회의 사명을 위해서 목회 한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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