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266)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78)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KC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KC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아나윔)의 소원(타아와트)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리밤)을 준비하시며(타킨)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타크쉬브 오즈네카)”(10:17).

선거철만 되면 우리 사회는 두 진영으로 극단적으로 나뉘어 진보와 보수의 이념 논쟁과 정쟁(政爭)에 나뉘어서 우리는 혼란과 혼돈의 세상을 보게 된다. 인간 세상과 나라는 결국 평화가 없는 곳임을 더욱 확인하게 되고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동경하며 유토피아, 메시아 왕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임을 알게 된다. 시편 10편은 알파벳 시(라마-타우)로서 시편 9편과 짝을 이뤄서 탄식시의 유형을 잘 보여준다. “여호와여 어찌하여(라마 아도나이) 멀리 서시며(타아모드 베라호크) 어찌하여 환난 때에(레이토 바짜라) 숨으시나이까(타에림)”(1).

오늘의 현실은 우리가 괴로워하며 탄식하는 상황이다. 경제적으로 고물가와 인플레이션 현상과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말미암아 힘든 세상을 살고 있다. 이러한 때에 시편 10편 기자는 악인이 압박하고 꾀를 부려서 덫을 놓고, 자기 욕심을 자랑하고 탐욕을 부리며 하나님을 배반하는 상태가 되어 교만한 얼굴로 하나님이 없는 사상을 말한다고 지적한다(2-4). “그가 그의 마음에(베리보)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샤카흐) 그의 얼굴을 가리셨으니(히스티르)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발 라하 라테짜아흐) 하나이다”(11). 시편기자는 가난한 자, 고아, 외로운 자, 겸손한 자, 압제 당하는 자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소원을 들어주시는 하나님임을 강조한다(12, 14, 17, 18).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쿠마)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네사) 가난한 자들을(아나윔) 잊지 마옵소서(알 티쉬카흐)”(12). 성경은 약자 보호법과 배려를 강조하며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준다. 시편은 그것을 잘 보여주며 겸손하게 주님을 바라며 기도하기를 기다리신다(17). “고아(야톰)와 압제 당하는 자(다크)를 위하여 심판하사(리쉬포트) 세상에 속한 자(민 하아레츠)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이다”(18).

고통당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돌보심과 의로우심을 의심하며 고난이 깊어갈수록 멀리 계신 하나님을 느끼며 하나님이 잊으시고 얼굴을 가리셨다고 탄식하고 있다(11). 이러한 탄식은 오늘도 우리들 사이에 계속 되고 있다. 하나님이 경건한 사람들을 택하여 언약을 맺으시고 당신의 의로움을 가지고 보상하신다. 또 우리를 탄식에서 감사와 찬양의 현실로 바꾸신다(37, 73). 악인들의 온갖 나쁜 행태들을 보여주며 그들의 결국은 비참하게 끝나게 된다는 것을 암시하며 말한다. “악인의 팔을(제로아 라샤) 꺾으소서(쉐보르) 악한 자의 악을 더 이상 찾아낼 수 없을 때까지 찾으소서(티드로쉬)”(15).

우리는 오늘도 믿음을 가지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어려운 현실을 견디고 참으며 십자가의 고난 길을 묵묵히 가게 된다.

이러한 삶을 살아간 초기 한국 선교사들은 양화진에 묻혀서 선교의 빛을 발하고 있다. 조지 H. (G. H. Rue, 유제한, 1889-1993) 박사는 미국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태어나서 아버지 루와 어머니 엘리자베스 나이트 사이에 자랐고, 캘리포니아 로마린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2957일 조선에 입국하여 순안 병원 병원장에 취임한다. 이 순안 병원은 1908924일 평안남도 순안에 미국 동료 선교사 노설 박사가 설립한 병원으로서 조지 루 박사가 취임한 후 조선 총독부에 정식 병원으로 인가를 받았다. 이 후 유제한 박사는 한국 이름으로 1931년 서울 소공동 2층에 집을 마련하고 진료활동을 하다가 11월 인사동으로 이전하여 경성요양의원을 개원하였다. 그것이 바로 서울 위생 병원의 전신이 되었다.

유제한 박사 부부
유제한 박사 부부

그는 1948년 대한민국이 수립되면서 이승만 대통령의 주치의로 위촉되었고 그 해 가을부터는 미국 대사관 직원과 재한 외국인 건강관리 의사로 위촉받았다. 6.25전쟁과 1.4후퇴의 전란 중에 유제한 박사는 부산으로 피난을 와서 서구 부용동에 경남연합임시 산원을 열고 유엔 원조처에 지원을 받았다. 그 후에 부산에 수천 명 환자를 태우고 제주 성산포에 임시 병원을 열어 환자 의료를 하였다. 유제한 박사는 1921년 결혼한 메이 벨 에임스와 결혼하였는데 경성요양병원을 설립하던 해에 아내를 잃고 지금의 한강변 양화진에 묻게 되었다. 그 후에 조선에서 추방되어 미국에서 1946년 유은혜(젤다 그레이스 레아)와 재혼하여 한국에 돌아와서 고아원과 입양사업, 간호학교 등 선교 의료 활동을 펼치었다. 유제한 박사는 32년간의 의료선교사 직무를 마치고 1967년 명예 퇴임을 하고 워싱턴 주 북쪽 멜로우 스톤 섬의 작을 마을 노드랜드에서 거주하다가 19931118일 오후 94세 나이로 소천하였다. 선교사의 삶은 이처럼 숭고하고 아름다운 삶임을 알게 된다.

지혜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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