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265)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77)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KC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KC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공의(베체데크)로 세계(테벨)를 심판하심이여(웨 후 이쉬포트) 정직으로(베메샤림) 만민에게(레우임) 판결을(야딘) 내리시리로다”(9:8).

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으로 경제공황이 오는 때이다. 정권은 바뀌어서 새로운 희망으로 사람들이 낙관하는 분위기이지만 팬데믹의 재앙은 짙게 깔려서 안개를 헤치고 나오기가 아주 힘든 상태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유가가 오르고 물가가 오르면서 서민 경제는 더욱 어려운 형편이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을 바라며 기적을 바라는 삶,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요데에 쉠메카)는 주를 의지하오리니(이브테흐 베카)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도르쉐이카 아도나이)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로 아쟈브타) ”(9:10). 하나님을 찾는 자들은 먼저 주의 이름을 아는 자라고 말한다. 주를 찾는 자들은 하나님이 그를 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세상은 어둠의 권세에 이끌리어 혼돈과 혼란의 와중에서 어디로 갈지 몰라서 헤매는 형국이다.

시편의 세계에서 알파벳 시, 지혜와 토라의 시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서 고난의 위기를 극복하는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고 암송을 통한 정신적 고통과 심리적인 난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바른 생각의 단초(端初)를 제공한다. 시편 9-10편은 한 단위의 알파벳 시편으로서 9편에서는 알렛-카프까지, 10편에서는 라멕에서 타우까지 시편을 구성한다. 전반부(9)는 찬양시로서 구성되고 후반부(10)는 탄식시로 구성되어 어찌하여’(라마, Why) 나를 버리십니까? 라는 탄식으로 시작하는 시구에서 인생의 비극적 고뇌를 보게 한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타오모드 베라호크)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타에림 레이토트 바차라)”(10:1). 찬양의 서론과 결론이, 탄식의 삶의 과정에 펼쳐지더라고 하나님의 구원을 잊지 말라는 시임을 강조한다.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오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아사프라)”(9:1, 알렛). 표제어가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뭇랍벤에 맞춘 노래이다. “이방 나라들을 책망하시고(가알타 고임) 악인을 멸하시며(아바드타 라샤)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지우셨나이다(세맘 마히타 레오람 와에드)”(9:5). 이방 나라들, 하나님을 모르는 교만한 사람들의 나라들은 멸망하게 되고 악인들은 승리하지 못하고 사라짐을 말하고 있다. “여호와여 일어나사(쿠마 아도나이) 인생으로(에노쉬) 승리를 얻게 못하게 하시며(알 야오즈) 이방 나라들이(고임) 주 앞에서(알 파네이카) 심판을 받게 하소서(이샤페투)”(9:19, 코프). 결국 시온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선포하게 될 것이다(9:11).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9:14). 인생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시편기자의 고백은 오늘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시구이다. 열국 중에 의인은 타문화권의 선교를 감당하며 하나님의 선교에 도구가 된 분들일 것이다.

한국의 성령 대 부흥 운동의 불씨를 일으킨 로버트 하디(Robert A. Hardie, 1865-1949, 하리영) 선교사는 무디의 설교를 듣고 감동받았고, 학교 선배인 제임스 게일 선교사의 간증을 듣고 선교사로 가기로 결심한다. 1887년 켈리와 결혼한 하디는 캐나다 토론토 의과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선교사로 나선다. 그는 1899년 개성에다 병원을 설립하고 선교 활동을 하면서 성령 운동의 불씨를 지피게 된다. 그는 협성신학교 교장, 피어선 성경학교 교장을 역임하며 신학 교육에도 힘썼던 인물이었다.

하디는 평양에서 중국 감리교회의 화이트 선교사를 초청하여 사경회를 열었던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 때에 하디 선교사는 자신의 교만을 공개적으로 회개함으로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그 회개 운동은 1907년 평양 성령 대부흥 운동으로 이어졌다.

1903년  원산대각성 운동을 일으킨 하디선교사와 원산교회
1903년 원산대각성 운동을 일으킨 하디선교사와 원산교회

하지만 고난의 골짜기를 깊었는지, 하디의 셋째 딸 마리는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잃었고, 또 넷째 딸은 마거릿은 6세에 소천하여 둘 다 양화진에 묻혀있다. 두 딸 묘비에는 하디 선교사의 영적 대각성운동 기념비와 함께 하고 있다. 하디는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의과대학을 다니면서 대학생 선교 자원 운동에 영향을 받고 선교사로 지원했다. 그는 1890년 한국에 선교사로 입국하여 교파 소속 없이 서울과 부산, 원산 등지에서 의료 활동을 하였다.

그는 대학생 선교회에서 보내는 선교비가 끊겨서 귀국할 형편에서 남감리교회의 도움으로 선교를 계속하며 1903년 여름, 최초의 원산 부흥회를 일으켜서 한국의 성령의 불을 일으키는 불쏘시개로 사용된다. 그는 윤승근을 개종시키었고, 회개의 열매가 조선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오늘도 원산 부흥회와 같은 회개와 성령 체험의 불길이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서 갱생의 역사가 일어나야 하리라 보며 새 하디의 손길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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