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렐드대표, 등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렐드대표, 등

세계적인 신학자 화울러 교수는 심리학자인 쟝 피아제의 이론과 윤리학 교수인 로렌스 콜벅의 이론을 기초해서 신앙이란 6단계로 성장해 간다는 신학이론을 발표했다.

1단계는 원초적 단계로서 징계와 벌을 피하는 방식으로 지옥에 가지 않으려고 신앙생활을 하는 단계, 2단계는 주거니 받거니 하는 단계로 물질적인 혜택이나 물리적 혜택을 받는 것이 목표로서 교회에 가면 무엇인가 얻을 수 있다는 이득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단계, 3단계는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애정을 받는 단계로 자기 위치를 확인 받기 위해 신앙생활하는 것, 4단계는 법을 지킨다는 의식의 단계로 율법적인 신앙의 단계, 5단계는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해서 행동하는 단계로 하나님과의 계약을 중요하게 여기는 신앙생활하는 단계, 6단계는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과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단계로 이상적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을 말해주는 단계로 나누었다.

화울러 교수는 신앙의 단계를 나누면서 말하기를 대부분의 성도들이 1단계에서 4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하나님과 계약된 관계라든지,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고 한다.

건물을 관리하는 소방사가 소방점검하듯이 우리는 자신의 신앙 단계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영적인 수준이 어디까지 왔으며 어디에서 멈춰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잡던 어부이다. 주님이 베드로를 부르실 때에 너는 장차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고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시몬이라는 애칭을 지어주셨다. 시몬이라는 이름은 반석이라는 뜻이다. 폼잡고 제자들의 우두머리로 인정받고 살던 리더가 주님을 배반하고 다시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 잡는 어부로 돌아왔다.

부활하신 주님이 갈릴리에서 다시 어부로 전락한 제자들에게 묻는다. 애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없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교훈이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왜 갈릴리 바다에 오셨을까? 많은 물고기를 잡게 하기 위해서 오신 것일까?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을 경험했다면, 그 속에는 반드시 주님의 목적이 있다. 예수님이 베푸신 기적의 의미와 목적을 알아야 한다.

갈릴리 해변은 제자들과 예수님과 많은 추억이 담겨져 있던 곳이다. 그 해변에서 함께 식사하며 제자들의 마음을 위로하셨다. 예수님은 위로하시는 분이다.

예수님은 너희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느냐? 내가 너희들에게 어떻게 했는데?라고 책망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밥상을 마련해서 밤새도록 허기진 배를 채워주셨다. 식사를 한 후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셨다. 부끄러움과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지냈던 베드로에게 세 가지 질문을 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질문을 했는가예수님의 질문속에는 지난날 네가 실수하고 나를 부인하고, 제자의 사명을 버린것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베드로 네가 사랑이 식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랑이 식었기 때문에 너는 나를 부인했고, 나를 버렸고, 나를 포기한 것이라고 주님은 진단한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식으면, 예수님도 포기하고 버리고 부인하게 된다. 믿음이 좋았던 사람도 오늘 사랑이 부족하면 누구든지 하나님과 멀어질 수 있다는 경고이다.

율법사가 주님께 질문했다.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능력받아라, 축복받아라, 기도하라가 첫째라고 하지 않았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고귀한 진리이다. 베드로에게 이 사랑의 끈이 약했기 때문에 넘어진 것으로 진단했다. 이 사랑의 끈을 회복시키기 위해 부활하신 주님이 친히 갈릴리 바닷가로 오신 것이다.

베드로에게 물으실 때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에는 중요한 단서가 있다. 이 질문은 현재성으로 예수님이 물으신 것이다. 베드로에게 과거가 아니라 지금 현재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잘못을 저지른다. 은혜를 받았다가 잃어버리기도 하고, 순종을 잘하다가도 들이 받기도 하고, 말씀대로 살다가 세상으로 갈 수 도 있다.

그러나 주님은 동일하게 묻는다. 오늘 이 자리에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과거에 사랑했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다. 지금,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사랑하느냐 묻는 것이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21:15) (아가파스 메 플레온 투톤)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원뜻을 보면 땅에 속한 것들이라는 뜻이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뜻이다. 이것들이 무엇인가? 지금 잡아온 물고기들을 말한다. 지금 잡아온 물고기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었다.

주님은 늘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느냐고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묻는다. 물고기가 없어도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라고 계신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했습니다. 물고기가 없어도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베드로는 알았다. 그리고 주님께 자신의 현재의 마음을 고백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양을 먹이라”(15)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양을 먹이라는 것이다.

베드로는 이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다락방에서 기도하다가 성령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초대교회를 강력하게 믿음으로 세웠다. 베드로는 사명의 길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믿음으로 순종하여 이루어냈다.

성전 미문에서 만난 앚은뱅이에게 베드로는 선포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3:6).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다. 현재 은과 금은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 예수님만이 보였다. 예수님만이 전부였다. 예수님이 전부인 것을 고백하며 살았던 베드로에게 하나님은 기적을 주셨다. 베드로가 믿음으로 주님의 이름을 선포할 때마다 병자들이 일어나고 3천명, 5천명의 무리들이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인 것을 고백하며 회개하며 주님의 품으로 돌아왔다. 베드로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선포할 때마다 각 사람들에게 성령님이 임했다.

하박국 선지자는 고백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어도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라

하박국선지자는 물고가 없어도 실망하지 않는다는 고백이다. 나에게 주님 한분만 있으면 된다는 마음이다.

물고기가 있어야지만 주님을 사랑하는가? 그러면 물고기가 없어지면 신앙도 주님도 버리게 된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베드로는 물고기가 없어도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오늘 우리들에게 이런 고백, 믿음, 결단이 필요하다. 이런 결단 없이는 유혹이 많은 사명의 길을 완주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아주 길고도 어려운 터널의 입구에 들어왔다. 종교시장에서 교회는 얼마나 버틸수있을까? 목회자들에게는 갈릴리 호수가에서 주님이 베드로에게 질문했던 그 절박한 시간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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