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진다. 물이 산속에서 시작하였다 하더라도 어떤 물은 산속 웅덩이에 평생 갇혀 있을 수 도 있고, 어떤 물은 냇가를 지나 강을 지나 대양으로 뻗어갈 수 있다. 산속 웅덩이에 있는 물도 대양에 있는 물도 모두 귀하다. 그 귀함을 들어내는 선은 가치와 의미이다.

물이야 어디 있든 그 쓰임새가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산속에 있든 대양에 있든, 모든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삶의 자리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삶의 자리에 가치와 의미를 담을 수 있다면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자리를 만들어갈 수 있다.

우리들이 흔히 경험하는 것들 중에, 나는 이렇게 큰 사람인데, 나는 여기에 머물 사람이 아닌데, 자신의 삶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불평과 원망을 하는 분들을 만날때가 있다.  이것은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황폐하게 만들어 지옥불에 던져 넣는 어리석음이다. 인생에 하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상에서도 이런 분들은 설자리가 없다. 교회 공동체에서는  더욱 모난돌이 되고 만다. 예수님의 마음이 사라지면 세상의 마음과 가치에 지배를 받게 되고, 세상적 가치 기준으로 요구한다 세상에서는 나의 능력에 맞는 대우를 받으면 된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적 에너지가 지배를 하면 교회 공동체는 영적 힘을 잃어버린다. 남보다 하나 더 가진 능력을 주님이 주셨다면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재능을 가지고 섬길 때 오히려 공동체는 큰 힘을 얻는다. 이것이 십자가의 정신이고 예수의 정신이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등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등

교회를 개척하고 한 장소에서 벌써 20년이 넘었으니 이제 목회가 무엇인지 길이 보인다. 크고 좋고 넓고 화려하고 세상적인 것에 관심이 줄고 사람에 따라 부화뇌동하지 않는다. 이것이 개척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선물인 듯하다.

한평생 삶의 자리를 후회하지 않고 나름대로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가치가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들풀처럼 살겠다는 것이 나의 목회철학이고 가치이다. 그 가치에 의미를 담아내려고 몸부림쳤다. 삶의 자리가 척박하든 환경이 좋든, 나의 마음에 들든 안 들든, 그것은 나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이곳으로 보내주셨다는 것에서 시작점을 찾았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삶의 자리를 소중하게 여기고 만나는 분들을 존중하며 함께 뿌리를 내리고 살아내겠다는 기본적인 결단으로 흔들림 없이 걸어왔다. 의미를 찾아가는 방향과 지향점이 성공이 아니라 성장이다. 그 성장은 공동체 모든 사람들이 함께 주의 나라를 세우듯이 자신의 삶의 자리를 건강하게 세워가는 것이다.

삶의 자리를 주님이 보내주셨다는 기본적인 신뢰와 함께 우리들은 매 순간 무게감이 나가는 일이든, 작은 일이든 항상 선택을 해야 한다. 옳고 그름을 분별해야한다. 선택이나 분별하는 것을 실패할 때 그 대가는 오롯이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

리로이 아임스는 분별의 기준을 4가지로 제시했다. 첫째는 이것은 유익한 것인가?” 내가 하고자 하는 이것이 나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가? 해가 되지는 않는가? 내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가? 혹시 내 마음을 사로잡아 죄에 빠지게 만들지는 않는가? 영적으로 유익한 것인가? 나의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되는가?를 판단하라고 했다. 둘째는 이것이 나를 지배하지 않는가?” 내가 이것을 선택할 때 나를 노예로 만들지는 않는가? 습관이 잘못 들면 그것에서 사로잡히게 되고 인생에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바울 사도는 나는 그 어는 것의 재재도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셋째는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 걸림이 되지는 않는가?” 바울사도는 내 형제들에게 걸림돌이 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했다. 분별할 때 이 기준은 아주 중요하다. 나의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 걸림이 되지는 않을까? 나 자신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런가?에 대해 곰곰이 판단할 필요가 있다. 넷째는 이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인가?” 성경은 그 기준점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나는 이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고자 하는가? 웨스터민스터 소요리 문답서의 첫 질문이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니라우리는 삶의 자리에서 수 없이 판단을 해야 한다. 그 기준이 명확할수록 좌충우돌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판단의 기준과 잣대가 달라지지 않는다. 그 기준은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이다.

교회마당_살구열매

오늘날 교회에 문제가 일어나면 세상보다 복잡하고 시끄럽다. 그리고 해결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왜 하나님이 나의 전부라고 고백하고 살아가는 종교집단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세상보다도 힘들까?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이것의 근거는 이기심이다. 십자가의 정신으로 보면 문제를 해결하는 원칙이 한 순간에 풀린다. 십자가는 작동하지 않고 오롯이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이 앞서기에 그렇지는 않을까? 성결의 은혜로 사람의 마음이 십자가의 피로 씻겨져서 아주 맑으면 분별하는데 그리 어렵지 않다. 마음이 혼탁해져있으면 선택을할때 그 기준점이 달라지게 된다. 기준점이 달라지는 것이 성경의 가치에서 멀어진다는 것임을 우리는 모를때가 참 많다. 결국 마음과 정신에 무엇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가가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열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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