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292)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104)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나는(와아니) 오직 주의 사랑을(베하스데카) 의지하였사오니(바타흐티) 나의 마음은(리비) 주의 구원을(비슈아테카) 기뻐하리이다(야길)”(13:5).

요즘은 한파가 찾아오는 계절이다. 강한 돌풍이 서해안을 통해 들어와서 눈보라치며 추위를 느끼게 한다. 팬데믹의 위협과 강한 바람은 우리를 더욱 움추려 들게 한다. 이러한 때에 소망의 소리를 어디서 들을까? 시편 13편은 힘든 상황에서도 시인이 기뻐하고 찬송하고 있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13:6).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우리는 한시도, 하루도 살아갈 수 없다. “여호와여 어느 때 까지니이까(아드 아나)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티쉬카헤니 네짜흐) 주의 얼굴을(파네이카)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아드 아나 타스티르)”(13:1). 너무도 힘든 나머지, 시인은 탄식하며 숨어계시는 하나님께 하소연하고또 푸념하듯 말한다.

나의 영혼이(베나프쉬) 번민하고(야곤)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비레바비 요맘)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야룸 오에비)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아드 아나)”(13:2). 시인은 극심한 고난 가운데에서 종일토록 번민하며 기도하고 있다. 시편기자는 금식하면서 원수의 공격과 위협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이다. 이 시편 13편은 국가 탄식시편으로서 시편 9-10, 13, 31, 35, 42, 43, 55, 56, 59, 69, 94, 102, 109, 142 편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시편 13편은 개인 탄식시편으로서, 적이 땅과 백성과 왕을 공격하는 상황(44, 74, 89)에서 시인은 어려운 고난과 재난의 상황에서 기도하며 탄식하고 있다.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요마르 오에비)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에칼티우)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에모트)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야길루) 하나이다”(13:4). 시인은 실패한 일과 잃어버린 전쟁의 상처 등을 통해 낙심하며 더욱 심해지는 고난의 상황에 대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보호받으려는 간절한 탄원을 한다. 이 시편은 보호시편(예방시편, protective psalm)의 성격을 가진다(83편 왕정시편).

결국 삶의 처절한 순간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는 탄식의 노래를 통해 상황의 반전이 일어나고, 극적 전환이 이뤄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아도나이 엘로하이)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하비타 아네니) 나의 눈을 밝히소서(하이라 에나이)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위샨 하마웨트) 하오며”(13:3). 우리는 기도와 금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귀를 울리는 기도소리를 하게 된다. 그로써 주의 응답을 받게 된다. 기도함으로써 우리의 눈이 밝아지고 분별력과 통찰력이 생겨서 사망의 잠에서 깨어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죽음의 전염병 시대에 우리는 부엉이 눈처럼 깨어 있어야 한다. 물고기 눈처럼 여전히 뜨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영적인 각성을 깨우친 분들이 있다. 한국 교회와 대학을 이끈 선교사들이다. 그 중 이철선(William A. Richardson) 선교사는 부인 페기 리차드슨(Peggy Richardson)와 함께 최수열 선교사의 요청으로 19588.31일 오토크릭 선교부에서 파송 받아 온다. 그 전에 그는 주한 미군 공병장교 중위였기에 의정부 그리스도의 교회를 설립하고 예배를 드렸다. 이철선 선교사는 군병무를 마치고 바로 선교사로 지원, 고향 교회의 후원으로 선교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철선은 한국기독학원(그리스도신학대학교의 전신)발전에 전념한다. 19698월에 그는 대학의 2대 교장에 취임하며 문서 선교를 위해 참빛지를 맡아서 <참빛> 발행인으로 경영하며 대학인쇄소를 설립한다. 한국의 출판문화를 이끌며 문화 선교를 주도하였다. 재정을 다 맡아서 운영하며 그는 한국교회에 성경적 진리를 알리고 그리스도의 교회 복음을 전하며 그리스도의 교회를 알리는 알렉산더 캠벨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그는 행정을 맡아서 대학의 기틀을 잡았고 1966년 안식년으로 귀국하여 하딩 대학원에서 선교학을 전공하였다. 논문으로 외국 선교의 본질, 중요성, 적용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겸손한 성품으로 많은 한국 사람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초기에는 유악기 그리스도의 교회(현 서울 기독대학교)와 일명 무악기(현 강서대, 예배 시에 아카펠라로 드림)가 연합하여 같이 활동하여 선교사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이철선 선교사는 대학의 선교사 부지(최수열, 빌램지, 파수리)에 있는 선교사 사택에서 살면서 선교를 활발히 하다가 13년간의 선교를 접고 1971년 미국으로 귀국한다.

참빛 (제1권5호/1964년 12월) 중 이철선 선교사의 글출처/강서대학교전자도서관(http://kcu.dcollection.net/srch/srchDetail/S20000000468?volumeId=200000002635)
참빛 (제1권5호/1964년 12월) 중 이철선 선교사의 글출처/강서대학교전자도서관(http://kcu.dcollection.net/srch/srchDetail/S20000000468?volumeId=200000002635)
참빛 (제1권5호/1964년 12월) 중 이철선 선교사의 글출처/강서대학교전자도서관(http://kcu.dcollection.net/srch/srchDetail/S20000000468?volumeId=200000002635)
참빛 (제1권5호/1964년 12월) 중 이철선 선교사의 글출처/강서대학교전자도서관(http://kcu.dcollection.net/srch/srchDetail/S20000000468?volumeId=200000002635)
참빛 (제1권5호/1964년 12월) 중 이철선 선교사의 글출처/강서대학교전자도서관(http://kcu.dcollection.net/srch/srchDetail/S20000000468?volumeId=200000002635)
참빛 (제1권5호/1964년 12월) 중 이철선 선교사의 글출처/강서대학교전자도서관(http://kcu.dcollection.net/srch/srchDetail/S20000000468?volumeId=200000002635)

그 후에도 대학의 어려움이 있을 때 마다 이철선 선교사는 테네시주 미하원으로서 학교를 보호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한국 땅에서 뿌리내리고 아시아 선교를 감당할 수 있도록 보호막과 울타리 역할을 한다. 인구 과밀 방지를 위해 서울 안에 대학 설립이 어려운 때 외부 사람들이 학교를 점유하려할 때에, 그는 방패막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한 선교지를 위해 선교한다는 것은 평생 선교한다는 사실을, 이철선 선교사를 통하여 배우게 된다. 예수는 땅 끝 선교에 마음을 두고 온 세상에 복음을 전했고, 영원한 구원의 길을 열어놓았다. 우리도 그러한 삶을 살아가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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