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박사】 이 땅의 선한 사마리아인 밥 피어스 선교사

  • 입력 2022.11.24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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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289)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101)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여호와께 감사하라(호두) 그는 선하시며(토브) 그 인자하심이(하세도) 영원함이로다”(107:1).

삶의 노래가 감사로 끝나는 생애가 된다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인생일까? 오늘 일어나는 삶의 현상을 보면, 마치 힘들고 어려운 고개 길을 오르다가 다시 비탈길을 내려오는 노인의 모습이라고 하면 과언이 아닐까? 우리네 인생에서 감사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다. “여호와의 인자하심(하세도)과 인생에게(리베네 아담, 인간의 아들들) 행하신 기적으로(니펠레오타이오)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요두)”(107:8). 주의 은혜와 기적으로 말미암아 찬송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시인은 시편의 노래에서 그가 바로 주를 사모하며 기도하며 감사하는 자임을 보여준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바짜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와이제아쿠)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미메쩨코테이헴) 그들을 구원하시되...감사제(지베헤 토다)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지로다(위사페루)”(107:19, 22).

시편 107편은 시편 5권을 시작하는 서두 시편이다. 107편은 개인 탄식시편으로서 시작하여 끝에는 감사하는 시편이며, 그 감사제사를 드리는 이스라엘 예배 시편이다. 이 시편은 성전 제사장들이 사막과 바다의 위험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감사와 찬양하게 되는 이유를 말한다. 또 이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음이라고 4번이나 반복한다(8, 15, 21, 31). 또한 의식(제의)문을 통해 대적자의 저주의 끈을 끊고 시인이 축복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행복한 결론으로 인도한다(2, 14, 16, 42). 따라서 시편기자는 이러한 고난과 환난 속에서 비록 탄식하지만 기도를 통하여 결국 감사하고 찬양하는 모습이다. “사람이 흑암과 사망(호세크 웨짤마웨트)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아시레 오니 우바르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와아짜트 엘리온)을 멸시함이라”(107:10, 11).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바짜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우미메쭈코테이헴)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세아라) 고요하게 하사(리드마마)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28, 29).

우리의 인생에서 적들의 압제가 심하고 고통으로 말미암아 어렵게 느껴져도 거룩함과 예배를 통하여 지혜를 얻게 된다. 우리는 경건을 통해 세속적인 일상 속에서 분리하고 믿지 않는 자들과 다른 존재로서 서서 예배(제사, 희생, 감사제)를 통하여 정결하게 되고 힘과 영광, 능력과 거룩을 통하여 축복이 임하게 된다. 따라서 이 개인 탄식시는 동시에 나중 감사시편이 된다. 따라서 동시에 큰 공동체의 감사제 축제로 나가는 시편이 되며 고통 중에 있는 시인이 예배의 자리로 나가며 감사하며 찬양하게 된다. “또 복을 주사(와예바라켐) 그들이 크게 번성하게 하시고(와이르부) 그의 가축이 감소하지 아니하게 하실지라도(로 암메이트) 다시 압박과 재난과 우환(메오쩨르 라아 웨야곤)을 통하여 그들의 수를 줄이시며 낮추시는도다(와임메아투 와야쇼후)...(중략) 지혜있는 자들은(하캄) 이러한 일들을 지켜보고(웨이쉬마르) 여호와의 인자하심을(하세데 아도나이) 깨달으리로다(웨이트보네누)”(107:38 -39, 43). 이러한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잘 부르는 분들이 선교사일 것이다.

 

밥 피어스(Bob Piece, 1914-1978)는 선명회(월드비전)를 설립한 순회 복음 전도자였다. 그는 한국의 고아의 아버지로서 세계적인 부흥사였다. 또한 피어스는 한국 어린이, 고아의 아버지였다. 밥 피어스는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을 끼친 선교사였다. 그는 파세데나 대학을 다니다가 목사의 딸인 로레인과 결혼을 하고 복음 전도자의 소명을 받고 학교를 그만두고 순회설교가로서 나선다. 그는 1940년에 침례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중국 선교를 갔다가 1949년 남대문 교회 김치선 목사에 초청으로 부흥집회를 인도한다. 많은 젊은이에게 침례를 주었고 사랑을 주다가 한국을 떠난 두 달 후에 한국전쟁이 일어난다. 그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잡지사의 종군기자 자격으로 자원하여 10월에 한국에 들어와서 전도 사업을 벌이게 된다.

밥 피어스는 전쟁고아와 미망인을 위한 자원 사업을 펼쳤고, 효창동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도 고아원을 열게 하여, 그 때에 최수열(L. H. Chesshir) 선교사가 선교관을 마련하고 살면서 어린아이의 기저귀도 갈아주며 같이 동참하기도 한다. 밥 피어스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백만의 사람들이 빈곤과 기아, 고독,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 내버려지고 있다며 사진을 찍으며 고통의 현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소명을 깨닫고 결단함으로 고아를 구제하는 거룩한 사역을 감당하게 된 것이다. 오늘도 월드비전(구 선명회)을 통해 1억 명의 어린이들에게 우유를 주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그는 원래 사업가로서 사업차 가난한 나라에 출장 갔다가 길거리에서 어린 아이들이 줄을 서서(1km) 밥그릇을 가지고 서있는 모습을 보았다. 여기서 그는 긍휼한 마음을 가졌고 사회사업을 감당하는 복음 전도자가 되었던 것이다. 복음 전도 집회를 통해 한경직 목사와도 절친한 관계를 가졌다. 오늘도 밥피어스와 같은 선한 사마리아인 정념(情念, 파토스)이 불타는 사람을 찾고 있는 시대이다. 우리도 오늘 감사 찬양하며 피어스의 마음을 갖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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