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박사】 전쟁고아들을 살피신 하나님 손길, 홀트 가문

  • 입력 2022.11.10 07:20
  • 수정 2022.11.10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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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287)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99)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우리가 감사함으로(베토다)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비즈미로트)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나리아 로)”(95:2).

우리가 사랑과 기쁨을 가지고 살면 이 세상은 행복하게 보일 것이다. 오늘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우리는 기뻐할 수 있을까? 우리가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행복이라는 말이 헬라어에 유다이모니아’(eudaimonia)인데, 이 말은 하나님과 함께 하면 행복하다라는 뜻이다. 시편 95편은 시편 81편과 더불어 왕즉위 시편으로서 시편93, 96-99편과 함께 속한다. 이 시편에서 다른 피조물과 더불어 찬양하며 경배하는 모습이 나온다.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오(엘 가돌)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알 콜 엘로힘) 때문이로다()”(95:3). 이 왕즉위 시편을 보면 찬양의 깊은 이해를 보게 된다. 우리는 거시적 관점에서 다른 피조물의 영역까지 바라보면서 감사하는 시인을 보게 된다. 땅과 산과 바다를 지으신 주님께 감사하는 모습이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보우 니쉬타하웨 웨니크라아)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니브레카 리프네 아도낭 오세누)”(95:6). 시인은 자신의 안팎에서 머무는 차원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의 관계를 보면서 자신이 불평하고 원망하며 근심하며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살려 한다. 이 순종의 삶을 통해 시인은 감사와 경배, 찬양과 노래, 시작(詩作)이 가능한 시심(詩心)을 가지게 된다.

이 시편 95편은 예배(제의)의 상황에서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나가는 모습이다. “오라(레쿠)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네라네나 라도나이)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나리아 레쭈르 이쉬에누)”(95:1). 축제가 열리는 제의적 축제에서 회중은 제의 드라마를 보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찬양하며 나가고 있다.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구속하신 삶을 우리가 감사하며 춤추며 노래하며 나가는 모습이다. 마치 부활절이나 오순절 축제에 감사와 찬양하는 모습과 유사하다. 요즈음 교회들이 가을 추수를 기리며 신앙의 감사절(청교도의 감사절)을 지키며 한 해의 농사와 결실에 감사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주위의 신화적 배경에서 벌어지는 우상 숭배의 문화와는 다른 여호와의 역사적 구원을 노래하며 여호와가 왕으로 등극하는 우주적 즉위식을 본다. 이 즉위식 축제를 보면서 여호와가 악의 세력을 무찌르고 종말론적으로 승리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는 것을 노래한다.

바다도 그의 것이라(아쉐르 로 하얌) 그가 만드셨고(웨후 아사후)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웨야베쉐트 야다이오 야짜루)”(5). 여호와의 즉위축제와 장막절, 신년 축제 때에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임재, 그의 구원의 행위를 반복해서 이스라엘은 노래한다. 또 언약의 갱신을 통해 신앙의 충성심을 고백하며 추수와 신년 축제로 나가는 모습이다.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오(키 후 엘로헤누)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와아나흐누 암 마르이토)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웨쫀 야도)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내가 사십 년 동안(아르바임 샤나)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아쿠트 베도르)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암 토에 레밤 헴) 내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웨헴 로 야드우 데라카이)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아쉐르 니쉬바에티 베아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임 에보운 엘 메누하티) 하였도다”(95:7,10,11). 이스라엘 백성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승리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노래하며 나가는 것처럼 선교사들도 늘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였다.

해리 홀트(1905-1964)는 사우스 다코다주 출신으로서 오레곤 주에서 농장을 경영하였다. 그는 1950년 심장마비로 죽음 직전까지 갔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 된 후에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살기로 다짐한다. 그 계기는 가난한 농부 부부가 어느 날 오레곤 주 유게네 마을 회관에서 한국 전쟁 영화를 보고 감동되어 선교사로 나선다. 그들은 이미 여섯 자녀가 있었지만 제재소로 크게 돈을 벌어 샀었던 농장을 팔고 무작정 한국으로 떠난다. 전쟁고아 8명을 입양하면서부터 어린이 선교 사역을 한다. 한국의 효창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자리를 잡고 처음 사회복지 사업을 하게 된다. 그는 1956년 한국 고아들의 해외 입양을 돕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홀트 부부와 그의 딸 말리 홀트
홀트 부부와 그의 딸 말리 홀트

 

해리 홀트는 홀트 아동복지회를 세우고 40년 동안 66000명가량 해외 입양을 시킨다. 부인 버다 홀트 여사(1904-2000)1995년 이 공로로 무궁훈장을 받게 되고 경기도 고양시 일산 공원묘지에 묻힌다(버다 홀트, 이선명역, 동방의 자손들-저서). 일산에는 이 부부의 묘지가 있다. 계속되는 선교는, 시집가지 않은 셋째 딸인 말리 홀트가 한다. 그녀는 간호사로서 21세에 1956년 전쟁으로 피폐해진 경남과 전남북을 돌며 무의촌 주민들의 질병예방과 간호를 하게 된다. 1967년부터는 중증 장애인 거주 시설인 홀트복지타운 원장으로서 홀트 복지회 이사와 이사장직을 수행하며 오랫동안 복지회를 이끌며 2대에 걸쳐 어린이와 장애인 선교를 하였다. 그녀는 평생 독신 선교사로서 사회복지 선교를 하다가 2019517일 숙환으로 84세 나이로 소천하였다. 그녀는 부모를 뒤따라 한 나라의 고아들의 어머니로서 하늘의 상급을 쌓은 것이다. 그녀는 복지 선교의 삶을 산 숭고한 하나님의 딸이었다. 해리 홀트 가문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자 그들은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사역을 이루게 되었다. 오늘 우리도 그 손에 붙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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