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인생을 개척하라

자산을 늘리는 방법은 다양하다. 과거에는 매달 정기 적금에 예치했다. 적금 이율이 10% 이상이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내 집 마련과 자녀양육과 결혼을 시키는데 그리 큰 문제가 아니였다. 무엇보다 안정된 환율과 물가와 저금임이 뒷받침해주었고, 부동산이 급등하지 않았기에 열심히 일해서 저금하면 어느 정도 안정된 미래가 보장되었다.

그런데 이런 룰이 모두 깨졌다. 자산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부동산, 그림, 주식, 채권, , 가상화페와 NFT, 사모펀드 등 돈을 굴리는 방식이 다양해졌다.

과거의 생각에 머뭇거리다 보면 현재와 미래를 열어 가는데 많은 부분에서 뒤처지게 된다. 물려받은 것이 많아서 돈 걱정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야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아무것도 물려받은 것이 없는 흑수저들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엄청난 자기 개발과 혁신적 사고가 요구된다. 혹독한 노력 없이는 미래는 열리지 않는다.

또한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을 지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연결된 세상이다. 지킨다고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영원한 흑수저도 없고, 영원한 금수저도 없다. 능력이 있으면 금수저 되고 능력이 없으면 흑수저로 전락한다.

교회도 사회현상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 과거 선배 목회자들은 지하실에서 개척해도 일 년이 지나면 50명 이상은 모였고, 5년 정도 되면 안정되는 구조였다.

그런데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면서 그런 평균적인 기대치나 룰이 모두 깨져버렸다. 20003월에 지하실에서 본푸른교회를 개척했다. 임대료와 은행 부채, 카드비용, 가정 생활비, 교회운영비 등 한달 한달 일하면서 겨우 연명하며 개척교회를 유지했다. 가난한 개척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일'을 하는 것이다. 일을 안 하면 그 달로 부도가 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비즈니스 미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비즈니스미션을 시도했다가 어려운 일을 경험한 적도 있다. 아프리카 금광에서 금을 수입해 국내시장에 판매하는 일을 시도한 적도 있다. 사업장 문을 열고, 수입방식, 세관통관 절차 등 구체적으로 진행했지만 뜻대로 잘되지 않았다.

왜 목사가 사업에 손을 댔을까? 이유는 하나였다. 신학교에 오기 전 젊은 시절 사업을 했고사업의 생리를 어느 정도 이해했기 때문이다. 나의 신학은 언제 올지도 모르는 까마귀를 기다리는 신앙이 아니였다. 직접 까마귀를 잡아오는 신학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이 현실을 뚫고 나갈 모든 능력을 다 주셨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대학원을 졸업시키고, 건강한 육체와 정신과 영혼을 주셨다. 우리 사회에서 평균 이상의 능력을 부여받은 것이다. 평균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언제 올지도 모르는 사람을 쳐다보고 하늘만 쳐다보는 것이 바른 신앙관이 아니라고 본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른 신앙이고 신학이다.

혼자 감당하기에는 힘들었던 사역들이 참 많았다. 해외 신학교, 교회, 국제대안학교, 신문사 운영비로 늘 재정적 압박감을 경험하는 것은 일상의 삶이었다. 모든 사역을 내려놓으면 편안하게 안정적으로 살 수 있지만 편안하게 살기위해 목회자가 된 것이 아니기에 늘 사명의 장에서 서성거리며 최선을 다하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늘 돈이 문제이다. 너무 없으면 하나님의 사역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또한 너무 넘치면 교만해지기 쉽다. 하나님보다 돈만 의지한다면. 이것은 곧 타락이다. 의지의 대상이 바꾸면 더 이상 목회자로서의 삶은 의미가 없는것이다. 하나님과 돈 둘중에 누구를 선택할것인가? 그 우선순위가 명확해야 한다. 돈을 관리할 청지기 정신이 있다면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 나의 생각의 기저에 깔려있다.

2000년대만 해도 비즈니스 미션이란 개념이 상식화되지 않았던 시대였다. 목회자는 오직 말씀보고 기도하고 교회가 주는 것 만으로만 살아야 된다는 생각이 교단의 방침이었고, 모든 목회자나 성도들도 그 틀 안에서 살아갔다. 그것이 정답인줄 알았다. 그 정답 안에 살다가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교회 임대료도 못 내고, 자녀교육도 시키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목회자들이 참 많았다. 어려움 속에 있는 목회자를 보면 따스하게 위로와 섬김보다 왜 그리 능력도 없어 라고 비웃음이 난무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정서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가 알았던 정답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많은 교회와 선교회가 깨어지면서 알았다. 갑자기 코로나가 찾아오고 교회의 활력이 떨어지면서 재정의 심각한 위기를 경험하면서 추풍에 낙엽 떨어지듯 무너졌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인력시장으로 내던져졌다.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내몰린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강제로 취업시장에 인력 시장에 몸을 맡겼다. 목회자들은 인력시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허드렛일 밖에 없다.

이제는 목회자와 성도들의 생각에 변화가 찾아왔다. 5일 열심히 땀 흘려 일하고 번 돈으로 가정과 교회를 세워가겠다고 건강한 목회를 지향하는 분들이 많아졌다. 성공의 기준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교회를 사람의 숫자로 여겼다. 교회를 재정의 단위로만 계산했다. 교회를 건물로만 보았다. 신학에 심각한 오염물이 껴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살았다. 번영신학이 교회의 성장인줄만 알았다. 모든 물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번영신학에 한국교회가 빨려 들어갔다. 그냥  번영신학에 편하게 살자는 마음으로 스스로 맡긴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편하게 편승한것이다. 코로나는 기복 신학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이제 수정이 필요하다. 수정이란 원칙을 바꾸는 것이다. 주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교회가 무엇인가? 다시 셋팅해야 한다. 목회자란 누구인가? 자기 인식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미 힘든 과정이 시작되었다.

코로가 던져준 변화의 물결은 생각의 전환이다. 나의 생활의 전부를 교회가 알아서 해주겠지, 하나님이 해주겠지, 이렇게 막연하게 생각하는 분들은 거의 없다. 교회에 죽을 때까지 빨 때 꽂고 살겠다는 생각을 하는 목회자는 이제 사라질 것이다. 교회는 빨대를 꽂는 곳이 아니라 나의 헌신과 눈물을 기쁨과 감사로 드리는 곳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목회자로 부르셨고, 또한 나에게 능력도 주셨기에 일터에서 건강한 땀을 흘려 교회를 세우겠다는 건강한 신학이 자라고 있다.

꼭 모든 목회자가 비즈니스 미션을 하라는 것도 아니다. 100세 시대이다. 은퇴 후 최소 30년 이상은 더 생을 살아내야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을 개발하는 것은 축복이다. 안하는 것과 시도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안하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다. 시도하는 것은 개척자 정신이다. 개척자 정신은 노마드(유목민遊牧民, Nomad)의 인생을 살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목회자는 항상 주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안주하지 말고 개척자 정신으로 시도하며 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나는 이요 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구원의 길, 천국의 길을 만들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죽음의 길을 선택했다. 길을 만드는 사람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이며 또한 다른 사람들의 십자가도 대신 지고 가는 사람들이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목회자란 길을 만들어내는 개척자이다. 교회란 건물에 숨어서 자기의 못남을 포장하지 말라, 목회 까운을 걸치고 거룩한 척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이런 것이 나의 인생을 대신 만들어주지 않는다. 아무도 오지 않는 깊은 서재실에 갇혀서 감옥살이 하지 말라. 성도가 살고 있는 전쟁터인 삶의 자리로 나아가라. 그래야 현실이 보인다. 예수님은 공간에 갇히지 않았다. 예수님이 계신 곳은 항상 삶의 자리였다. 그리고 노마드의 인생을 사셨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대신학박사. 등.  저서로는 충성된일꾼되어가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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