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vs 멘투호테프 2세

사회자 : (오프닝) 지금은 오래전 성경의 인물을 실제의 역사의 현장 속에서 재조명해 보는 코너입니다. 오늘 소개할 성경의 인물은 우리의 믿음의 뿌리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입니다. 믿음의 시작을 연 분입니다.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면 꼭 만나고 싶은 사람 중 한 분입니다. 오늘 주인공인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살았던 역사의 현장을 찾아가 아브라함을 새롭게 조명해 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이제 그 현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사회자 : 아브라함은 75세 늦은 나이에 주님을 만나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전에는 하나님 없이 살았던 생애였습니다. 그 시대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현지 특파원을 연결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의 고향인 갈대아 우르란 어떤 지역인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파원 : 안녕하세요. 지금 여기는 아브라함의 고향, 갈데아 우르(Chaldea Ur)입니다. 이곳은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의 우상도시입니다. 갈대아 우르는 당시 번영했던 도시국가(지구라트 잔해가 이 유적을 지배하고 있음을 볼 때)로 여겨집니다. 아브라함이 우르를 떠날 때의 시기는 제3왕조 창시자였던 우르남무(BC 2150-2050, Urnammu)가 통치하던 때였습니다. 그 땅에 심한 기근이 들면서 우르의 종말이 왔습니다. 그 시대는 엘람의 침입과 셈족계의 반유목민들로 대치되면서 우르의 운명이 바뀌었는데 아브라함의 이주는 바로 이 시기로 보여집니다.*1) 그리고 아브라함이 떠날 때 나이가 들었음에도 그의 아내 사래에겐 아직 아이가 없었는데. 당시 함무라비 법전 제138조에 보면 자녀가 없는 것은 이혼의 조건이 되었습니다.*2) 또한 우르(Ur)의 히브리어는 ”, “불꽃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성경의 고대족장들은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 가운데서 이끌어 낸 것이라(15:7)고 결론을 맺습니다.*3)

이런 배경으로 추측해 본다면 아브라함이 떠나는 시기에 사래를 잉태하지 못하게 한 것은 우르를 떠나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아브라함은 위기의 순간을 맞이했고 이런 시기에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성경은 여기에 대한 자세한 이유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회자: 잘 알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면 아브라함은 정착민이 아닌 유목민으로서 삶의 전환이 되었다고 봅니다. 유목문화의 배경을 가진 하란에 이주한 배경도 아브라함의 삶의 전환과 긴밀히 연관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생애에 계속 이어지는 특징이며 이스라엘과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삶과도 연관됩니다. 믿음은 북극성과 같은 하나님만 바라보며 약속을 따라 이동하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의 여정은 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까지 영원히 이어집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삶의 방식의 전환은 오늘날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농경민처럼 정착하는 것이 아닌 유목민처럼 약속을 붙잡고 계속 움직이는 여정으로서 아브라함의 여정은 오늘 우리에게도 많은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주님을 따라간 그 다음 중요한 여정을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특파원 : . 앵커님도 말씀하신 것처럼 아브라함 일행은 정착민의 삶을 버리고 유목민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온전히 순종하며 하나님이 지시하신 가나안 땅에 이릅니다. 그러나 그는 가나안에 정착하는가 싶더니 얼마 되지 않아 그 땅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목축을 하는 아브라함은 살길을 찾아 다시 기근이 없는 머물 도시로 이동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이동한 곳이 애굽이었습니다. 당시 애굽은 나일강의 비옥한 환경을 가진 최고의 나라였습니다. 아브라함 당시 유목사회는 가부장적 사회로 아브라함이 이런 선택을 한 것은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현실적인 고민에 따른 것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아닌 인간의 연약함에 따른 결정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출발한 아브라함이 현실적인 벽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옛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연약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애굽에서 아브라함은 인생의 큰 위기를 맞이합니다. 그 지역 사람들이 사라의 미모를 보고 사라를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나이가 있었을텐데도 그 정도였으면 사라가 상당한 미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거짓말로 위기를 극복하려 했지만 결국은 바로왕의 첩이 될 상황에 놓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인간적인 두려움의 선택으로 결국은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이 무산될 위기의 상황을 초래한 것입니다. 

이미지출처 : https://www.i.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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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 그렇군요. 이제 좀 다른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얼마나 오래 살았으며, 무슨 업적을 남겼느냐에 성패가 결정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 해도 결국은 바람 잡는 헛된 일인 거죠. 문제는 어떻게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사건에 동참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데, 오늘 소개하는 아브라함은 이런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이주한 이후의 삶을 좀더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파원 : . 아브라함의 애굽에서의 삶을 이해하려면 그 시대 배경을 아는 것이 좀 필요한데요.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이주하던 때는 제11왕조 시기였습니다(BC 2134-1991).*4) 인테프 3(Intef ,)가 애굽을 지배하던 시기는 남북으로 나누어진 상태였습니다. 인테프 3세의 아들이었던 멘투호테프 2(Mentugotep )가 곧 성경에 나오는 파라오입니다. 그는 즉위 몇 년후에 이집트의 남북통일과 함께 50년의 치세를 누려 절정기를 맞이했습니다.*5) 당시 애굽인들은 비옥한 나일강 삼각주 지역을 태양신 라(La)를 섬겼던 바로가 다스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은 애굽의 통치자를 모두 바로(파라오) 라고 불렀습니다. 바로의 뜻은 큰 집이라는 의미로 애굽어 페로에서 온 말입니다(지금으로 보면 백악관‘,‘청와대과 같은 말).*6) 성경은 애굽의 통치자를 말할 때 모두 바로라고 언급합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이주할 때는 여러 정황을 볼 때 멘투호테프 2세 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아브라함은 이런 상황 속에서 또 다시 미모의 아내로 인해 위기를 맞습니다.

이미지출처 : https://www.i.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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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내를 무심코 바로에게 내주었지만 오히려 하나님은 바로에게 징벌을 내려 사래를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십니다(12:17). 아브라함의 힘으로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나타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십니다. 그리고 나올 때 생각지도 못한부(富)를 가지고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비록 실패를 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이 말씀하신 것을 신실하게 지켜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셨더라면 어쩔 뻔 했을까요? 아찔한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비록 실수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책망하지 않고 더 큰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것은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에 따른 것입니다. 인간의 힘을 의지한 멘투호테프 2세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두 종류의 인간상을 보여줍니다. 당대에 가장 큰 권력을 가진 멘투호테프 2세와 아브라함은 인간적으로 보면 감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바로왕의 생명과 미래는 아브라함에게 달려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도전을 줍니다. 이것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12:2-3)에 근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전에 응답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세상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만왕의 자녀요 거룩한 백성입니다. 그럼에도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여전히 보이는 세상을 의지하고 그 영광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시청자 여러분! 혹시 세상의 권력과 부귀에 이끌려 하나님의 약속을 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이미지출처 : https://www.i.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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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을 거쳐 애급까지 아브라함을 동행 취재한 특파원 본헤럴드 였습니다.

<미주 -인터뷰배경>

1) J.D.Douglas , 새성경사전(서울: 기독교문서 선교회,1996), p.48. 580.

2) Herbert Bristho C., Prelude to Emprie; Babylonian Society and Politics 745-626BC. Philadelpia: Univ. Museum, 1984, p.128. 참조하라.

3) 제임스 L.쿠걸, 모세오경(서울: CLC. 2003), p.182.

4) Isaac. Asimov, 아시모프의 바이블(서울: 들녘, 2002), p. 90.

5) Peter A. Clayton, 파라오의 역사(서울: 까치글방, 2002), p.95.

6) Isaac. Asimov, 앞책 , p.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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