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브(AJAB) 신학과 요한 르네상스(16)

1.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감동을 먹고 산다.” 인류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신구약성경은 감동의 산물이다. 구약성경은 출애굽의 감동의 산물이고, 신약성경은 부활의 감동의 산물이다.

 

어찌할 바를 몰라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한 여인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하였다.

어느 대문 앞에 다다르자

가쁜 숨을 몰아쉬며

큰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기독교가 탄생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초대교회는 부활공동체성령공동체였다. 이 말은 초대교회라는 기독교 공동체의 탄생은 주님의 부활성령의 강림이라는 두 기둥에 의해 세워졌음을 말한다. 초대교회의 탄생을 보여주는 사도행전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부활하신 주님은 승천하기 직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8).

주님의 부활과 승천을 목격한 제자들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시기를 모여 기도하는 가운데 첫 번 째 한 일은 12제자 가운데 가룟 유다로 인해 공석이 된 한 자리를 채우는 일이었다. 여기서 제자됨의 자격은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1:22)이었다. 이어서 오순절이 되었을 때 그들이 모인 자리에 성령이 바람과 불처럼 강력하게 임함으로 초대교회가 탄생하였다.

이때 수제자 베드로는 이같이 설교했다.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 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말하되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이 설교는 초대교회가 부활을 증언하는 부활공동체였음을 말해준다.

또한 초대교회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한 대목을 보자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4:32-35) 이 대목은 부활공동체요 성령공동체인 초대교회 공동체의 경제 정의가 실현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사도 바울이 전했던 복음도 주로 예수 부활에 대한 것이었다(고전 15:4-8,12,14-15). 바울의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행한 설교의 한 대목을 보자.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17:31-32).

공회 앞에 선 바울이 자신을 변명하는 한 대목을 보자. “바울이 그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23:6). 또한 베스도 총독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바울을 두고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을 당한 것뿐이라”(25:19).

이렇듯 사도행전은 주후 1세기의 세계를 송두리째 뒤엎어 그리스도로 향하게 만들었는데, 그것은 십자가 자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은 것이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두 사도(베드로와 바울)케리그마’(선포 또는 설교)에서 강조된 것은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했다는 사실이다. 1세기의 이교도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선언에 대해서는 별로 감동을 받지 못했다(받을 수가 없다). 그 까닭은 예수 이외에도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들(죄수들)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부활 선언에 대해서는 중립의 자세를 지킬 수 없었다.

 

2. 신약성경 전체에는 부활 신앙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부활 신앙으로 인해 믿음과 순종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고, 죄와 죽음에 대한 최후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다. 이같이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이 없었더라면, 우리들에게 전해진 복음서들은 한 줄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비기독교 세계를 향한 교회의 선포에서 가장 강조된 것은 예수의 지상사역도 아니고, 심지어 예수의 죽음에 나타난 속죄의 의미도 아닌 예수 부활이었다.

가톨릭의 정양모 신부는 기독교인의 생사관(生死觀)부활 신앙에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예수 부활 신앙은 실로 납득하기 어렵지만 이 신앙을 빼면 그리스도교는 쓰러진다. 사실 그리스도교는 역사의 예수께서 창교(創敎)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분이 서기 3047일 금요일 오후에 예루살렘 북서부 성 밖 골고타 형장에서 처형되었을 때 그리스도교는 태어날 수 없었다. 예수의 제자들이 처형된 스승의 발현을 체험하면서 그 부활을 확신하고, 드디어 305월 말경 오순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모여 그리스도교를 창시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는 무엇보다 예수 부활 신앙의 종교이다.....부활 신앙이야말로 타력 신앙의 전형이다. 정말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위대한 사도 바울로처럼 구원의 환성을 지를 것이다(고전 15:54-55).”

그러면 초대교회에서 부활의 복음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자. 늘 말씀드리지만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또는 성경 전체)은 본디 그 시대 상황(삶의 자리) 속에서 배태된 진리이지 무시간적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부활의 복음은 초대교회(기독교)가 정치적으로 로마제국에, 종교적으로 유대교에 박해를 당하는 상황에서 이들 세 세력 간에 운명을 건 벼랑 끝 승부속에서 배태된 것이다.

사상 유례가 없는 예수 부활소식은 사탄의 최대 무기인 사망 권세를 이겼다는 점에서 가장 기쁜 소식 곧 복음’(유앙겔리온)이 되었다. 그리고 승리의 기쁜 소식 곧 부활의 복음은 로마제국과 유대교에 대한 기독교의 승리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부활의 복음은 기독교의 승리를 위한 비밀병기였고, 예수 부활은 하나님의 최고의 승부수였다.

특히 초대교회가 부활의 복음을 강하게 외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그 처한 자리가 생명(생존)이 위협당하는 묵시문학적 수난상황 때문이었다. 신앙의 의인이 핍박과 순교를 당하는 상황에서 그 상황을 능히 이길 수 있는 길은 이미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신 부활의 주님에 대한 능력을 믿고 의지하는 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부활의 소식, 주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라는 말은 주님께는 왕의 승리와 영광을 드러낸 사건이었고, 성도들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엄청난 감격과 부활이 갖는 영생의 의미(잠시 있다가 사라질 인생과 세상 것에 대한 초극, 초월)를 통한 이 세상을 능히 이기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주후 1세기 묵시문학적 위기상황에서 부활 사상은 세상 나라들을 거룩하게 전복시키고, 다가올 새 시대로서의 하나님 나라(천국)의 승리를 말하는 혁명적 교리였다. 주기도문의 핵심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마찬가지로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였던 것도 그 때문이다.

 

3. 초기 예수교 운동은 유대인의 민족주의적 운동이나 사사로운 종교적 체험이 아니라 나사렛 예수께서 죽은 자로부터 몸으로 부활하였다는 부활 신앙 운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왕적인 메시아, 세상의 참된 주로서의 예수 신앙(2:36; 1:3-5)은 부활 신앙 위에서 세워졌다. 부활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소망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활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당시의 유대교 및 로마제국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게 했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 유대교와 예수교는 큰 충돌 없이 병존해 왔다. 그런데 주후 70년 유대교 신앙의 중심이었던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소종파(sect)로 보였던 예수교 집단이 날로 커가면서 양측 사이에는 긴장과 갈등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예수교의 번창에 불안을 느낀 유대교는 두 가지 조치를 강구하였다.

하나는 유대교의 정체성 확립이다. 이를 위해 유대교 정경을 확정지을 필요성을 느꼈고,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주후 90년 얌니아에서 유대교의 정경’(TaNaK, 우리의 구약성경)을 확정지은 일이다. 이를 통해 유대교는 자체적으로 예수교와의 차별화 전략을 시도했다. 또 하나는 기독교인들을 유대교 회당으로부터 출교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를 통해 유대교인들이 기독교인 되는 것을 막고 유대교를 예수교로부터 지켜내려고 했다. 기독교인들이 당면한 이 같은 위기상황에서 예수교회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종교적(유대교)으로는 모세의 영광’, 정치적(로마제국)으로는 로마의 영광’(Pax Romana)이 판을 치는 시대 속에서 그리스도의 영광’(Pax Christi),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로마 가이사 황제숭배 거부에 따른 박해와 유대 회당으로부터 출교(9:22; 12:42; 16:2)를 당하는 묵시문학적 위기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대책이 절실히 필요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유대교와 로마제국에 대한 기독교 변증서가 신약성경인데, 그 가운데 요한복음이 이를 가장 잘 말해주고 있다. 여기서 요한복음 기자가 꺼내든 결정적 무기가 바로 부활의 복음이다(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살펴보자).

예수 부활은 땅의 영광인 모세의 영광’(유대교)로마의 영광’(로마제국)을 뒤엎고(5:41-44; 12:43). 하늘의 영광인 그리스도(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었다(5:44; 7:18; 11:4). ‘부활의 복음은 삶 자체가 위태롭고 생존이 위협받는 묵시문학적 위기상황에서 잠시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삶’(영생)을 가져다주는 기쁜 소식이었다(3:16; 11:25-26; 12:50). 또한 부활의 복음이야말로 근심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요한공동체)에게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을 주는 동시에(14:27)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이 세상을 이기는 담대함을 가져다주는 힘(16:33)이었다.

이렇듯 예수의 부활 사건은 유대교 및 로마제국과의 차별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결정적인 사건이자, 로마 식민지 아래에서 기독교(요한) 공동체가 직면한 시대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예수교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토대였다. 특히 요한복음은 당시의 상황에서 예수 부활에 대한 깊은 묵상을 통해 나온 결과물이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로고스 기독론이나 십자가 신학부활 신학의 빛에서 해석된 것이다. 따라서 그 동안 요한복음에서 로고스 기독론이나 십자가 신학을 우선적으로 강조한 주장들은 재고되어야 한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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