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브(AJAB) 신학과 요한 르네상스(20)

1.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불운을 겪지만, 때로는 상상할 수 없는 큰 행운(은혜)을 얻을 때가 있다. 내게 있어 최고의 행운은 주님의 은혜로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다. 난 그리스도인이 된 후 소명에 따라 주의 종이 되기로 하고 신학을 공부하였다. 마침내 목사(예장통합)가 되고, 교수(대전신대 구약학)가 되고, 선교사(중국)가 되는 행운을 얻었다. 이런 행운 가운데 최고의 행운은 구약학을 전공한 내가 신약학에 속하는 <요한복음><요한계시록>을 연구하여 책으로 출판하게 되었다는 데 있다. 이 두 권의 책은 내게 기독교 출판문화 신학부문 최우수상(요한복음, 2020)과 우수상(요한계시록, 2021)을 안겨 주었다. 그런데 수상의 영예보다 나를 더욱 기쁘게 한 것은 이 두 권의 책으로 인해 토막신학이 아닌 통전신학을 해야 한다는 내 필생의 과제를 이루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사실이다.

박호용 교수의 '유레카-익투스 요한복음' ,  '요한복음에 비추어 본 요한계시록'
박호용 교수의 '유레카-익투스 요한복음' , '요한복음에 비추어 본 요한계시록'

앞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한 권의 책(5:39)으로, 하나의 짝을 이룬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근대 이후 전문화라는 이름으로 구약학과 신약학이 나누어지면서 신구약성경이 한 권의 책으로서의 통전성을 상실하고 이분화되었다. 이분화의 폐해는 신구약성경의 중심인 그리스도 중심주의’(Christocentricity)를 약화시켰을 뿐 아니라 더욱 큰 문제는 성경 해석의 피상성 내지는 빗나감을 초래했다는 사실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신약성경 27권은 모두 주후 1세기 이후의 작품이다. 그러기에 신약학자들은 신약성경을 연구할 때 주후 1세기라는 시대상황 속에서 신약성경 연구를 시작한다. 여기서 알아야 하는 것은 신약성경이 모두 주후 1세기 이후의 작품이지만 그 뿌리는 구약 전승의 맥락 속에서 나온 것이다. 구약 전승의 맥락과 관계없이 어느 날 갑자기 신약성경이라는 문서가 산출된 것이 아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솔로몬의 사후(주전 922) 이스라엘 나라는 북왕국(이스라엘)과 남왕국(유다)으로 나누어진다.

예수님 당시로 얘기하면 무려 1천 년이나 이렇게 두 왕국은 서로 나뉘어 살아온 것이다. 따라서 북왕국(갈릴리 전승)과 남왕국(예루살렘 전승)은 전혀 다른 세계관(신학사상)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까 신약의 어떤 문서를 해석할 때 먼저 이 문서가 어떤 전승(북왕국 또는 남왕국)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가령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말할 때 요한복음은 삶의 자리가 북왕국 갈릴리(바다)이고, 요한계시록은 삶의 자리가 남왕국 예루살렘(성전)이다(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 같은 구약 전승의 맥락을 무시하고 외면한 연구는 해석의 피상성만이 아니라 빗나감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외람되지만 지금까지 신약학 연구는 거의 다 구약 전승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연구되었다. 따라서 해석의 피상성과 빗나감을 면치 못했다(이에 대해서도 다시 자세히 언급하고자 한다).

 

신구약의 분리는

그리스도 중심주의를 약화시켜

2. 그런데 구약학 전공인 내가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 연구를 통해 통전신학을 하게 되는 큰 행운(은혜)은 거저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통곡과 절망이라는 눈물과 죽음의 골짜기를 통과해야 하는 시련과 역경 속에서 주어진 것이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20048월의 어느 날 <기독공보>카자흐스탄 장로회 신학교 학장을 뽑는다는 기사가 나왔다. 당시 나는 대전신대 교수직을 5년째 하고 있던 때였다. 난 중고등학교 시절 미국 선교사(E. Otto Decamp, 감의도 선교사, 한국기독교방송국 창설자)의 도움으로 공부를 했고, 언젠가는 선교의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제 내년에는 내 나이 50이 되는데, 선교의 빚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이 광고를 보고 서류를 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난 학장으로 선임되었다. 대전신대에서는 123일 선교사 파송예배를 드렸다. 파송예배를 마친 3일 후에 학교에서 내년 2월까지 교수직을 보장해 준다는 조건으로 사표를 제출하라고 해서 별 생각 없이 사표를 냈다.

그런데 2005년 새해 들어서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예장통합 총회세계선교부에서는 카작신학교가 예장통합 교단에 속한 신학교가 되어야 한다고 했고, 카작 선교회에서는 카작신학교가 교단 소속이 되는 것을 원치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하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총회세계선교부에서는 내가 만일 총회 파송이 아닌 개별적으로 가게 되면 예장 통합 목사직을 박탈한다고 하였고, 카작 선교회에서는 교단 파송을 원한다면 신임 학장 선임을 취소하겠다는 것이었다. 한 달 내내 총회측과 선교회측 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23(23-5) 동안 대전신대 제자인 손태흥 전도사가 목회하는 충북 제천 새생명전원교회에 기도하러 갔다. 다음 날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깐 사이에 요셉처럼 두 개의 꿈을 연거푸 꾸었다. 첫 번째 꿈은 이러했다. 200m 트랙 다섯 바퀴는 도는 1,000m 달리기 대회에 참가했는데,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 놓고 1등으로 달렸다. 그런데 오버페이스를 함으로써 난 꼴찌가 되고 말았다. 두 번째 꿈은 이러했다.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이 함께 여행을 가자고 해서 짐을 싸서 밖으로 나왔는데, 그 사람이 타고 온 차가 집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 차는 장례식 차처럼 생겼는데, 길고 아주 세련된 검은색 세단이었다. 내가 그 차에 올라탔는데, 타고 보니 천장이 낮은 데다 창문이 하나도 없어 깜깜했다. 순간적으로 난 이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차에서 내렸다. 하나님께서 두 개의 꿈을 통해 카작에 가지 말라는 사인을 주신 것이다. 이 꿈을 꾼 후 난 총회 파송이 없이는 카작에 가지 않기로 하고, 카작선교회 측에 내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카작선교회 측에서는 곧바로 신임학장 내정을 취소해 버렸다. 난 대전신대 문 총장께 이 사실을 알리고 다시 교수직에 복직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허사였다. 결국 난 사표를 먼저 냈다는 이유로 교수직을 잃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뛰었던 2개월 동안 난 목회자(신학교와 선교회) 세계와 관련된 다섯 집단(총회세계선교부, 카작선교회, 대전신대, 카작 현지 선교사, 출석교회 담임목사)으로부터 환멸에 가까운 실망감을 느꼈다.

갑자기 실업자가 된 상황에서 세상에 대한 환멸을 안은 채 난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몰라 죽을 각오로 기도하기로 작정했다. 내 제자 손태흥 전도사께 다시 신세를 지기로 하고 부탁을 드렸다. 그래서 충북 제천 새생명전원교회에서 40(37-415) 작정기도 시간을 갖게 되었다. 분노와 절망 속에서 통곡으로 기도하는 나날을 보내는 동안 난 지옥을 체험하였다. 그야말로 뼈 속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체험하였다. 그런 속에서 이 사건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물었다.

그때는 몰랐다. 이 모든 일들이 다 날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경륜 속에 있는 은혜였다는 사실을. 두 주간이 지날 무렵, 기도 중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26). 이 음성을 듣는 순간 이 절망의 자리에서 떨쳐 일어나 부활의 나래를 펴리라는 생각이 나를 전율케 했다. 그때는 몰랐다. 이 순간이 요한복음을 연구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내 인생에 가장 큰 행운(은혜)의 순간이었다는 사실을.

 

절망의 자리에서 펼쳐진

요한복음 연구의 은혜

3. 하나님으로부터 요한복음의 말씀(11:25-26)을 받자마자 종려주일(320) 예배 후에 손 전도사님이 내게 이런 부탁을 하였다. “목사고시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교수님께서 새벽기도회를 인도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 부탁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무슨 말씀을 할까 하다가 방금 은혜 받은 요한복음을 가지고 새벽기도회를 인도하기로 했다. 매일 한 장씩 설교하되 첫 장은 본문이 길고 첫 시간이라 두 번으로 나누어 설교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321일부터 414일까지 새벽마다 22회에 걸쳐 요한복음 강해설교를 하게 되었다. 이것이 요한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될 줄이야 그때는 미처 몰랐다. 이 일을 마치고 나니 그 다음 날이 작정기도 40일이 되는 날이었다. 난 감악산을 내려왔다.

그 다음날(416)부터 감악산에서 설교한 요한복음을 책으로 출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설교는 시간의 제약으로 하고 싶었던 말씀을 다 못했기에 매 설교마다 조금씩 분량을 늘려 책으로 엮어 내기로 했다. 드디어 하산한 지 두 달 후인 6월 중순에 감악산의 두 돌판: 요한복음서 강해설교라는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2005.6.20.).

감악산 두 돌판 (요한복음연구의 효시가 된 책)
감악산 두 돌판 (요한복음연구의 효시가 된 책)

책 제목을 감악산의 두 돌판이라고 정한 까닭은 이러하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40일간 머물면서 십계명의 두 돌판을 받아 내려온 것처럼, 난 감악산에 올라 40일간 머물면서 요한복음이 예수 하늘예수 영원을 말하는 책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렇게 정했다. 이 깨달음은 훗날 요한복음이 왜 천하제일지서인가를 알게 해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자세한 것은 다시 상술하기로 한다). 그러면서 매설교마다 하늘과 영원이 들어가는 제목으로 22회 설교 제목을 정했다. 이 같은 본문 제목은 중요한 의미를 갖기에 그 전부를 옮겨본다.

1. 하늘의 말씀ㆍ영원한 말씀(1:1-18)/ 2. 하늘의 소리ㆍ영원의 소리(1:19-51)/ 3. 하늘의 기쁨ㆍ영원한 기쁨(2:1-25)/ 4. 하늘의 생명ㆍ영원한 생명(3:1-36)/ 5. 하늘의 뜻ㆍ영원한 뜻(4:1-54)/ 6. 하늘 아빠ㆍ영원한 아빠(5:1-47)/ 7. 하늘 이야기ㆍ영원한 이야기(6:1-71)/ 8. 하늘의 때ㆍ영원한 때(7:1-53)/ 9. 하늘빛ㆍ영원한 빛(8:1-59)/ 10. 하늘의 시선ㆍ영원의 시선(9:1-41)/ 11. 하늘의 목자ㆍ영원의 목자(10:1-42)/ 12. 하늘의 영광ㆍ영원한 영광(11:1-57)/ 13. 하늘 씨앗ㆍ영원한 씨앗(12:1-50)/14. 하늘 스승ㆍ영원한 스승(13:1-38)/ 15. 하늘의 길ㆍ영원한 길(14:1-31)/ 16. 하늘 친구ㆍ 영원한 친구(15:1-27)/ 17. 하늘의 승리ㆍ영원한 승리(16:1-33)/ 18. 하늘 가족ㆍ영원한 가족(17:1-26)/ 19. 하늘 나라ㆍ영원한 나라(18:1-40)/ 20. 하늘의 성취ㆍ영원한 성취(19:1-42)/ 21. 하늘의 복ㆍ영원한 복(20:1-31)/ 22(저자후기). 하늘의 재소명ㆍ영원한 재소명(2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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