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브(AJAB) 신학과 요한 르네상스(23)

1. 여기서 요한복음과 관련하여 나와 도올 김용옥 선생과 관련된 얘기를 잠시 말하고자 한다.

일전에(2005.1.18.) 내 후배 유은호 목사가 내게 박 목사님은 사상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한국교회에 가장 크게 공헌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라는 말을 했다. 또한 내 동기 홍정근 목사는 언젠가 나를 두고 도올 선생과 대결할 만한 논객”(2012.10.29.)이라는 말을 했다. 내가 어찌 감히 도올 선생과 대결할 만한 논객이 되겠는가. 하지만 도올 선생은 기독교에 대해 도를 넘는 거침없는 비판을 행하였고, 한국교회는 도올 신드롬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이에 대해 난 언제부터인가 목사로서 책임감을 갖고 그와 사상 대결을 벌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2000년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지상파 텔레비전을 통해 <노자와 21세기>라는 제목의 공개강좌를 열었다. 이 강좌는 미증유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뒤이어 도올 선생은 공자의 <논어>를 강의하였다. 계속해서 혜강 최한기(1803-1877), 수운 최제우(1824-1864), 삼봉 정도전(1342-1398) 등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사상가들을 강의하면서 우리 것의 소중함을 일깨워줬다.

그러다가 마침내 자신이 한국신학대학에 입학한 후 40년이 되는 2006EBS 방송에 출연하여 <요한복음강해>를 시작했고, 이것이 책요한복음강해으로 이듬해에 출판되었다. 이 책의 앞서 도올은 기독교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담은 기독교 성서의 이해를 출판하였다. 그런데 도올 선생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성경에 대한 그의 해석과 기독교회에 대한 그의 거침없는 비판이 점점 기독교계에 분노를 자아냈다. 기독교회와 교인들은 도올 선생의 말에 귀를 기울일 건 기울이고 비판할 건 비판해야 하는데, 아무런 대안 없이 무조건 도올 선생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하기 일쑤였고, 심지어 그를 폄훼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난 우선 도올 선생의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2. 노자와 21세기(1,2,3)를 필두로 도올 논어(1,2,3)를 사서 그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TV에서 방영되는 도올 강의를 열심히 경청했다. 그러다가 도올 선생은 2004우리는 누구인가라는 공개강좌를 열었다, 난 이 공개강좌를 직접 참관하기 위해 여의도 MBC 방송국을 찾아갔다. 두 시간 강의를 방송에서는 반으로 줄여 1시간짜리 강의로 방영하였다. 그날 강의의 제목은 조선 문명의 미래였다. 강의는 수운 최제우 선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Man’s voice is God’s voice. 이것이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의 핵심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앞으로의 문명은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유럽의 정신문명을 능가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종교 문명이 아니며 상식과 도덕적 힘으로 버텨 온 나라라는 것이다. 앞으로 중국이 상식과 도덕적 힘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인류 문명은 큰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다. 그리고 국학만이 이 민족이 살 길이며, 이 민족이 유교 복덕방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우리 민족은 보수와 진보, 좌우 대립, 친미 반미, 이 따위 논리가 아니라 동아시아에 불어 닥칠 전쟁의 시각이 째깍째깍 다가오고 있는 이 시점에서 정신 바짝 차리고 자각해야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청되며, 더 이상 미국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끝으로 그가 늘 중요하게 생각하는 번역의 중요성을 다시 말하면서, 지식인들은 실력을 키워야 하며 공부 많이 해야 한다, 자신은 지금도 하루 5-6시간씩 공부한다고 했다.

그리고 바둑을 둘 때 전체를 보면서 한 점 한 점 놓듯이 세계정세를 전체적인 눈을 가지고 보아야 한다, 부분에 빠져 전체를 못 보면 결국 패한다는 말로 강의를 마쳤다. 한마디로 명 강의였다. 집에 돌아와 난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3일 후에 이렇게 썼다. “도올을 이기려면 도올을 비판만 하지 말고 도올을 넘어서는 대안을 얘기해야 한다. 패러다임 시프트를 해야 한다.” - 거친 들판으로 달려가자(2006.6.26.).

그 후 감신대에서 도올 선생 포럼이 개최되었다(2007.5.11). 최근에 출판된 기독교 성서의 이해요한복음강해저서에 대한 출판기념 성격의 포럼이었다. 이 포럼에서 난 요한복음의 헬라적 배경을 강조하는 도올 선생에게 질문을 드렸다.

 

요한복음이 철저히

히브리적 배경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러자 도올 선생은 답변을 회피했다.

강연이 끝난 후 난 도올 선생에게 쪽지를 주면서 말씀을 드렸다. 다음 달에 요한복음서 재발견이라는 책이 출판될 예정이고, 68일 종로5가 기독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출판기념 포럼이 있을 예정인데, 시간 되시면 참석해 주십사고 말씀을 드렸다. 누군지도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의 출판 포럼에 도올 선생이 참석하겠는가. 62일 책이 출판되어 도올 선생께 보냈다. 그리고 68일 출판감사예배와 포럼은 은혜 중에 끝났다.

그런데 625일 한국동란의 날에 뜻밖의 전화가 걸려 왔다. 도올 선생의 여비서가 도올 선생 사무실인데요. 박호용 목사님이신지요?” “, 그렇습니다했더니 잠깐만 기다리세요. 도올 선생님 전화 바꿔드리겠습니다하는 것이었다. 도올 선생과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다. 통화 내용은 이러했다. 먼저 지난 68일 출판 포럼에 참석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에게는 무수히 많은 책들이 오지만 볼만한 책들이 없다고 하시면서 다 버린다고 했다. 그런데 내 책을 접하고 진지하게 연구한 책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난 곧 중국 청도로 선교사로 갈 예정이라고 하자 당신도 청도에 가본 적이 있다고 하시면서 잘 다녀가라고 했다. 그러다가 그만 배터리 충전이 다 되어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다. 내 저서 요한복음서 재발견에서 난 도올 선생을 이렇게 비판했다. 최근에 도올은 헬라적 배경 아래에서 요한복음을 길게 논술했는데, 이는 시대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도올 선생은 내게 전화를 주시고 내 저서를 노작이라고 격려하시는 모습을 통해 역시 도올은 큰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도올에 대한 나의 비판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5년 동안 그를 철저히 연구한 후에 마침내 천하제일지서 요한복음(2012.10)에서 난 도올 선생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는 단지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히 사상적인 측면에서였다(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말하기로 하겠다).

 

3. 중국 선교사로 칭다오(靑島)에 와서 한인교회를 개척하려고 했으나 북경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의 선교 상황이 좋지 않아 미루기로 했다. 그때 청도한인교회 조관식 목사께서 산동성 서쪽 끝에 있는 랴오청(요성)한인교회를 소개하였다.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가는 데만 무려 9시간 걸리는 먼 거리였다. 토요일에 가서 주일 설교하고 돌아오는 일을 13차례 하였다(2007.11.11.-2018.2.24.). 처음으로 랴오청교회를 다녀온 이틀 후 한인목회자협의회논의를 위해 웨이하이(威海)에 갔다. 거기서 김성준 목사(홍콩한인교회)를 만났다. 김 목사는 연대 신과대 출신이었다. 내게 다음해 1월에 와서 특강을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래서 온 가족이 홍콩을 방문하게 되었다(2008.1.12.-18).

중국선교사로 가면서부터 난 요한복음서 재발견포럼 때 김덕기 교수가 한 말, ‘요한 코드라는 말에 힌트를 얻어 계속적으로 요한복음을 연구하였다. 마침내 요한은 하늘로부터 오는 계시’(천재성)로 요한복음을 요한계시록과 같은 암호상징, 즉 코드로 기록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을 일곱상징코드’(숫자, 지리, 절기, 인물, 표적, 말씀, 구조)로 해석하면 요한복음의 깊이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연구 결과를 세 차례(,,)에 걸쳐 홍콩동신교회 교인들과 나누었다.

그런데 강의를 끝내고 돌아와 생각해 보니 새롭고 난해한 이 내용을 보다 쉽게 써서 평신도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개월의 작업 끝에 원고를 완성하고 쿰란에 보냈다. 그런데 출판 바로 직전 북경올림픽을 앞두고 아내의 만류로 출판을 일단 보류시켰다. 감사한 것은 1년을 보류함으로써 일곱상징코드에 대한 보다 알찬 연구를 할 수 있었다. 마침내 요한복음서 재발견출판(2007.6.) 이후 또 한 권의 요한복음 저서 요한의 천재성: 상징코드(2009.5.11.)가 출판되었다. 이 책은 선교지에 와서 낸 첫 책이 되었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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