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브(AJAB) 신학과 요한 르네상스 (27)

1. 불트만 신학 비판은 비단 불트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구 신학 전체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요한복음의 저자(애제자인 사도 요한)는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를 놓고 일생을 고심하였다. 요한은 자신보다 앞서 쓴 사건 중심의 공관복음서와는 다른 차원의 복음서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방법은 우선 역사의 해체와 재구성으로 나타났다.

역사(歷史)3(3), 즉 시간(時間), 공간(空間), 인간(人間)으로 구성된다. 가령 조선시대의 역사란 시간적으로는 1392-1910, 공간적으로는 한반도에서, 인간적으로는 한민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역사를 말한다. 요한복음서는 공관복음서의 역사(3)을 해체하고 재구성함으로써 공관복음서와는 전혀 다른 복음서가 되었다.

그러기에 요한복음은 연구 방법에 있어서 공관복음과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불트만은 기본적으로 사복음서를 별 차이가 없는 유사한 복음서로 보았고, 공관복음과 같은 연구 방법을 사용하였으며, 게다가 공관복음을 기준으로 요한복음을 해체하고 재구성하였다. 불트만의 요한복음연구가 끝까지 빗나간 책이 된 결정적 패착은 무엇보다도 이에 기인한다.

 

요한복음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불트만 신학의 패착

불트만이 신학 공부에 매진하고 있던 20세기 초엽인 1905, 과학계와 미술계에서 동시에 사고(생각) 혁명이 일어났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A. Einstein, 1879-1955)상대성 이론과 화가 피카소(Picasso, 1881-1973)큐비즘’(입체파)이 그것이다. 이를 차례로 설명해 보자.

상대성 이론은 인류가 유사 이래 지녀왔던 시간과 공간개념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혁명적 사건이었다. 그것은 물리학의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자연과 우주에 대한 현대인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이전에는 시간과 공간을 분리하여 절대시간, 절대공간의 차원에서 고정불변의 것으로 상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물질세계의 운동을 연구하였다. 그런데 시간과 공간은 분리되지 않고 함께 존재하면서, 상황에 따라 시공간 개념이 상대적으로 달라진다는 것이다.

가령, 공원 벤치에 앉아 아름다운 여성과 지내는 1시간은 1분처럼 느껴지고, 뜨거운 난로 위에 앉아 있는 1분은 1시간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 같은 상대성 이론은 자연과학을 넘어 종교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제 그 어떤 종교도 자신의 종교를 절대적인 종교라고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비교종교학과 종교다원주의 사상이 대두하게 되었다.

한편, 피카소는 1905<아비뇽의 처녀들>이라는 사방 6m 되는 대형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1907년에 완성하였다. 이 그림은 르네상스 이래 계속되어 온 회화의 법칙을 깨고 큐비즘’(입체파)이라는 새로운 미술 사조를 탄생시켰다. 피카소는 인체를 기하학적으로 변형하고 전통적인 원근법을 완전히 부정했으며, 기존의 명암법과 채색법을 무시했다. 미술의 기존 질서를 허문 혁명이었다.

이전까지는 자연이나 사물, 인간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을 회화의 목적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19세기 이후 사진술이 발달하면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를 재현하는 것이라면 사진이 그림보다 더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게 되었다. 회화의 목적이 달라져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래서 피카소는 있는 그대로의 3차원에 묶여 있는 시공인’(時空人)을 해체하고 새로운 차원의 입체적 재구성을 시도했다. 이는 20세기 추상미술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미술사를 개척하는 전기가 되었다.

피카소에 앞서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세잔느(1839-1906)는 바라는 효과를 얻는 데 도움이 된다면 사소한 디테일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작업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되면 전통적인 원근법을 과감히 무시해 버렸다. 그리하여 전체 구조의 완벽한 균형과 조화의 아름다움을 창조하였다. ‘정확한 소묘를 무시한 것이 미술사상 대전환의 시발점이 되었다.

베토벤(Beethoven, 1770-1827)더욱 아름답기 위해서라면 범하지 못할 규칙이란 하나도 없다라는 말을 했다. 더욱 깊은 의미를 주기 위해 일반 규칙을 깬 한 실례를 들어보자.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면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있다. 그 안에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가 그린 <탕자의 귀환>이라는 명화가 있다. ‘탕자의 비유’(15:11-32)를 소재로 한 이 그림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아버지의 두 손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손은 두텁고 강한 느낌을 주는 아버지의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부드럽고 자애로운 느낌을 주는 어머니의 손이다. 베토벤의 말처럼 렘브란트는 더 넓고 깊은 하나님의 사랑은 표현하기 위해 일반 규칙을 과감히 깼다.

 

2.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요한은 위에서 언급한 아인슈타인이나 피카소보다 무려 1,800년 이상이나 앞서 그 같은 작업을 했다는 사실이다. 요한은 역사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앞선 세 복음서(공관복음서)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복음서를 썼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복음은 복음서의 큐비즘이자 상대성 이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 비유로 설명하면 이렇다. 공관복음은 열 개의 차량을 하나씩 차례로 이어 붙여 일직선적인 모습을 띤 한 대의 열차와 같다. 즉 공관복음은 예수 사건을 기술할 때 시간적(또는 공간적)으로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예루살렘에서 끝나는 일직선적인 구조로 그리거나, 주제별로 자료를 묶어서 하나씩 이어 붙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기에 공관복음은 차량 하나 하나를 분해하듯, 본문을 세부적으로 쪼개어 연구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와 달리 요한복음은 열 개의 노선이 거미줄처럼 엮어져 있는 서울 지하철과 같다. 즉 요한복음은 직선적인 모습이 아닌 전체가 통으로 짠 옷과 같은 원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상호 유기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전체를 통전적으로 이해해야 하며, 부분적으로 잘라서 연구하면 생명력(복음의 힘)을 상실할 뿐 아니라 해석이 빗나갈 수밖에 없다.

요한은 세잔느가 행한 것처럼 전체적인 조화와 균형 있는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해 세부적인 디테일을 과감히 생략했다. 또한 베토벤이 말한 것처럼 예수 사건을 가장 아름답고 깊이 있는 모습으로 그리기 위해 공관복음의 역사(時空人)를 해체하고 재구성했다. 또한 요한은 다양한 기법(교차 대구 구조, 메노라 구조, 5중 하강 구조, 십자가와 부활 구조, 논문 형식 및 신학적 주제 구조, 대표성의 원리, 차자 중시의 원리, 이중 의미 및 아이러니 기법, 분할 기법, 은폐 및 침묵 기법, 스푸마토 기법, 마방진 기법 등), 특히 일곱(숫자, 표적, 말씀, 지리, 절기, 인물, 구조) 상징코드 기법을 사용하였다(이러한 기법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불트만의 요한복음연구가 철저히 빗나간 것은 요한이 행한 역사의 해체와 구성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요한이 사용한 온갖 다양한 기법과 상징 코드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

 

요한복음의 역사 해체와 재구성

다양한 상징 코드를 

아해하지 못한 불트만

 

3. 불트만은 이미 상대성 이론과 큐비즘을 통해 새로운 사고 혁명의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에 역행이라도 하듯이 오히려 공관복음을 기준으로 요한복음을 해체하는 시대착오적인 작업을 행했다. 그는 요한복음이 편집적으로 매우 혼란스럽게 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여 요한복음 전체를 공관복음서에 기초하여 다시 재배치(재편집)해 놓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는데, 소위 환치이론’(Theory of Displacement)이라고 불리는 위치변동설이 그것이다. 이 가설이 왜 빗나간 주장인지를 살펴보자.

불트만는 2:13-25에 나오는 성전 정화 기사는 수난 기사 부분으로 옮겨져야 한다고 보았다. 그 까닭은 공관복음을 기준으로 볼 때 공생애 말기에 있었던 성전정화 사건을 요한복음은 공생애 초기에, 즉 본론 첫 장(2)에 놓았기 때문에 연대기적으로 잘못 배치된 본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요한복음의 자료 배열은 위치가 잘못 배열된 것이 아니라 요한의 신학적 의도에 따른 것이며, 그 속에는 놀라울 정도로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요한이 성전정화 사건을 공생애 초기인 본론의 첫 장(2)에 배열한 것은 유대인들(유대교)이 갖고 있던 네 가지 핵심 가치(성전, 성경, 성지, 성민) 중 가장 중요시 여기는 성전 문제를 맨 앞에 배치시킨 것이다. 요한이 이러한 배치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하신 예수가 친히 몸 성전이 되시며, 따라서 예루살렘에 있는 장소로서의 성전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요한이 사용한 방법이 부활장인 20장과 교차대구시키는 방법으로 2장에 성전정화 사건을 배치시킨 것이다. 이를 통해 요한은 부활하신 예수로 인해 더 이상 장소로서의 성전은 필요 없고, 예수가 곧 성전 자체가 되시며, 이를 통해 유대교에 대한 기독교의 대치 및 승리를 말하고자 한 것이다.

또한 불트만은 현재의 고별설교(13-17)는 순서가 잘못 되었다고 보고 다음과 같은 순서로 본문을 재배치시켰다. 13:1-30(배반예고), 17:1-26(고별기도), 13:31-35; 15:1-17(고별유언), 15:18-16:11(세상 속에 있는 공동체), 16:12-33(종말론적 상황으로서의 신자들의 미래), 13:36-14:31(아들과 아버지의 교제). 이 같은 그의 작업은 기본적으로 고별기도가 고별설교의 서두에 와야 한다는 생각에 근거하고 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기본적으로 공관복음처럼 시간적 순서라는 단선적인 모습이 아니라 다양한 주제(기법)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키기 위해 2, 3, 다중의 장치로 엮어 놓은 복음서다. 그래서 요한복음 전체를 11장을 중심으로 1-10장은 제1, 12-21장은 제2부로 하여 이를 교차대구구조로 엮어놓았다. 먼저, 조직신학적 주제로 본다면 13=8(죄론, 기독교 윤리학), 14=7(성령론, 종말론), 15=6(성례론), 16=5(기독론, 삼위일체론), 17=4(교회론), 이런 식으로 엮어놓았다.

또한 요한은 11장을 중심으로 요한복음을 제1(1-11)와 제2(12-21)로 균형 있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 그러고는 일곱 표적을 2(가나의 혼인잔치 표적)에서 11(나사로 소생 표적)에 걸쳐있는 다룬다. 이에 상응하도록 일곱 말씀(“나는 ...이다말씀)을 네 장씩 물러난 6(‘생명의 떡말씀)부터 15(‘포도나무말씀)에 걸쳐 다룬다.

더욱이 요한이 예수의 고별기도를 맨 마지막 장(17)에 배치한 것은 신명기서에 입각한 것이다. 즉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기도(33)를 하고 죽은 것처럼, ‘새 모세’(New Moses)로 오신 예수는 제자들을 향해 축복기도(17)를 하고 십자가의 길(18장 이후)로 나아간 것이다. 이 같은 요한의 의도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 불트만은 고별기도를 맨 끝에 배치한 것은 잘못되었다는 엉뚱한 말을 하고 있다.

또한 불트만은 6장은 5장 앞에 와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4장과 6장이 예수의 갈릴리 사역으로 연결되고, 5장과 7장이 예루살렘 사역으로 연결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이는 요한의 지리 상징 코드를 알지 못한 무지의 소치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요한복음은 전체가 ‘5중하강구조로 엮어져 있다. 하늘()에서 땅(아래)으로(성육신 사건, 1:1-18). 그리고 네 차례의 예루살렘()에서 갈릴리(아래)(1:19-2:12; 2:13-4:54; 5:1-7:9; -예루살렘 활동기: 7:10-20:29- ; 21:1-23)가 그것이다.

따라서 장을 바꾸게 되면 이같은 5중하강구조는 깨지고 만다. 나아가 이것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혀 들을 수가 없다. 북왕국(갈릴리) 전통에 속하는 갈릴리 어부 출신 요한은 그의 복음서를 갈릴리 지향적 복음서로 엮어 놓았다. 불트만은 요한복음이 북왕국 전통에 속하는 복음서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요한이 지리 상징 코드를 사용하여 공관복음의 지리적 구조를 해체하고 새롭게 재구성하여 자신의 신학적 의도(하나님의 사랑은 내리사랑)를 분명히 하고자 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이것이 소위 세잔느의 불만, 즉 겉으로 드러난 문자나 본문을 갈기갈기 파편화시켜 분석하는 데 집착한 나머지 전체 구성의 완벽한 균형과 조화의 아름다움을 불트만은 보지 못했다. 한 마디로 불트만의 위치변동설은 요한복음이 얼마나 완벽한 천재적인 작품인지를 모르고 행한 불신앙과 무지의 소치가 아닐 수 없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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